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 미국과 IMF, 그리고 남미국가들의 금융당국자들이 워싱턴에 모여 10가지주요경제정책에 대해 합의했다. 이는 남미국가들이 정부규제축소와 자본시장자유화등의 IMF구조조정정책을 그대로 따라야한다는 내용이었다. 흔히 <신자유주의>라고 하는 <워싱턴컨센서스>의 기본내용을 이룬다. 소련사회주의붕괴이후 국제금융자본세력이 미국식시장경제를 이식하고 더욱 과감하게 금융적수탈을 하려는 의도였다. 이후 1990년대 다수의 나라들이 헤지펀드의 공격을 받으며 외환위기에 처하고 고정환율제를 지키지못해 변동환율제로 전환하거나 남코리아처럼 주요은행과 기업을 외국자본에 넘겨주는 일들이 발생했다. 1989 독일통합이후 독일은 동독의 경기부양과 마르크화의 통화안정을 위해 초고금리정책을 취하면서 유로통화동맹의 다른 나라들에 희생을 강요했고 전반적인 유럽통화위기에 처했다. 영국도 마찬가지였는데 헤지펀드를 운용하는 소로스가 파운드화매도주문을 내면서 공격했다. 영국중앙은행은 파운드화폭락을 막지못했고 영국은 유로통화동맹에서 결국 탈퇴했다. 소로스는 이과정에서 10억달러를 벌어들였고 소로스펀드의 그해 운용수익률은 68.6%를 기록했다. 1994 나프타를 결성했는데 고금리의 멕시코채권에 미국의 단기자금이 몰렸다. 1994 그린스펀의 미연준(미연방준비제도 Fed)은 13개월동안 총7차례의 금리인상을 단행했다. 금리는 3.05%에서 6.05%로 올랐다. 이 이례적인 금리인상에 투자자들이 자금을 회수해가면서 멕시코페소화가 폭락하고 멕시코는 고정환율제를 포기하면서 페소화는 66.7% 절하됐고 주가는 40% 폭락했다. 당시 미투자자들이 회수해간 자금은 250억달러에 이른다. 1997 소로스등의 헤지펀드들과 JP모건등 월가금융기관들이 나서서 태국바트화에 매도주문을 냈다. 태국은 환율방어를 위해 외환보유액에서 막대한 자금을 사용했고 6월말 16개금융기관에 대해 영업정지를 명령하면서 합병·구조조정계획제출을 지시했다. 영국이 독일의 마르크화의 영향을 받았듯이 태국경제는 일본엔화의 평가절하에 영향을 받았다. 동아시아지역의 투자자금은 엔화가 많았는데 태국의 외환투자자금은 엔화가 50%를 차지했다. 엔화가 1995 1달러당 80엔화에서 1년반만에 120엔대로 올랐고 태국의 무역적자가 확대됐다. 1997.7.2 태국중앙은행은 고정환율제를 포기하고 변동환율제를 채택했으며 바트화폭락으로 이어졌다. 1997 외환위기당시 남코리아도 빠져나가는 외국자본에 외환보유고를 탕진하면서 IMF구조조정에 손을 내밀게 됐다. 1997초 남코리아기업들은 JP모건의 바트화등 동남아와 연계된 외환선물파생상품을 JP모건에게 자금을 빌려 계약했다가 전체적으로 16억달러의 손해를 입었다. 손해를 입었지만 JP모건이 무이자로 빌려준 자금을 갚아야했고 지급보증을 선 은행들까지 엮였다. JP모건은 남코리아외환위기이후 1998상반기까지 반년사이 총12건의 남코리아채권발행주간사로 선정돼 총40억달러의 채권을 발행시켰다. 이기간 세계는 자국의 외환보유고를 철저하게 유지해야한다는 확실한 교훈을 얻게 됐으며 이후 달러의 대대적인 통화팽창에도 그가치를 유지하는 큰 밑천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