Home 항쟁의기관차 〈2021.6 항쟁의기관차〉 활강하고 도약하는 극초음속미사일의 시대

〈2021.6 항쟁의기관차〉 활강하고 도약하는 극초음속미사일의 시대

현대적의미의 로케트와 미사일의 등장

로케트와 미사일의 과학적원리는 사실상 동일하다. 그래서 로케트와 미사일의 개념을 혼용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독일에서 만든 세계최초의 미사일인 V-1을 일각에선 로케트로 소개한다. 로케트는 배출가스를 빠르게 분사시켜 그반작용으로 추력을 얻는 비행체를 말한다. 군사용탑재물을 장착하고 목표물로 유도되는 로케트를 미사일이라고 부른다. 탑재물로 인공위성을 발사하는 경우 로케트전체크기에서 인공위성을 제외한 대부분이 추진기관이다. 이추진기관은 특별히 (우주)발사체라고 칭하는데 인공위성이 아닌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의 추진기관으로도 활용된다. 반면 로케트엔진을 사용하는것이 아니라 제트엔진으로 추진해 산화제를 싣지않고 연료만 채워 공기중의 산소를 사용하는 미사일로 순항미사일이 있다. 

미사일은 현대무기체계로서 주임무를 수행하는 전략로케트를 지칭하기도 한다. 무기체계에 대해 군사학대사전에서는 <기능을가진구성요소가복잡하게결합돼있는하나의전투용기구>로, 미국규범에서는 <장비와숙련기술로이루어진완전한전투기술로무기자체뿐만아니라무기를보관·운용·유지하는데소요되는제반시설·보조지원장비·보급물자·서비스와일정수준의기준을가지고이들을운용조작하는인적자원등을총망라한것>이라고 정의하고있다. 무기체계로서의 미사일에는 미사일발사대·통제및관제시설·연료·핵폭탄·저장시설·연구및개발공장·운용인원의작전및기술수준까지 종합한 모든것들이 포함된다. 구성요소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됐을 때 성능발휘가 가능하다. 

미사일은 형태와 기능에 따라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기체내부는 탐색기·유도조종장치·탄두·추진기관·구동장치로 구성되며 외부에는 고정날개·조종날개가 달려있다. 유도조종장치는 사람의 두뇌에 해당하며 탄두에는 최종적으로 목표에 도달할 폭발물과 표적까지의 근접거리를 판단하는 장치가 있다. 

미사일은 일반적으로 발사플랫폼과 대상표적의 종류에 따라 분류한다. 발사플랫폼은 지상의발사대·해상의함정·수중의잠수함·공중의전투기·우주의정거장등이 될수 있으며 대상표적도 마찬가지다. 발사플랫폼대 대상표적을 조합해 지대지·지대함·함대지·함대함·함대공·공대함·공대공미사일등으로 분류한다. 어떤 미사일은 여러 종류의 플랫폼에서, 여러 종류의 표적에 다목적으로 사용된다. 궤적형태에 따라서는 탄도형과 순항형으로 구분한다. 탄도탄은 포물선을 그리며 비행한다. 순항미사일은 비행기처럼 비행한다. 탄도탄중에 비행중간이나 종말단계에서 기동해 순항미사일과 유사하게 날아가는 경우도 있다. 

미사일운용기준에 따라 전략미사일과 전술미사일로 구분한다. <전략>개념은 상대방의 수도·중요지역을 타격할수 있거나 상대방에 중대한 영향을 주는데 적용된다. 지역적·국지적작전에 적용되는 미사일은 전술미사일로 분류한다. 

초보적형태지만 최초의 액체추진로케트발사는 1926 미국의 과학자 로버트고다드에 의해 개발됐다. 그러나 현대적이며 대규모적인 액체추진로케트는 1930년대 독일주도로 개발됐으며 2차세계대전중에 등장했다. 최초의 현대적인 다연장로케트포는 1930년대 독일에서 개발된 네벨베르퍼다. 2차세계대전기간내내 사용한 네벨베르퍼는 특유의 굉음을 내면서 연발로 로케트를 쏘며 연합군을 공격했다. 네벨베르퍼에 맞서 소련에 의해 개발된 다연장로케트포가 카츄사로케트다. 카츄사는 소련최초의 대량생산된 자주포다. 자주포란 자력주행이 가능한 화포체계를 말한다. 기동성을 기반으로 대량폭발과 사후이속이 가능했으며 대포대사격도 가능해 독일군의 공포의 대상이었다. 1941.7 카츄사로케트가 처음 등장한 소련의 오르샤전투에서 독일군의 전차·장갑차17대, 화포15문이 격파되고 대대급에 이르는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카츄사로케트는 특유의 굉음에 오르간과 같은 발사대모양때문에 <스탈린의오르간>이라고 불렸다. 로케트는 스탈린그라드탈환전에서 빛을 발했다. 네벨베르퍼와 달리 14~48개의 로케트를 연속발사하며 약4만㎡에 이르는 지역을 초토화했다. 

최초의 미사일은 독일에 의해 생산됐다. 베르너폰브라운에 의해 V-1과 V-2가 개발됐다. V-1은 세계최초의 순항미사일로서 사거리240~320km에 탄두중량850kg이었다. 연합군이 1944.6 노르망디상륙작전을 벌인지 1주일후인 6.13 독일은 런던을 향해 V-1미사일을 쏘기 시작했다. 9000여발중 2000여발이 런던에 떨어졌고 영국인 6000여명이 죽고 1만7000여명이 다쳤다. 9월부터는 V-2가 런던에 발사됐다. V-2는 세계최초의 탄도미사일로 에탄올·물의 혼합연료와 액체산소로 추진되는 1단로케트다. 유도장치가 없으며 14m가량 되는 단순한 대형로케트추진체다. 사거리320km에 탄두에는 최대1000kg의 고폭탄이 장착됐으나 명중률은 현격히 떨어졌다. 그렇기에 사정권밖에 있는 런던까지 언제든 V-2의 공격을 받을수 있었다. V-2에는 4가지핵심기술이 필요했는데 대형액체추진로케트엔진기술·초음속공기역학기술·자이로이용관성항법유도조종기술·추력조종기술이었다. V-2는 V-1과 달리 최대마하4로 비행하는 초음속탄도미사일이었다. V-2는 1942.8 음속을 돌파했고 1943부터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갔다. V-2는 그자체로도 혁신적인 신무기였지만 발사대인 메일러바겐도 혁신적이었다. 메일러바겐발사체계는 야전에서 약15t규모대형미사일의 연료를 충전할수 있었고 미사일을 안전하고 신속·정확하게 기립시켜 발사통제가 가능했다. 메일러바겐발사체계는 V-2와 함께 소·미미사일개발에 큰 영향을 줬다. 독일은 유보트잠수함에서도 V-2발사시험에 성공했다.

