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5 항쟁의기관차〉 전두환파쇼광의 광주학살·자작테러와 반파쇼 6월민중항쟁의 승리

전두환은, 군사파쇼에 대한 저항이 고조돼 민중항쟁이 예견되는 상황에서 박정희가 피살되고 1980 <서울의봄>의, 군사파쇼로부터 해방된 민중의 열기를 잠재우기 위한 민중학살을 통해 비로소 집권을 공고화할수 있었다. 한역사학자는 남역사에서 이승만만큼 많은 사람들을 학살하라는 명령을 내린 자가 없다고 평가했고 박정희만큼 실제 모든 민중운동을 불법화하고 억압한 자도 없지만 남역사상 어느 파쇼체제도 전두환처럼 노골적인 학살만행을 기반으로 수립되지는 않았다. 이런 이유로 미CIA조차 광주민중항쟁을 학살로 압살한 전두환정권을 매우 위태로운 정권으로 봤다. 남민중들은 이제 남의 군대가 남민중을 지켜주는 군대가 아닌 남민중을 제압하기 위한 무력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알게 됐다. 이는 6월민중항쟁을 폭발시키는 결정적계기중 하나가 된다. 6월민중항쟁은 전두환파쇼체제를 끝장냈을뿐만아니라 이땅에서 더이상 군부쿠데타가 일어날수 없게 만들었다. 1983.10 아웅산테러사건이 발발했다. 전두환정권의 내각관료 특히 경제관료들이 다수 목숨을 잃었다. 전두환은 30분 늦게 출발해 목숨을 부지했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에서 25년이상 기자로 근무해온 강진욱은 출판물<1983버마>(2017)에서 이사건이 자작테러라는것을 밝혔다. 그는 아웅산사건에 대해 레이건정권과 전두환의 합동자작모략극으로 <미국레이건정권이들어선뒤미·일·한3국동맹체가구축돼소련과북한을벼랑끝으로모는전략의일환>이었다고 밝히면서 <사건을벌인목적은한때비동맹운동의일원이던버마가<형제국>처럼여기던북한을내치고,결과적으로비동맹회의나유엔무대에서북한을고립시키는것이었다.이목적은상당부분달성됐다.>고 설명했다. 국내적으로 전두환정권의 기반을 강화하고 남코리아전사회적으로 반북반공흑색선전을 강화하는데 역할했다. 강진욱은 아웅산사건외에도 대구미문화원폭탄테러(1983.9.22), 김포공항폭탄테러(1986.9.14), KAL기폭파(1987.11.29)등 전두환정권시기에만 4건의 대형<국가테러>가 자행됐다고 주장했다. 이런 사건들로 미국의 북<테러지원국>지정이 이뤄졌고 나아가 2000년대 <테러와의전쟁>프레임도 만들어졌다. 파쇼체제는 반북·분단이데올로기로 연명하다가 결국 민중항쟁을 맞아 치명적타격을 입고 붕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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