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주석은 1930년대 항일시기 항일무장투쟁·반일민족해방통일전선·자주적당창건의 3대노선을 제시했다. 1931 9.18만주사변으로 일제의 만주침략이 본격화됐다. 김일성주석은 당시 만주의 상황을 분석하면서 동북군의 군관구두령들이 싸워보지도 않고 자기조국을 반역하고있지만 많은 하층병사들과 민족적양심이 있는 일부장교들은 군벌두령들의 투항기도를 반대해 병변을 일으키고 산으로 들어가고있다고 지적하면서 항일구국의 기치를 든 중국인반일부대들과 연합전선을 형성하게 된다면 반일무장력을 급격히 확대강화하고 일제의 침략무력에 보다 큰 정치군사적타격을 줄수 있다고 강조했다. 당시 만주지역에서는 일제의 기만선전과 민족도발책동에 넘어가 조선사람, 특히 조선공산주의자들에 대해 <일제의앞잡이>·<만주를적색화한다>등으로 적대시하고있는 현실도 짚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릇된 인식을 깨우쳐주고 반일역량의 단합을 이뤄낼것을 강조했다. 김일성주석은 반일부대들은 민족주의군대로 상층부의 동요성과 계급적제한성이 있지만 큰 반일역량이라고 강조했다. 김일성주석은 중국인반일부대와의 반일연합전선을 위해 항일시기내내 일관되게 노력했다. 김일성주석은 회고록<세기와더불어>에서 조선인민혁명군은 경우에 따라서 동북인민혁명군이라는 이름을 가지고도 활동했다면서 동북이라는 명칭은 국호가 아니라 지역적개념이라며, 동북인민혁명군은 조선인민혁명군으로서의 사명과 함께 중국공산주의자들의 반만항일위업에 이바지하는 혁명무력으로서의 사명도 동시에 담당했다, 조선인민혁명군은 간도·동변도일대와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조선반도전역에서 가장 강대한 무장력으로 발전했다, 훗날 동북항일연군을 조직한 다음에도 조중항일연합군의 성격에 맞게 중국동북지방에서 활동할때에는 동북항일연군이라고 했고 조선사람들이 많은곳에 가거나 조선에 나와서는 조선인민혁명군이라고 정황에 맞게 이름을 바꿔가며 활동함으로써 이르는곳마다에서 북중양국인민의 사랑과 보호속에 살며 싸울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1942.7 조·중·소 3나라의 국제연합군이 편성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