독일은 1945.3까지 총3200여발의 V-2를 발사했다. 벨기에 안트베르펜을 향해 1610여발, 런던을 향해 1358여발을 집중발사했다. 그러나 전쟁의 결과를 바꾸지못했다. 전후 미국과 소련은 V-2의 개발자들을 자국으로 데려갔다. 주로 유도기술의 연구자들은 미국, 엔지니어들은 소련으로 넘어갔다. 

주요국의 미사일개발역사

미국

전후 미국과 소련의 우주공간을 독점하기 위한 미사일·로케트기술개발경쟁이 격화됐다. 미사일·로케트군사력에서의 우위선점은 곧 세계군사패권의 향방을 결정하는 핵심전략이었다. 미국은 <페이퍼클립>작전하에 브라운을 중심으로 한 독일로케트전문가 수백명을 자국으로 데려가 미사일·로케트개발에 착수했다. 소련의 미사일개발에 자극을 받은 미국은 1950부터 미사일개발에 박차를 가했고 SRBM(단거리탄도미사일) PGM-11레드스톤 생산에 성공했다. 레드스톤은 V-2로케트기술을 바탕으로 개발됐다. 무게2만7763kg인 레드스톤은 500kt의 핵탄두를 장착할수 있으며 사거리 323km의 1단액체로케트였다. 레드스톤은 이후 머큐리-레드스톤로케트로 개조돼 1961 미국최초의 유인우주선 머큐리-레드스톤3호를 발사했다. 미육군은 1958 레드스톤미사일을 실전배치하면서 탄도미사일전력을 확보했다. 그러나 액체연료탄도미사일은 부식성이 높고 불안정하며 쉽게 폭발한다는 문제점으로 발사직전 연료충전시간이 오래 걸렸다. 

최초의 고체연료탄도미사일 서전트의 시제개발은 1958~59 실시됐다. 1960부터 양산품개발을 위한 기술개발이 이어졌다. 미국의 <핵억제전략>의 일환인 서전트는 SRBM으로 W52핵탄두가 탑재됐으며 그외에도 고폭탄두·파편탄두·생화학탄두등이 장착될수 있었다. W52는 200kt파괴력을 지녔으며 2차대전당시 히로시마에 투하한 원자폭탄보다 13배의 위력을 발휘했다. 서전트미사일은 90분이면 발사준비를 마칠수 있었으며 사정거리 40~135km로 적진종심의 병력집결지·지휘통제시설·핵무기체계등을 파괴하는것이 목표였다. 서전트가 무기체계로서 완결성을 갖게 된것은 1960이 넘어서부터였다. 미육군은 1962.6 3개의 서전트미사일대대를 미본토에 배치했다. 1963부터 유럽에 4개대대, 1964.9 남코리아에 1개대대가 배치됐다. 서전트는 실전배치용으로 409발이 양산됐다. 서전트미사일은 후속인 MGM-52랜스미사일로 교체됐다. 

1986 MGM-52랜스미사일후속으로 MGM-140에이태큼스(ATACMS Army Tactical Missile System 육군전술미사일체계)가 개발됐다. 미육군의 다연장로케트체계에서 운용되는 전술용단거리지대지미사일로 현재 미육군유일의 지대지미사일로 알려졌다. 초기형태의 에이태큼스 MGM-140A는 사정거리 165km의 비유도식미사일로 목표물상공에서 자탄 950여개를 살포할수 있다. MGM-140B는 탑재자탄숫자를 275개로 줄이고 사거리를 3000km로 2대가량 증가시켰으며 GPS관성유도방식을 사용해 정확성을 늘린것으로 알려졌다. 최근모델인 MGM-168은 단일고폭탄두를 사용해 군사시설물파괴가 가능하게 개량됐다. 현재 미육군은 에이태큼스의 후속으로 차세대정밀타격미사일 프리즘을 2023 완성목표로 개발중이다.

1960.2 XM-14개발형퍼싱1(P-01)이 시험발사됐다. 5개월후 XM-14 (P-06)가 이동식발사대에서 최초로 발사됐다. 퍼싱은 시제미사일이 56발 제작·발사됐으며 실험에 실패한 미사일은 5발이었다. 퍼싱은 1962부터 양산됐고 1964 실전배치가 선언됐다. 이후 MGM-13순항미사일을 대체하기 위해 새버전인 퍼싱1A개발이 시작됐다. 케네디대통령취임행렬에 퍼싱발사차량이 간이열병식을 할 정도로 퍼싱은 소·미대결에서의 핵심무기였다. 퍼싱1은 고체연료방식의 SRBM·핵탄도미사일로 2단로케트모터가 장착됐다. 그결과 퍼싱1은 발사후 순식간에 마하8의 속도에 이를수 있었다. 최대사정거리는 740km로 약5분가량 소요됐다. 미사일의 종말비행시에는 탄두가 분리돼 회전함으로써 비행의 안정성을 확보했다. 퍼싱1은 미오클라호마주 포트실에 최초로 배치됐으며 이후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회원국들에 전진배치돼 소련·동구권을 위협했다. 이후 개량형으로 퍼싱1A가 생산됐다. 1987 소·미간 체결한 INF(중거리핵전력폐기)협정의 결과 퍼싱1A미사일 169발은 파기대상이 돼 1989.7까지 전량폐기됐다. 퍼싱2는 소련의 RSD-10 파이오니어 IRBM(중거리탄도미사일)에 대응해 개발됐다. 퍼싱2는 1982.7 첫시험발사에 실패한 후 1983.9까지 17회 추가발사로 초도작전능력을 검증했고 12월 작전운용능력을 인정받았다. 퍼싱2는 핵탄두를 탑재하는 기동재진입탄수식 2단고체연료 SRBM이었다. 필요에 따라 추진체를 1단으로 구성해 발사할수도 있었다. 총380여발이 생산됐으며 1984.6 퍼싱2대대가 유럽에 배치됐다. 

