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회코리아국제포럼 <노동·민생·복지>에서 경제학자·사회학자·사회보장제도전문가인 베흐나흐프리오가 첫 발제자로 나서 <임금과 프랑스사회보장제도>를 27일 발표했다.
프리오는 <프랑스의 노조나 CGT가 사측에 대항하면서 임금이 제도화되게 되었다>며 <임금문제는 계급투쟁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자본가는 하청업자와 계약을 맺는다. 그 하청업자가 노동자들을 채용하게 되는 것이다.>고 말했다. <임금은 발주자인 자본가와 하청업자간에 이루어진 가격>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하청업체에서 일하고있지만 제대로 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하청제도를 반대하고 착취대상이 되는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프랑스노동총연맹인 CGT가 결성됐다.>고 소개했다. <CGT는 1895년에 건설됐으며 1905년에는 노동자인터네셔널프랑스지부가 결성되었다.>고 전했다.
<이 조직된 힘으로 1910년에 노동법이 도입됐다.>며 <이 법은 하청업을 금지하고 있어 하청업자들과 노동자들이 전면적으로 충돌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시기부터 고용과 일자리, 임금이 전면적으로 제도화되기 시작한다.>고 프리오는 언급했다.
<고용은 직무를 통해서 나타났다>며 <직무는 세가지권리에 기반하고 있다. 첫번째권리는 개인자격에 관한 임금이며 두번째권리는 CGT 등의 투쟁으로 쟁취한 사회보장제도권리분담금이다. 세번째권리는 노동법규칙이다.>라고 프리오는 알렸다.
<프랑스노조는 1919부터 1975년까지 임금쟁취투쟁에 주력했다. 1차세계대전이후부터 결렬해졌으며 대체로 단체협상을 중심으로 파업이 전개됐다.>고 말했다.
<이파업은 프랑스노동자들의 정치투쟁으로 전개되면서 단체협약을 통한 처우개선을 요구하게 됐다>고 프리오는 강조했다. 그리고 <노동법에 근거한 1919년의 단체협약을 보면 이에 서명한 고용주는 그 내용을 지켜야만했다. 모든업종의 고용주가 단체협약에 가입하도록 1937년에 법으로 의무화됐다. 그러나 1938년에는 이것들이 폐지됐다.>고 비판했다.
<1950년이 되어야 자율적인 임금협상이 허용됐으며 <향후 25년동안 노조활동이 활발히 벌여졌다>고 힘주어 말했다.
<프랑스는 1958년에 실업수당이 생겼고 고용제도화가 된 것은 1967년이다. 이때 프랑스고용청이 창립됐으며 이와 함께 구직자들이 생겨났다.>고 밝혔다. 이어 <1960년대부터 30년동안 경제활동인구의 3분의2가 일했으나 현재는 저고용으로 민중들이 고통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프리오는 <프랑스나 남코리아도 민중 스스로 자신의 역사를 만들어 가야 한다. 특히 노동계급은 주권소외에서 벗어나야한다.>고 강조했다.
<나는 노동자의 위상에 대해 특히 관심을 갖고있다. 그래서 임금과 프랑스사회보장제도를 중시한다.>고 프리오는 말했다.
이어 <나폴레옹3세가 집권했던 1853년에 연금법이 도입됐다. 자신이 받았던 임금을 죽을 때까지 받게 된 것이다.>며 <특히 공무원은 연금납입금을 분담금으로 내지 않고 기금으로부터 퇴직금을 받는다. 그래서 공무원은 정년을 채웠을 때 마지막임금총액의 75%를 연금으로 받게된다.>고 언급했다. <이것을 강조하는 것은 자본주의시스템이 과거에 납입했던 것을 후불로 받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프랑스는 아이가 둘인 부모에 대해 금속분야에 일하는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인정해 한달에 225시간을 일하는 것으로 1946년에 만들어진 8월법은 보장되고있다>고 내세웠다.
한편 <은행·금속·화학 등 노조가 굉장히 강했던 업종의 노동자들은 안정적인 연금보장을 강조하고있다>며 <이들은 소수자들이 아니다 전체노동자의 3분의1을 차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프리오는 자본가계급이 연금혜택을 대폭 축소시키고 싶어한다는 것을 시사했다.
