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미국의 독립전쟁과 프랑스의 부르주아혁명이후 두려움을 느낀 봉건왕조세력이 빈체제를 획책했으나 그붕괴를 막지못했듯이 자본주의사회 또한 100년도 채 안돼 1차세계대전의 제국주의간전쟁이라는 그 모순의 폭발을 막지못했다. 독일·이탈리아·일본은 후발자본주의국가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뒤늦게 통일을 이뤄내고 강력한 국가적바탕으로 먼저 자본주의적발전에 들어간 국가들을 뒤쫓기 시작했다. 1920·30년대 사민주의세력이 집권한 독일 바이마르공화국은 1차세계대전의 패전국으로 종전협상결과 바르사유조약에 따른 배상금을 감당해야했고 초인플레이션을 경험했으며 이어 1929 전세계적인 상대적과잉생산공황의 여파에 경제가 파탄나자 나치와 공산당이 부상했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지배세력은 나치와 협력을 추진했다. 히틀러나치정권은 집권뒤 1933초 수주간 라디오와 언론, 뉴스영상을 이용해 <사회주의폭동>에 대한 공포심을 조장하고 자유와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정치적수단으로 대중의 불안감을 조성했다. 수개월만에 기존 독일언론들을 모두 파괴했다. 나치정권은 당시 자신들의 권력을 가장 위협했던 공산주의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1933.2 <국회의사당방화사건>을 조작하고 대대적으로 탄압했다. 1925·32 독일공산당후보로 대선에 나섰던 텔만은 1933.3 나치독일치하에 체포돼 1944.8 부헨발트수용소에서 학살됐다. 히틀러나치당은 이어 1933.3 전권위임법을 통과시켰고 5.10 사회민주주의계열정당의 자산을 압류했으며 결국에는 당활동을 금지시켰다. 또 6.21 국가인민당의 사무실을 기습하고 며칠뒤 국가인민당도 해산시켰다. 7.14 독일은 나치당만이 유일한 합법정당인 1당제국가가 됐다. 새로운 당의 창당도 불법으로 규정됐다. 나치는 집권이후 팔레스타인시온주의자들과 결탁해 <유대인해외이민장려>정책을 실시하고 독일지역의 유대인들을 팔레스타인으로 이주시켰다. 그뒤 전쟁발발이전해인 1938.11 인종주의적유대인배척정책의 행동전에 들어가 유대인상점과 사원들을 공격하고 유대인의 보험금과 재산을 몰수했다. 1935 나치는 베르사유조약은 무효라며 재무장을 선언했다. 베르사유조약은 육해군병력을 총10만명이 넘지않도록 하고 항공전력보유나 전차개발을 금지하는등 독일의 군대를 제한했다. 영국은 1935.6 독일과 해군조약을 맺어 독일의 해군력증강에 찬성했다. 나치는 재무장선언후 독일병력을 55만명으로 증원하고 1936.3 라인란트비무장지대에 전격적으로 독일국방군을 주둔시켰다. 나치독일은 1938 오스트리아에 이어 체코까지 병탄했다. 1939.9 폴란드를 침공함으로써 2차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이듬해 6월 프랑스를, 그다음해에는 소련을 침공했다. 나치독일은 파쇼탄압으로 국내진보세력을 제거하고 민중을 억압하며 그호전침략성으로 독·이·일추축국동맹을 제외한 전세계를 적으로 돌렸다. 결국 소·미·영연합군에 포위돼 1945.5 패망했다. 히틀러는 베를린이 소련에 함락되기직전 자신이 아끼던 개를 죽이고 자신도 애인과 혼인후 함께 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