미국최초의 ICBM은 SM-65아틀라스다. 1950년대말 미국은 소련에게 ICBM경쟁에서도 뒤처져있었다. 소련은 1957 스푸트니크인공위성발사에 성공하면서 R-7 ICBM을 실전배치했다. 미국은 2년뒤인 1959.10에 이르러서야 아틀라스ICBM을 실전배치했다. 아틀라스는 액체연료를 사용한다는 작전적한계를 갖고있었다. 그렇기에 로케트자체크기가 커졌고 내부부품수가 증가하면서 탑재중량·사거리는 줄어들었다. 발사설비가 복잡했고 매번 주유해야했으며 사일로안에서 주유작업중의 폭발위험도 높았다. 아틀라스는 핵무기를 보유했다는 정치적의의는 있었으나 군사적인 실용도가 극히 낮았다. 

1958.7 고체연료ICBM인 미니트맨제작을 위한 구성품개발이 시작됐고 1959.9 사업자로 보잉사가 선정됐다. 미니트맨을 9월 국가최고우선순위인 DX-1레벨로 분류할 정도로 미국의 기대는 엄청났다. 1961.2 플로리다의 공군미사일시험센터에서 실시한 미니트맨의 7400여km초도시험비행이 성공했다. 이후 미공군은 공군기지안에 미니트맨의 사일로를 건설했다. 1962.10 쿠바미사일위기가 발생했을 때 미니트맨미사일 10발을 실전배치하며 발사태세를 갖췄다. 이후 1966까지 800발의 미니트맨1미사일의 실전배치를 마쳤다. 

1962 미니트맨개량형이 개발됐다. LGM-30F미니트맨2는 2단로케트모터에 추력방향제어장치를 장착하며 추진체계가 개선됐고 사거리가 1만2500km로 증가했다. 무거운 핵탄두도 장착할수 있어서 파괴력도 1.2Mt로 증가했다. 정밀도도 미니트맨1의 1km수준에서 200m수준으로 높아졌다. LGM-30G미니트맨3는 1964부터 개발됐다. 미니트맨3는 다탄두미사일인 3세대 ICBM이었다. 이는 소련의 ABM(탄도탄요격미사일)방어망구축에 대응해 여러 탄두를 분산해 공격하기 위한 목적으로 개발됐다. 1970부터 배치되기 시작해 1976.7 생산이 완료됐다. 이후 미니트맨전력은 미니트맨2 500발, 미니트맨3 500발로 구성됐다. 미니트맨3의 최대비행거리는 1만3000km다. 미니트맨ICBM시험발사는 최근에도 계속되고있다.

미국최초의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인 UGM-27폴라리스는 1956부터 개발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소련의 SLBM에 대응해 잠수함발사순항미사일을 개발했다. V-1을 모방한 JB-2룬을 개발해 1945~50까지 시험평가를 실시했으나 실전배치에 실패했다. 새롭게 개발한 SSM-N-8레귤러스순항미사일을 1954 실전배치하면서 소련과 비교해 잠수함전력에서 우위를 차지했다. 이후 브라운이 개발한 PGM-19A쥬피터IRBM을 잠수함에 탑재하기 위한 연구가 진행되다가 새로운 SLBM개발로 방향을 선회했는데 이때 개발에 들어간 신형SLBM의 이름이 폴라리스다. 폴라리스A1은 콜드런칭(Cold Launching)방식을 채택해 가스압으로 미사일을 잠수함에서 수면까지 밀어낸 후 로케트모터를 점화했다. 콜드런칭방식은 이동식미사일발사대에서도 운용되며 강력한 압축가스로 미사일을 공중으로 던져올리는 방식을 의미한다. 5차례의 시험발사실패끝에 1959.5 최초로 발사에 성공했다. 폴라리스A1X미사일의 시험발사는 1960까지 계속됐다. 폴라리스의 플랫폼인 신형전략원잠(SSBN)개발도 꾸준히 추진돼 1959.12 SSBN-598조지워싱턴함이 진수됐다. 1960.7 잠수함수중발사가 이뤄졌고 11월 폴라리스A1SLBM과 SSBN-598이 실전배치됐다. A1의 떨어지는 정밀도와 600kt의 파괴력을 보완한 A2의 첫시험발사는 1960.11에 실시됐다. 미해군은 도미닉작전을 통해 실탄발사시험을 태평양에서 실시했다. 이는 최초이자 유일한 미전략핵미사일 실전시험발사로 기록돼있다. 폴라리스미사일은 1959~68사이 1150발이 제작됐고 그중 640여발은 A3였다. 폴라리스A3미사일은 1981.10 현역에서 물러났다. 

