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의 역사를 1945미군정시기부터 본다면 81년, 1950코리아전을 기점으로 본다면 76년이다. 2차세계대전종전후 일제식민지였던 코리아의 독립에 관한 문제는 1945.12 모스크바3상회의에서 3국외무장관의 합의로 소미공동위를 통해 처리하기로 했다. 1946·47 2차에 걸친 소미공동위가 무산되고 미국은 코리아문제를 유엔으로 이관했다. 미국의 의도대로 유엔에서는 유엔감시하남북총선거실시를 결정했다. 당시 진정한 독립을 원했던 우리민족은 남북연석회의를 갖고 외국군대의 동시철거를 전제로 전조선정치회의를 소집해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그에 기초한 선거를 통해 나라를 건설할것을 결정했다. 미국을 등에 업고있던 이승만과 한민당세력만이 연석회의를 거부하고 미국의 유엔단독선거를 추종했으며 결국 미국은 이승만을 내세워 남단독정권인 <한국>을 세웠다. 이승만정권은 단독선거를 거부하고 항전에 나선 제주민중을 학살하고 1948.12 유엔으로부터 코리아의 유일합법정부로 인정받았다. 북측은 남북연석회의의 결정과 다르게 단독선거로 <한국>정부가 수립되자 곧이어 전국적인 총선거를 조직하고 9.9 공화국을 수립했다. 1950.5 <한국>의 2대총선에서 평화통일을 바라는 야당인사들이 대거 당선되자 이승만은 위기감을 느꼈고 조선은 평화통일을 위한 국회회담을 제안했다. 덜레스미국무부고문이 서울을 방문해 38°선을 시찰하고 국회개원일에 연설을 했다. 그뒤 1주일도 안돼 전쟁이 터졌다. 조선은 1950.6 코리아전이 발발하자 미제와 그앞잡이들의 무력침공을 반대하는 조선인민의 조국해방전쟁이 개시됐다며, 전쟁에 대해 조국의 독립과 민족의 자주권을 수호하고 공화국남반부 인민들을 미제의 식민지통치에서 해방하기 위한 정의의 조국해방전쟁, 조국수호전이었고 온갖 계급적원수들을 반대하는 준엄한 계급투쟁이었으며 동시에 미제를 비롯한 세계반동들의 연합세력을 반대하고 사회주의의 안전과 세계평화를 수호하기 위한 반제반미대전이었다고 밝히고있다. 김일성사령관은 우리는 미제가 조선전선에 저들의 침략무력을 대대적으로 투입하기전에 신속한 기동과 연속적인 타격으로 적들을 철저히 소탕하고 공화국남반부를 완전히 해방해야한다고 말했다. 7.7 유엔군조직이 결정되고 7.8 김일성사령관은 방송연설에서 <유엔의간판을도용한미제의책동과야수적본성>을 언급하며 <전체인민과인민군장병들에게미제침략자들을철저히격멸소탕할것>을 호소했다. 조선의 입장에서 코리아남반부와 그민중은 미제로부터 해방해야할 강토고 동포다. 영토완정은 국가의 영토를 완전히 갖춰 보전한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자국의 영토와 주권을 외부의 침해로부터 지키는것과 분열된 국토를 통일해 하나로 완성하겠다는 의지가 모두 담겨있다. 조선과 중국은 이개념을 일관되게 고수하는 이유가 다른데 있지않다. 조선은 <미제를남조선에서몰아내는것은빼앗긴영토와인민을되찾고전국적범위에서민족적자주권을확립하기위한우리인민의영토완정의신성한권리행사>며 <우리당과공화국정부는영토완정의원칙을대외관계분야에서견지해야할중요한원칙의하나로내세우고그것을철저히관철하기위해투쟁하고있다>고 밝히고있다. 조선은 코리아전이후 평화통일을 위해 연방제방안까지 제안하고 노력해왔으나 결국 실패하자, 2024.1 김정은국무위원장은 이 모든 역사적과정을 총화하며 <한국>정부를 통일이 아니라 평정의 대상으로 삼겠다고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