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으로 20만명의 팔레스타인사람들이 추방되고 난민으로 전락했다. 이스라엘이 비호하던 레바논의 기독교계민병조직 LF가 1982.9 베이루트남부에 조성된 2개의 팔레스타인난민촌 사브라·샤틸라에 난입해 팔레스타인인 수천명을 무차별 학살했다. 1982.6 이스라엘은 레바논을 침공했고 팔레스타인인들이 레바논에 모여사는것을 안보불안요소로 여겼다. 당시 이스라엘국방장관이던 샤론은 레바논침공전에 <레바논내의팔레스타인사람들을50만에서5만으로줄일것>이라고 공언했다. 학살후 이스라엘은 사건에 직접 개입했다는 의혹을 부인했지만 미국시사주간지 타임은 <샤론국방장관의승인아래이스라엘군은2주전에이미LF병력이난민촌에진격하도록계획했다>고 보도했다. 알자지라방송은 사브라·샤틸라사건을 조명하는 프로그램에서 <난민촌안에들어갔던것은LF병력이아니라이스라엘병사들이었다>며 이스라엘군이 학살을 주도했다는 전LF관계자의 증언을 전했다. 3차중동전쟁이후 예루살렘·시나이반도·서안지구·가자지구등 이스라엘점령지에 거주하던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억압은 심각했다. 이스라엘은 점령지의 일자리를 팔레스타인인에게도 개방했으나 실질적인 선택지는 이스라엘인들이 원하지않는 육체노동뿐이었다. 소수의 이스라엘정착민들이 점령지구의 토지절반이상을 소유할정도로 빈부격차는 심화됐고 팔레스타인인들은 취업·승진등에서 극심한 제약을 받았다. 1987.10.1 이스라엘군인들이 가자지구에 난입해 팔레스타인민간인7명을 죽이고 며칠뒤에는 팔레스타인여학생을 이유 없이 총으로 살해한 이스라엘인이 무죄판결을 받았다. 12월에는 팔레스타인노동자4명이 이스라엘방위군의 트럭에 치어 살해됐다. 사망자들의 장례식에 1만명 넘는 조문객이 모이면서 군중시위로 번졌다. 이스라엘이 시위대를 향해 총격을 가하면서 17살여학생이 사살됐다. 인티파다는 이스라엘의 식민통치에 대한 140만팔레스타인인들의 쌓이고 쌓인 분노의 폭발이었고 팔레스타인의 역량이 독자적으로 성장하는 계기로 됐다. 인티파다를 홍보하는 전단에는 통행금지령철회및검문소폐쇄와 함께 1967당시 이스라엘이 점령한 영토에서 철수할것을 요구하는 내용이 담겼다. 서안및가자지구에 있는 이스라엘방위군시설에는 그라피티·바리케이드설치·화염병투척등이 일어났다. 총파업, 이스라엘산상품불매운동, 이스라엘민정기구에 대한 보이콧등 저항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스라엘은 군인8만명을 배치하면서 대응했다. 13개월동안 팔레스타인인332명, 이스라엘인12명이 사망했다. 최초1년동안 이스라엘안보군이 사살한 팔레스타인인311명중 53명은 17세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