순항미사일에는 대표적으로 토마호크가 있다. 1970년대 미국의 제너럴다이내믹스사가 개발한 장거리·전천후·아음속의 순항미사일·정밀타격미사일이다. 토마호크는 1600~2500km떨어진 목표물을 3m이내의 정확도로 타격할수 있다고 알려졌다. 450kg재래식탄두 혹은 200kt급 W80 핵탄두를 장착한 2가지형태가 있으며 현재는 재래식탄두형만 운용되고있다. 토마호크는 오늘날까지 실전에 쓰이는 악명높은 재래식무기다. 1991 걸프전에서 미국은 토마호크발사를 신호탄으로 이라크를 침공했고 288발을 발사하며 이라크를 초토화시켰다. 2001 아프가니스탄침략, 2003 이라크전쟁에서도 미국·영국은 800발이 넘는 토마호크를 발사했으며 2011 리비아공습첫날 핵잠수함을 통해 124발의 토마호크를 발사했다. 뿐만아니라 2017.4 시리아공군기지에 59발을 발사해 20대이상의 시리아공군기를 파괴하고 주요시설을 파괴했다. 

미국은 공격형미사일만이 아니라 방어형미사일체계개발에도 열을 올렸다. 소련·미국이 1950년대말 ICBM개발에 성공하면서 ICBM방어능력이 주요군사기술로 대두됐다. 1945 미육군은 초음속항공기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프로젝트 나이키(Project NIKE)를 시작했다. 나이키에이작스요격미사일은 1951.11 사거리24km·고도10km·시속480km로 비행하는 항공기를 요격했다. 이요격미사일의 개량형이 나이키허큘리스다. 미육군은 대규모공중공격위협에 대응해 최초의 ABM 나이키허큘리스를 개발했다. 1957 나이키에이작스는 나이키허큘리스로 대체됐다. 공격형미사일개발에 집중하던 미정부는 1956 육군·공군에 점방어를 위한 지상기반지대공미사일의 개발·조달·운용책임을 부여했다. 방어 또는 종말방어는 특정 지리적지역, 도시·핵심군사·산업시설에 중점을 두고 185km의 수평선범위까지 비행목표물을 대응했다. 해당임무는 나이키1·나이키B·지상기반탈로스·레이더로 달성됐다. 

이후 미국은 1969 대기권밖의 원거리용요격미사일 스파르탄, 단거리용요격미사일 스프린트를 주축으로 한 ABM을 완성했다. 소련은 1960년대 걸라슈요격미사일을 도입해 미국의 탄도미사일위협에 맞섰다.

1969 소·미는 전략무기제한협정(SALT)을 체결해 탄도미사일·탄도탄요격미사일보유수량제한에 합의한다. 1차SALT의 ABM조약으로 양국의 ABM배치는 수도와 ICBM기지1곳의 2개소로 제한했고 1974.7 ABM의정서에서는 1개소로 제한했다. 미국에서는 1975.10 의회결정에 따라 운용이 중지됐고 소련도 모스크바주위에 배치한 64기외에 새로 배치하지않았다. 

1983 레이건미정부는 전략방위구상을 발표해 요격체계개발을 재개한다. 일명 스타워즈방어계획이라 불리는 전략방위구상은 <적의핵,생화학탄두탑재미사일을우주에서요격·파괴한다>는것이었다. 조지W부시정부는 전지구적제한공격방어계획(GPALS), 클린턴정부는 전역미사일방어(TMD)·국가미사일방어(NMD), 조지W부시정부는 미사일방어(MD)로 명칭만 변경했다. 조지W부시는 2007까지 실전배치를 목표로 2002 탄도탄요격미사일협정에서 탈퇴했다. MD는 상대미사일을 상승-중간-종말 3단계에 걸쳐 요격하는 체계로 구성되며 조기경보체계·상층방어요격체계·하층방어요격체계·지휘및통제체계로 나뉜다. 

2010.2 미국은 탄도미사일방어검토보고서(BMDR Ballistic Missile Defense Report)에서 탄도미사일의 세계적확산을 언급하며 북과 이란을 특히 경계했다. 보고서에는 알래스카주·캘리포니아주공군기지2곳에 지상기반중간단계방어(GMD)체계를 배치했다고 밝혔다. GMD는 탄두·지상배치레이더·전투관리지휘체계등으로 구성됐다. 그외 본토방어를 위한 조기경보체계로 알래스카·그린란드·영국·캘리포니아에 고정식레이더를, 알래스카해역에 해상배치X밴드이동식레이더를 배치하며 지상·해상에 미사일방어체계를 구축했다고 밝혔다.

2017.9.17 미안보전문매체 내셔널인터레스트는 <미국의미사일방어망은왜북에작동하지않나>라는 제목을 통해 미MD체계의 허상을 비판했다. 미국의 미사일방어망전략에 따르면 ICBM보다 사거리가 짧은 미사일은 이지스순양함·구축함에 배치된 SM-3요격기로 격추하게 돼있다. 미미사일방어청자료에 따르면 이지스시스템으로 IRBM급 미사일격추시험에서 성공한적은 딱 1번뿐이다. 매체는 레이더교란을 위한 방해용물체등을 사용하면 얼마든지 MD체계는 무력화될수 있다고 보도했다. 

소련·러시아

냉전시기 소련의 미사일·로케트기술은 미국에 비해 월등히 앞섰다. 미국에 독일에서 데려간 브라운이 있었다면 소련에는 자체적으로 뛰어난 로케트개발자인 세르게이코롤레프와 우주과학·장비개발에 업적을 세운 므스티슬라브켈디쉬가 있었다. 전후 코롤레프가 중심이 돼 독일 페네뮌데연구소에서 만들어졌던 V-2의 정보를 수집했고 코롤레프와 켈디쉬의 협력하에 자체적으로 미사일·로케트개발에 착수했다. 1947 첫번째탄도미사일·다탄두형로케트 R-1제작에 성공했다. R-1은 V-2를 역설계해 제작한것으로 R-1의 등장은 V-2의 기술을 소련이 전부 흡수했다는것을 의미했다. 1949 소련의 핵폭탄개발은 장거리로케트개발을 더욱 촉진했다. 코롤레프는 곧이어 사정거리가 V-2보다 2배이상 긴 R-2를 제작했다. R-2는 몸체의 연료통과 엔진부가 분리됐다. 현대적개념의 최초의 다단로케트다. 

