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터전에서 쫒겨난 팔레스타인인에게 이스라엘건국은 <재앙의날>로 기억된다. 1948.5.14 영국의 위임통치가 종료되고 1차중동전쟁이 시작됐다. 이집트·이라크·트란스요르단·시리아·레바논·사우디·예멘등이 참여한 이전쟁에서 이스라엘은 군사적으로 열세했지만 미국의 무기지원으로 이집트 카이로, 요르단 암만, 시리아 다마스쿠스를 폭격했다. 그결과 1949.2 정전협정이 체결되며 1차중동전쟁은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났다. 이스라엘의 영토는 더욱 확장됐다. 유엔분할안에 의한 이스라엘의 영토크기는 팔레스타인지역의 56%였으나 휴전후 팔레스타인영토의 80%를 차지했다. 아랍측의 패배는 약90만명의 팔레스타인주민들의 대이동을 초래했고 피난민들은 가까운 아랍국가들에 분산됐다. 이집트에서 친영정부를 전복한 나세르대통령은 1956.7 수에즈운하를 국유화하고 영국·프랑스제국주의자들에 귀속된 수에즈운하에 대한 주권을 실현하고자 했다. 더해 이스라엘선박의 통과를 금지시켰다. 영국·프랑스는 운하운영권을 되찾고 원유의 안전항행로를 확보한다는 명분아래 이스라엘을 부추겨 2차중동전쟁을 일으켰다. 영국과 프랑스는 공군을 동원해 수에즈운하를 폭격했고 이스라엘은 영국·프랑스와 동맹을 맺고 이집트 시나이반도를 침공·점령했다. 아랍권은 이를 <3국침략>이라 부른다. 소련은 이스라엘의 침공이 수에즈운하를 이집트로부터 서방국가 손에 넘기기 위한 작전의 일환이라는 입장이었다. 미국은 유엔을 통해 영국·프랑스에 정치적압박을 가했고, 영국·프랑스군이 철군하며 종결됐다. 아이젠하워미대통령은 이를 명분으로 중동에 미군을 주둔시켰다. 이전쟁으로 영국과 프랑스는 수에즈운하의 소유권을 완전히 상실했으며 서구의 침략을 물리친 나세르를 중심으로 아랍민중은 더욱 단결했다. 1964.1 아랍정상회의에서 PLO(팔레스타인해방기구)가 탄생했다. 아랍정상들은 게릴라전을 동반한 무장투쟁으로 팔레스타인해방을 이룰것을 결의했다. PLO는 설립후 요르단·레바논·이집트·시리아등에 거점을 마련하고 이스라엘과의 투쟁을 강화했다. 이스라엘은 1967.4 시리아내 아랍게릴라기지에 대한 대규모공격을 감행했다. 나세르는 이스라엘의 무력침공을 반대해 반제반이스라엘투쟁을 불러일으켰다. 5월 나세르는 비무장지대였던 시나이반도에서 유엔긴급군을 철수시키고 자국군을 주둔시켰다. 시나이반도남부의 이스라엘의 유일한 해상통로인 티란해협의 봉쇄를 선언했다. 요르단과 시리아도 대이스라엘선전포고를 했다. 실제적인 위협을 느낀 이스라엘은 전군동원령을 내렸고 6.5 이집트에 기습폭격을 가했다. 동시에 요르단·시리아를 공습했다. 3차중동전쟁으로 이스라엘은 요르단강서안지역과 가자지구, 동예루살렘, 시리아 골란고원, 이집트 시나이반도를 장악했다. 동예루살렘점령후 유대교의 성지인 <통곡의벽>앞 아랍인들의 거주지는 철거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