<프랑스에도 피고용자들이 있고 급여노동자가 있다>며 <현재 정규직보다 질적으로 낮은 일자리형태가 다앙하게 존재한다. 그래서 임금이 이때문에 정당한 수준의 임금이 인정되고있지 않으며 수많은 하청업체들이 만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자본가는 정규직고용에 반대하고 모든 분야에서 하청고용을 만들고있다>며 질타했다.
프리오는 <노동자가 생산해 낸 가치를 자본가들은 이윤 등으로 빼앗는다. 이것은 사회적 폭력이다. 민중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프랑스노동자들은 1950년까지만해도 의료서비스혜택을 받을수 없었다>며 <1955년과 1975년사이에는 의료보험을 받을수 있게 되면서 병원이 치료를 받는 곳으로 바뀌게 됐다.>고 내세웠다.
그리고 <2차세계대전에서 독일을 물리친 공로가 큰 프랑스공산주의자들은 1946년에 사회보장제도를 일반화했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직접 대표를 선출하고 운영했다.>고 말했다.
<프랑스사회보장제도는 1945년에 납입율이 순임금총액의 28%였고 그중 8퍼센트는 의료보험에 배분됐다. 그러나 1979년에는 65%로 인상되어 30년만에 2배나 되는 납입금을 노동자들은 감당하고 있다.>고 프리오는 비판했다.
또 <1946년에 만들어진 가족수당제도는 임금인상투쟁력을 약화시키는 수단으로 활용되고있다. 노동자들이 30%임금상승을 요구하면 자본가는 15%를 올려주고 나머지는 가족수당납입금으로 지불하면서 실질인상은 이들의 수준에 미달한다.>고 지적했다.
<식량·주택·에너지·안보·환경 등은 자본주의적논리에서 시급히 벗어나야 한다>며 <사회적 공동성을 계속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프리오는 강조했다.
프리오의 <임금과 프랑스사회보장제도>에 대한 발제가 끝난 후 다른 참석자들의 토론과 보조발제가 이어졌다. 그리고 프리오는 질의시간에 나온 내용에 대해 답변했다.
프리오는 <프랑스는 1970년대에 정년이라는 것이 만들어졌다>며 <이때는 실업자층에 사실 청년들이 없었다>고 말했다. <1945년부터 1975년까지 초임이 크게 증가해서 한집에 있는 청년노동자의 초임이 부모의 임금과 유사한 수준이었다. 이시기 청년들은 교육수준이 부모세대보다 훨씬 높아졌다.>고 밝혔다.
<하지만 1970년대중반이후부터 자본가는 <청년>이라는 새로운 실업자계층을 만들었다. 25세부터 30세 청년들이 포함된다. 이들은 부모세대들보다 임금이 훨씬 감소했다.>며 <1968년과 1998년을 비교하면 25세의 초봉이 절반으로 줄었다>고 지적했다.
프리오는 <이 때문에 보편적소득의 지급이 필요한 것이다>고 강조했다.
<나는 생산수단의 공동화를 강조한다. 그리고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것이다.>고 말하며 발언을 마쳤다.
9회코리아국제포럼은 28일 <노동자의 눈으로 본 평화와 통일>을, 29일에는 <세계노총과 장기투쟁노조가 함께하는 국제컨퍼런스>로 서울용산철도회관에서 정오부터 진행된다.
2019메이데이국제축전은 민중이 주인되는 사회를 연극·영화제·포럼·공연·건축전시회로 다양하게 보여주는 남코리아최초의 문화행사로 4.25~5.4일 서울에서 진행된다.
메이데이국제축전의 전체일정은 다음과 같다.
제1회 메이데이국제축전(MIF)
1. 프랑스극단<졸리몸>연극 <14-19>
4.25~27 저녁7시 소극장<알과핵>
2. 2019서울노동인권영화제 <인터내셔널>
4.25~28 인디스페이스
3. 9회코리아국제포럼 <노동·복지·평화>
4.27~29 12:00~18:00 용산철도회관
27토 <노동·민생·복지>
28일 <노동자의 눈으로 본 평화와 통일>
29월 <세계노총과 장기투쟁노조가 함께하는 국제컨퍼런스>
4. 메이데이전야제<역사는 거리에서>
사전공연(졸리몸) 4.28 18:00 홍대걷고싶은거리 여행무대
전야제 4.30 18:00 세종문화회관중앙계단
5. 건축전시회 <신념>
5.2~4 광화문 중앙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