R-1·R-2가 전쟁시기 독일미사일기술을 바탕으로 생산된것이라면 1953 개발된 R-5는 순수 소련기술로 소련자체미사일계획으로 제작됐다. R-5는 최초의 IRBM으로 1200km의 사정거리를 가지고 실전배치됐다. R-5는 로케트의 몸체에 구역을 나눠 연료·산화제를 수용함으로써 구조가 더욱 간단하고 많은 양을 싣고 발사될수 있었다. 소·미냉전시기에는 사정거리가 1200km보다 길어 미본토까지 다다를수 있는 초장거리로케트, ICBM을 요구했다. 

당시 세계과학계는 1957.7~1958.12 태양활동증가예상기간을 고층대기와 외계우주연구를 위한 국제지구물리학연도(IGY International Geophysical Year)로 지정했다. 미국은 1955.7 IGY참여의 한방안으로 기간중에 과학연구용 소형인공위성발사프로젝트인 <뱅가드>를 발표했다. 소련은 1953부터 개발중이던 ICBM R-7세묘르카를 활용한 위성발사계획을 발표했다. 

R-7은 3Mt급수소폭탄무게인 5t탄두를 8000km이상 날릴수 있게 개발되고있었다. 강력한 추진을 위해 여러개의 엔진을 다발로 묶는 형태의 클러스터링방식을 사용했다. 1957 3번의 R-7발사가 모두 실패하다가 8월 4번째발사가 6500km떨어진 캄차카반도에 있는 목표물을 명중시키는데 성공했다. R-7은 같은해 10.4 세계최초인공위성 스푸트니크1호발사에 사용됐다.

소련은 SLBM분야에서도 미국에 앞서 있었다. 소련은 독일의 프뤼프슈탄트7발사대를 입수해 SLBM을 개발했다. 프뤼프슈탄트는 V-2를 별도의 잠수컨테이너에 수납해 잠수함으로 견인하다가 목표물이 사거리내 들어오면 부상해 미사일을 발사하는 방식의 SLBM 초기형태였다. 소련은 프뤼프슈탄트를 바탕으로 역설계해 스커드미사일을 발사할수 있는 골렘2견인발사대를 완성했다. 이후 견인식의 한계를 넘어 잠수함내 발사대자체를 수납하는 기술을 개발해 프로젝트611(나토명 줄루급)잠수함을 완성했다. 1959 R-13SLBM(나토명 SS-N-4Sark)을 줄루5급과 골프급잠수함에 싣고 실전배치했다. 골프급잠수함은 배수량 2000t급의 SLBM디젤잠수함으로 재래식이었으며 수면위로 부상해야만 발사할수 있다는 한계가 있었다. R-13미사일의 사정거리는 600km였다.

1959.12 소련정부는 전략로케트군창설을 준비했다. 21차소련공산당대회에서 당시 국방장관 말리노브스키는 <제국주의침략자들에의해발생한세계어떤전쟁에서든반드시핵로케트전쟁의형태를취하게될것이다>라고 발표했다. 1962 전략로케트군의 첫번째해외작전전개가 쿠바미사일위기였다. 여기에 51로케트사단이 투입됐는데 R-12IRBM을 장비한 3개로케트연대와 R-14IRBM을 장비한 2개로케트연대가 투입됐다. 10월 미국의 U-2기가 미국과 145km 떨어진 쿠바 크리스토발지역에 소련의 R-12(나토명 SS-4)기지가 건설되는것을 포착했다. 미국은 <쿠바에서미본토로핵미사일이날아오면소련영토에도보복하겠다>며 초강경대응방침을 밝혔다. 미국은 쿠바를 침공하지않겠다고 약속하고 터키에 배치한 미사일기지철수를 쿠바미사일철수조건으로 제시했다. 13일간의 대치상황끝에 흐루쇼프·케네디비밀협상으로 쿠바미사일위기가 종식됐다. 당시 소련육군작전참모장 아나톨리그립코프는 <핵대재앙은실끝에매달려있었다.우리는하루나시간단위가아니라분단위로카운트다운을하고있었다.>며 미사일전쟁위기의 심각성을 밝혔다. 소·미는 1963 제한적핵실험금지조약을 체결해 대기권·우주·수중핵실험을 중단하기로 했다. 1972 잠정협정과 ABM조약을 두축으로 하는 SALT1을 체결했다. 잠정협정은 상호간 전략핵무기미사일수에 제한을 두고 정찰위성으로 검증하자는것이고 ABM조약은 미사일요격능력에 제한을 두는것이다. 1979 미대통령 지미카터와 소련주석 레오니트브레즈네프가 SALT2에 서명했으나 나토가 1979 미순항미사일 퍼싱2의 배치를 승인하고 12월말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면서 SALT2는 결렬됐다.

1950년대 소련은 대함순항미사일을 공군기지에서 이륙한 장거리전략폭격기에서 발사해 상대 순양함을 공격했다. 당시 순항미사일은 주로 지상공격용이었는데 1964까지 소련해군의 순양함·구축함·잠수함에 대함미사일이 실전배치됐다. 

1960년대 실전배치된 P-15테르미트(나토명 스틱스)는 대함미사일체계다. 소련이 1951 제작했던 실험용제트기 Yak-1000을 무인화하고 유도장치를 탑재한 초기형 대함미사일이다. 테르미트는 1955.7 이스라엘에 판매된 영구축함 HMS질러스를 피격한 스틱스쇼크로 유명해졌다. 1967.10 수에즈운하북단 이집트의 포트사이드항부근에서 무력시위중이던 이스라엘해군소속 아일라트호(HMS질러스)를 이집트해군 고속정이 4발의 테르미트미사일로 격침시켜 이스라엘해군 138명의 사상자를 낳았고 함정은 침몰했다.

