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3 항쟁의기관차〉 교전중인 두국가관계 〈한국완전붕괴〉경고

해방과 분단 그리고 전쟁이후 총선거를 통한 단일국가건설노선은 1960 4.19항쟁이후 재차 제안됐으나 1961.5 박정희군사쿠데타로 무위로 종결됐다. 김일성주석은 1962.10 카리브해위기의 정황속에 최고인민회의연설에서 국방력강화를 강조했다. 이는 뒤에 <경제국방건설병진노선>으로 구체화됐다. 김일성주석은 이연설에서 미국이 남조선을 <원자탄및로케트1기지>로 전변시키고있음을 지적하고 일본군국주의의 부활과 <한>일회담을 통한 <동북아시아군사동맹>구축시도를 경고했다. 1980 조선노동당6차대회에 이르러 혁명을 비공개하고 <고려민주연방공화국창립방안>으로 1민족1국가2체제의 연방제통일방안을 제안했다. 이는 반미구국통일전선노선을 한편으로 하고있었다. 1987 6월항쟁과 민주화가 대선에서 군사정권의 재집권으로 결론지어지면서 1990년대 연방제통일목표도 실현되지못했다. 1991 소련붕괴라는 국제환경이 달라진 조건에서 조선은 <한국>과의 유엔동시가입을 수용하고 12월에는 남북기본합의서를 체결했다. 1993 <팀스피리트>미<한>합동군사연습재개에 맞서 조선은 NPT(핵확산금지조약)탈퇴를 선언했다. 1994 조미기본합의서는 핵동결과 관계정상화를 교환하는 구도였으나 부시정부의 등장과 함께 파기됐다. 김일성주석서거직후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선군정치를 선언하고 비상체계속에서 핵개발을 공식화했다. 6자회담이 진행됐다. 2차에 걸친 남북수뇌회담은 결정적인 전환을 이뤄내지못했다. 김정은국무위원장은 2016 당7차대회에서 통일에는 평화적방법과 비평화적방법이 있다면서 <남조선당국이제도통일을고집하며전쟁의길을택한다면정의의통일대전으로반통일세력을쓸어버릴것>이라고 밝혔다. 2018~19 판문점남북수뇌회담, 조미정상회담이 진행됐으나 2019.2 하노이회담이 결렬됐다. 김정은위원장은 앞서 2019.1 신년사에서 <새로운길>을 예고했다. 2020 코비드19대유행상황이 전개되고 이해 6월 김여정부부장을 대남사업총괄이라고 밝힌뒤 김여정부부장의 지시에 따라 개성공업지구에 있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는데까지 나아간다. 2022 전세계적전쟁정세고조를 거치며 2023.7 김여정부부장이 <대한민국족속들>·<대한민국의군부깡패들>이라고 비난하기 시작했다. 이해 12월 조선노동당중앙위8기9차전원회의에서 <적대적두국가노선>을 당정책에 반영하고 2024.1 김정은위원장은 최고인민회의14기10차회의시정연설을 통해 <북남관계가더이상동족관계,동질관계가아닌적대적인두국가관계,전쟁중에있는완전한두교전국관계>며 <조선반도에서전쟁이일어나는경우대한민국을완전히점령·평정·수복하고공화국영역에편입시키는문제를반영>할것이라고 선언했다. 대화와 협력을 위해 존재하던 기구와 단체들이 정리됐고 <남부국경>의 모든 연계통로가 물리적으로 차단됐다. 조선은 2026.2 당9차대회에서 재차 <한국>을 <동족이라는범주에서영원히배제한다>고 못박았고 <핵보유국의문전에서…우리의안전환경을다쳐놓는행위로인정되는경우임의의행동을개시할수있다>고 경고하며 <비과학적이고비현실적인것으로증명된한국과의대화와협력>에 추호도 집착하지않겠다고 확인했다. 2026 미국의 이란공격으로, 서아시아에 미국의 군사자산이 집중되면서 동아시아에 대한 억제력에 실질적공백이 발생하고있다. 중국의 대대만전략과 조선의 대<한>전략은 미국이라는 공통변수앞에서 구조적으로 맞물려있다. 1980 당6차대회에서 혁명전략을 비공개했다면 2024.1 항일무장투쟁의 혁명전통을 가진 통일전선공개전략을 폐기했다. 9차대회는 <한국완전붕괴>란 혁명전쟁의 가능성만 남았다는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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