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항쟁의기관차 〈2026.4 항쟁의기관차〉 제국주의팽창과 동아분쟁의 기원

〈2026.4 항쟁의기관차〉 제국주의팽창과 동아분쟁의 기원

19세기말 자본주의가 독점단계에 이르며 제국주의로 이행하면서 열강들의 식민지쟁탈전은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전역으로 확대됐다. 동아(아시아)는 그각축장의 핵심이었다. 1910 청일전쟁은 동아에서 일본제국주의가 패권을 확립해가는 출발점이었다. 조선을 둘러싼 청일간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시모노세키조약으로 대만을 할양받았다. 이어 1904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고 1905 가쓰라태프트밀약등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국제적으로 공인받으며 1910 조선을 강점했다. 1차세계대전은 제국주의열강간 식민지재분할전쟁이었다. 전후 베르사유체제는 패전국 독일을 극도로 압박하면서 파시즘의 온상을 만들었다. 이것이 2차세계대전의 역사적배경이 됐다. 일본제국주의는 이시기 중국대륙침략을 본격화하며 난징대학살을 자행했고 조선민중을 전쟁에 강제동원했다. 2차세계대전의 종결은 미제국주의가 그자리를 대체하는 새로운 지배구도를 낳았다. 일본패망후 코리아반도는 38°선으로 분할되고 중국에서는 국공내전이 재개됐다. 미제국주의는 장개석국민당정부를 지원하며 중국혁명을 저지하려했으나 실패했다. 미국은 1937 중일전쟁발발이후부터 장개석군대를 군사적으로 지원해왔다. 이지원은 일제패망이후에도 이어지는데 1937~48 약46억110만달러중 60%이상이 1945.8이후 이뤄졌다. 미국은 미국제탱크와 항공기, 대포등 최신무장장비를 제공했으며 1945.8기준 장개석군253개사단중 39개사단이 미국식최신무기로 무장했다. 직접적인 경제원조로는 1947.10 2770만달러, 1948 20억달러규모가 제공됐다. 1945말 약10만명의 미군이 황하지역에 투입됐고 국민당이 위기에 처한 지역에 5만명의 미해병대가 배치돼 공산군을 저지했다. 미국은 군사적지원외에도 소련과 국민당과의 협정을 주선해 소련이 공산당을 지원하지않도록 애를 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개석정부는 패배했다. 이패배는 소련의 핵무장화와 함께 미국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줬다. 애치슨미국무장관은 1949.8 중국백서를 발표하고 국민당의 부패가 패배의 원인이며 미국의 잘못은 없다고 둘러댔다. 중국에서의 실패이후 미국은 동아전진기지로서 중국 대신 일본을 선택하는 전략적방향전환을 추진해야했고 1950.1 <애치슨라인>이 나오게 됐다. 미국은 이후 대만을 중국봉쇄의 교두보로 활용했다. 1950 미제국주의는 코리아반도에서 전쟁을 도발했다. 코리아전은 중국공산당의 대만수복을 저지시키며 장개석정권을 위기에서 벗어나게 해줬다. 미국은 장개석대만정부의 코리아전참전을 수용하지않았는데 중국이 참전할 명분을 주지않으려는 이유였던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중국인민해방군이 아닌 중국인민지원군으로 참전해 격을 낮추는 모양을 취했다. 한편 중국은 1950.10초 티베트에 군대를 진출시켜 병합했다. 미국은 장개석군대의 대리전에서 중국대륙을 사회주의진영에 내준데 이어 직접전으로 전개한 코리아전에서도 패배했다. 미제국주의의 불패신화가 깨진것이다. 이전쟁을 계기로 미제국주의는 일본을 동아패권의 전진기지로 재편하고 미일<한>3각동맹체제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대만을 <가라앉지않는항공모함>으로 규정하며 중국봉쇄전략의 핵심거점으로 삼았다. 2차세계대전이후 미국은 <냉전>체제를 구축하면서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를 창설하고 전세계에 군사기지망을 구축했다. 동아에서는 미대만상호방위조약·미<한>상호방위조약·미일안보조약을 통해 반공군사동맹체제를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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