1970년대 설계된 P-700그라닛은 소련의 함대함·함대지초음속순항미사일이다. 사거리가 짧았던 P-70, P-120을 대체하기 위해 개발됐다. P-700은 탄두중량 750kg, 재래식탄두·500kt수소폭탄을 탑재할수 있으며 저고도비행시 마하1.6, 고고도비행시 마하2.5의 속도를 냈다. 사거리는 625km다. P-800오닉스는 P-700의 후계로 초음속대함순항미사일이다. P-800은 1983 개발을 시작해 1987 양산됐다. 해군의 표준대함미사일을 지향하며 잠수함·초계함등 다양한 함정에 운용되고 공대함·지대함형식등 범용성이 뛰어나다.  

나토명 스커드미사일로 잘 알려진 R-11(초기형)·R-17(개량형)은 전술탄도미사일이다. 소련은 1950년대초반 연료주입후 즉시 발사해야한다는 문제점을 지닌 알코올·액화산소연료를 케로신계열연료·적연질산산화제로 대체하면서 본격적으로 미사일을 개발했다. R-11은 1953~55까지 약35회 시험발사했으며 1955.7 실전배치됐다. 핵탄두장착형 R-11M은 1954부터 개발됐다. R-11의 성능강화를 위해 R-11MU가 개발됐다. R-11M은 원형공산오차가 3km에 달해 정확도가 낮았으며 액체연료미사일이 지닌 복잡한 절차상문제도 있었다. 원형공산오차란 발사된 미사일이나 포탄의 낙하지점이 절반이상 분포될것으로 예상되는 원의 반경을 의미한다. 고체연료미사일을 개발하기에는 기술적으로 부족했던 소련은 액체연료주입상의 복잡한 문제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R-17을 개발했다. R-17은 신형AK-27I산화제·TM-185연료를 사용함으로써 사거리가 300km로 연장됐다. 이후에도 연료주입문제를 계속 개량하며 발전했다. 1970년대 전술탄도미사일교리를 여러 차례 수정하며 탄도미사일을 재분류하면서 R-17을 R-300으로 재명명했다. R-17은 1962 159미사일여단에 처음으로 배치됐다. 실전발사태세는 1964부터 갖춰졌다. 이듬해 소련열병식에 등장했으며 다른 종류의 미사일과 혼합발사가 시도된것은 1968이다. 1980년대까지 바르샤바조약국에 발사차량 140여대를 수출해 15개 R-17미사일여단이 구성됐다. 소련해체후 R-17은 이집트·리비아등 중동지역을 중심으로 확산됐다. R-17은 현대전쟁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미사일로 1973 이집트의 10일전쟁, 1980 이란·이라크전쟁, 1989 아프가니스탄내전등 10여개전장에서 총4000발이상 발사된것으로 알려졌다. 소련은 1989까지 해외11개국에 2300여발의 R-17을 수출했다고 밝혔다. R-17미사일은 다른 나라의 탄도미사일개발의 중요한 표본이 됐다. 

2006 9K720이스칸데르가 실전배치됐다. 9K720이스칸데르는 전장9.3m·직경0.92m·속도마하6.2·사거리500km·비행고도50km의 신형단거리전술탄도미사일이다. 이스칸데르는 단순탄도비행으로는 600km가 넘으나 복잡한 요격회피비행을 하기에 사거리가 짧다. 하강단계에서 급상승기동을 하며 탄도비행중 회피기동을 하는것이 특징이다. 종말단계에서 속도가 마하10으로 높아지고 회피기동능력이 뛰어나 요격이 불가능하다. 2형집속탄두인 성형작약탄을 내장하고있다. 러시아는 2016.10 이스칸데르M미사일을 칼리닌그라드에 실전배치했다. 칼리닌그라드는 나토를 견제하는 전략적요충지다. 당시 미정부가 유럽MD체계구축의 일환으로 폴란드·루마니아등에 요격미사일을 배치하고 나토가 폴란드·발트3국등 4개국에 4개대대병력 4000여명을 배치하기로 결정하자 러정부는 즉각 칼리닌그라드에 이스칸데르M의 배치를 경고했다. 러국방부는 칼리닌그라드를 시작으로 2017말까지 러시아서쪽영토대부분을 관할하고있는 서부군관구의 전술미사일체계를 이스칸데르M으로 모두 교체했다. 

중국

1950년대초 모택동중국국가주석은 <과학을향해진군하자>는 구호하에 미사일을 비롯한 군사과학기술에 집중했다. 주은래국무원총리가 미사일기술을 포함한 장기적인 과학기술발전계획을 수립하고 1956.2 항공역학연구자·우주과학자 첸쉐썬(전학삼)박사가 미사일기술발전에 조언을 하면서 미사일개발이 본격화됐다. 중국이 미사일개발에 집중했던 이유중 하나는 미국의 지원을 받은 대만과의 전투에서 미사일로 패한것이다. 1958.9 중국과 대만전투기들이 벌인 진먼섬상공에서의 공중전에 대만은 세계최초로 미사일을 사용했다. 대만은 F-86F전투기에 미국이 비밀리에 건네준 단거리공대공미사일 AIM-9사이드와인더를 장착했다. 대만은 중국전투기 미그-17과 미그-15bis를 상대로 압승을 거뒀다. 물론 당시의 승리는 미사일요격의 정확도에 의한것이 아니라 미사일의 등장에 혼비백산한 중국전투기들을 대만측에서 기관총으로 쏴 떨어뜨린것이다. 이사건으로 중국은 절치부심하며 미사일개발에 뛰어들었다. 

중국은 초반 소련의 도움을 제외하고 미국의 로케트기술개발에 깊이 개입했던 첸쉐썬박사의 노력에 의해 로케트·미사일을 자체기술로 개발할수 있었다. 2차세계대전말 브라운으로부터 기술을 전수받기도 했던 첸쉐썬은 미MIT와 칼텍에서 항공공학교수로 있다가 매카시즘에 의해 공산주의자로 몰려 5년간 미당국으로부터 연금을 당했다. 중국정부는 코리아전의 미군포로조종사11명을 풀어주는 대가로 첸쉐썬을 중국으로 귀국시켰다. 1956.3 주은래는 중앙군사위원회회의를 주재해 국방항공산업을 전담할 부처로 항공산업위원회를 만들고 주은래·녜룽전(섭영진)중앙군사위부주석겸부총리·첸쉐썬 3인이 로케트·미사일개발을 총괄·지휘하도록 했다. 1956.8 로케트·미사일담당중앙기구로 국방부5국이, 1956.10 항공산업위연구기구인 국방부5연구원이 창립됐다. 이때부터 중국과학기술자들은 소련의 지원을 받아 설계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1960.11 근거리미사일 둥펑1발사에 성공했다. 둥펑1은 소련미사일을 모방해 제작됐다. 1962.3 자체설계로 중근거리미사일을 개발했으나 발사에 실패했다. 이를 딛고 1964.6 둥펑2중단거리미사일발사에 성공했다. 둥펑2는 독자적인 기술로 개발된 미사일이었다. 이후 미사일개발속도가 매우 빨라졌다. 1966 핵무기미사일발사, 1970 중거리·중장거리미사일발사, 1971 장거리미사일발사, 1980년대 장거리전략미사일과 잠수함수중발사고체전략미사일의 발사시험에 성공했다. 

중국의 전략탄도미사일은 미사일기술능력진보수준에 따라 1세대와 2세대로 나눌수 있다. 1세대탄도미사일은 1980년대이전시기로 지대지탄도미사일이 주축을 이루며 둥펑-2·3·4·5로 4가지형의 지대지전략탄도미사일로 구성됐다. 그외 잠수함발탄도미사일 쥐랑1호가 있다. 

1960 연구개발이 시작된 둥펑2는 1단추진액체로케트엔진으로 발사하는 중단거리전략탄도미사일이다. 1964 시험발사에 성공했고 1966 배치됐다. 사거리 1019km로 기동발사가 가능하고 20kt가량의 핵탄두장착이 가능했다. 둥펑2는 중국동북부에 배치됐다. 

1966.12 시험발사된 둥펑3은 1단추진액체로케트엔진으로 발사하는 중거리전략탄도미사일이다. 실전배치는 열핵탄두장착을 위해 늦어지면서 1970년대초 부대배치됐다. 사거리 2544km로 주필리핀미군기지공격이 가능했다.

1970 시험발사에 성공한 둥펑4는 2단추진액체로케트엔진으로 발사하는 중장거리전략탄도미사일이다. 최대사거리4800km로 메가톤의 핵탄두를 운반할수 있는 LICBM(제한된대륙간탄도미사일)이다. 중앙군사위는 괌의 미국전략항공사령부기지를 둥펑4의 가상목표물로 삼았다. 

둥펑5는 1970 과학연구비행시험과 1980 실탄비행시험에 성공했다. 2단액체로케트엔진의 대륙간지대지전략탄도미사일이다. 사거리1만1112km로 미본토까지 다다를수 있으며 500Mt핵탄두장착이 가능했다. 1세대미사일들은 액체연료를 사용하고있어 몸체가 크고 기동성이 약하며 보관이 불편한것과 긴준비시간을 보완점으로 가지고있었다. 

그외 둥펑계열 탄도미사일로 중거리미사일 둥펑21, ICBM 둥펑31·41이 있는데 모두 고체연료를 사용하고있다. 둥펑21계열탄도미사일은 중국인민해방군로케트군이 운용하는 미사일이다. 둥펑21D는 대함탄도미사일로 특별히 대형수상전투함공격용으로 개발됐다. 둥펑21은 중국최초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쥐랑1형을 기반으로 1980년대부터 개발됐고 1985 첫시험발사에 성공했다. 1989부터 양산되던 둥펑21은 정확도를 계속 높이면서 둥펑21A·21B가 등장한다. 원형공산오차가 둥펑21은 700m, 21A는 50m, 21B는 10m로 정확도가 향상됐다. 최종모델인 둥펑21D는 2015.9.3 중국의 항일전쟁승리70주년기념열병식에서 최초로 공개됐다. 둥펑21D는 콜드런치방식으로 발사된다. 사거리는 1500km며 10m이내오차로 정밀타격이 가능하다. 둥펑21D는 세계최초 대함탄도미사일로 알려졌다.

군사적대결과 미사일개발

2019.1 미정부는 <2019미사일방어검토보고서(MDR)>를 발표했다. 이는 <2010탄도미사일방어검토보고서(BMDR)>발표이후 9년만이다. 보고서에서 미국은 러시아·중국이 2018 시험발사에 성공한 신형극초음속순항미사일·비행체를 미사일방어의 새로운 위협으로 인식한 사실을 드러냈다. 2018 러시아는 신형극초음속순항미사일 아방가르드의 시험발사에 성공했다. 아방가르드는 3단고체연료로 추진되며 최대속도가 마하20이상이다. 사거리 5800km에 최대16개분리형독립목표재돌입핵탄두(MIRV)를 탑재할수 있다. MIRV(다탄두각개목표설정재돌입비행체)는 하나의 미사일에 여러개의 탄두를 싣고 대기권밖에서 분리시켜 각각 다른 목표를 동시타격하는 방식이다. 각탄두의 위력은 100~900kt이며 최대500만t의 위력을 내는 극초음탄두는 1개만 실을수 있다고 알려졌다. 비슷한 시기 중국은 싱쿵2로 불리는 극초음속비행체의 시험발사에 성공했다. 극초음속비행체는 우주공간에서 로케트본체와 분리돼 극초음속으로 비행하기에 미국의 MD체계로는 탐지·요격이 불가능하다. 중국은 2017 둥펑17에 극초음속비행체를 탑재하며 여러 종류의 극초음속비행체를 개발하고있다. 싱쿵2는 초음속미사일개발에도 이용할수 있어 극초음속비행체의 개발속도가 더욱 빨라지고있다.  

또 보고서에는 미국과 그<동맹>국의 군사패권을 위협하는 ICBM의 증가와 기술발전에 대한 두려움이 드러난다. 북·이란이 미본토를 위협할수 있는 ICBM능력을 갖추고있을뿐만아니라 러시아·중국은 ICBM에 기만·방해능력, MIRV·MaRV(기동식재돌입체)기술을 적용하고있다. MaRV는 탄도미사일의 기동이 가능한 탄두로 MIRV보다 최신형으로 알려졌다. 최신탄도미사일기술들은 현재 하나의 탄두에 대응하도록 설계된 미국의 요격체계로는 대응이 불가능하다. 

보고서에는 순항미사일에 대한 위기의식도 나타난다. 러시아·중국의 극초음속순항미사일에 대한 대응이 불가능할뿐만아니라 이란이 배치한 단거리순항미사일·대지공격순항미사일은 주변친미국가들에게도 중대한 위협이 된다. 특히 중국의 둥펑21대함탄도미사일은 현재의 방어시스템으로 막는것이 불가능하다. 

마지막으로 러시아·중국의 위성공격무기개발이 미국에게는 위협적이다. 러시아는 2015·2018 신형위성공격무기시험발사에 성공했고 중국은 2018 신형위성공격능력을 지닌 중거리탄도미사일요격체계DN3의 발사시험에 성공했다. 

미국은 보고서에서 탄도·순항미사일 감지능력강화, 지상·해상에서의 미사일요격수단강화, 미<동맹국>·<우방국>에 대한 보호강화등을 내세웠다. 그중 <동맹국>·<우방국>에 대한 보호강화를 이유로 일본에는 이지스구축함2척의 성능을 개량해 SM-3블록2A등의 요격미사일을 탑재하고 루마니아·폴란드에는 이지스어쇼어탄도미사일요격방어체계를 배치해 중·러에 대한 군사적위협을 강화했다.

2018 블라디미르푸틴러대통령은 연례국정연설을 통해 6종의 최신예무기들을 공개했다. 푸틴은 <세상에는존재하지않았던신형무기의탄생>이라고 선언했다. 우선 핵추진순항미사일을 소개했으며 마하5이상의 극초음속미사일체계를 2017.12 러시아남부군관구에 배치했다고 밝혔다. 푸틴은 핵추진순항미사일에 대해 사거리가 무제한이고 예측하기 어려운 비행경로를 채택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원자로를장착한전략핵미사일>이라고 강조했다. 6종중 하나인 아방가르드와 함께 언급된 킨잘미사일은 발사후 마하10이상의 속도로 수분이내에 표적을 타격할수 있는 극초음속무기로 사거리는 3218km다. 푸틴은 차세대ICBM RS-28사르맛발사시험에 성공한 사실도 밝혔다. 거의 모든 미사일방어체계를 무력화하는 성능을 보유하고있다고 알려진 사르맛은 무기100t, 최대사거리 1만8000km로 메가톤급 MIRV를 15개까지 탑재할수 있는데 특히 <오브젝트4202>신형극초음속탄두를 탑재한것으로 알려졌다. 신형극초음속탄두는 미사일에서 분리된 뒤 자체경로를 따라 비행하도록 설계됐다. 그외 푸틴은 6종무기중 하나로 핵추진대륙간수중드론도 언급했다. 

2016 미국방부에 따르면 중국은 단탄두·다탄두가 혼합된 둥펑5, 이동식 둥펑31·31A를 주축으로 75~100여기 ICBM을 보유하고있으며 신형이동식다탄두미사일 둥펑41을 개발중인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2019 중국건국70주년 국경절열병식에서 둥펑41이 대규모로 첫선을 보였다. 둥펑41의 사거리는 1만4000km로 미국의 미니트맨보다 길다. 오차범위100m·최대10기의 핵탄두를 탑재할수 있다. 중군사전문가는 <중국이충분히믿을수있는전략핵능력을갖췄고핵위협에대응하기위해정책결정자들이둥펑41을선보이고사용할자신감이있음을입증한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극초음속무기는 <게임체인저>라고 불리는 최신예미사일기술로 지구대기권내에서 마하5이상의 속도를 가진 비행체를 의미하며 기존 탄도미사일도 포함하고있다. 크게 극초음속순항미사일(HCM)과 극초음속활공체(HGV)로 분류된다. 극초음속활공체는 탄도미사일이나 로케트에 실려 고도100km상공까지 올라간 다음 자체양력으로 활공비행하다가 목표물상공에서 낙하하는 방식으로 마하8~10의 속도와 비행궤도를 변경할수 있어 회피기동이 가능하다. 미국은 2020.3 미육군·해군이 공동으로 사용할수 있는 공동극초음속활공체(C-HGB)시험비행에 성공했다. 공동극초음속활공체는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의 중간고도에서 마하5이상의 속도로 1600km이상 떨어진 표적은 몇분안에 타격할수 있다. 반면 2021.4 진행된 B-52H폭격기를 이용한 극초음속미사일발사시험에는 실패하면서 미국이 중·러에 비해 극초음속미사일분야에서 뒤처지고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미정부는 2019 INF를 공식적으로 파기하며 새로운 군비통제조약에는 중국도 포함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지상발사중거리미사일의 생산과 배치를 금지한 INF를 파기함으로써 남을 비롯한 아시아에 중거리미사일배치계획을 드러냈다. 2020.8 세르게이라브로프러외무장관은 미국의 중거리미사일에 대해 <유럽뿐만이아니라일본·남에대해서도배치압력이커지고있다>며 대항조치를 하겠다고 통보했다. 미국은 중거리미사일배치를 시도함으로써 역내군사적긴장을 고조시키며 군비·미사일경쟁을 촉진하고있다. 

Exit mobile ver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