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쟁의기관차8 – 해방] <밀정> 선택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나의 운명을 결정하는데서 결정적인 물음이다. <나라잃은군인>에게 길은 분명하다. 나라를 되찾기 위해 군인답게 싸우고 군인답게 죽는 오직 하나의 길이다. 내가 누구인지 안다면 무엇을 해야할지도 분명해진다. 그래서 묻는다. <어느역사>에 이름을 올리겠는가. 애국의 역사와 매국의 역사, 이둘사이에 중간은 없다.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 이미 충분히 산 삶이다. 그러니 어떻게 죽을것인가. 삶이자 죽음이다. 산다는것은 죽는다는것이다….

[항쟁의기관차8 – 해방] 나라잃은 군인의 민족해방을 위한 삶과 투쟁

투쟁방략을 모색하던 나날 김원봉은 1898.8.13(음력) 경남 밀양에서 태어났다. 김원봉을 부르는 다른 이름으로 대표적인것이 약산이다. 그외 최림·진국빈·이충·김세량·왕세덕·암일·왕석·운봉·김국빈·진충·김약삼등의 이름을 이명·변성명·통신암호명으로 사용했다. 김원봉의 아버지 김주익은 중농정도의 생활을 유지했다. 김원봉에게는 10명의 동생들이 있었으나 김원봉이 해방후 월북하자 보도연맹사건등으로 친동생 4형제가 처형됐고 김주익은 굶어죽었다. 김원봉이 태어날 무렵인 1897 조선은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며 체제개혁을 단행했다. 허나 이미 국력은 쇠할대로 쇠했고 열강의 먹잇감으로…

[항쟁의기관차8 – 해방] <암살> 처단

안다는것은 중요하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앎은 때로 결정적이다. 삶의 방향을 정하고 운명을 좌우한다. 앎은 과학이다. 이는 단순히 수단만을 의미하지않는다. 오히려 목표가 보다 중요하다. 어떤 목표를 세워 누구와 함께 노력했는가에 따라 인생자체가 달라진다. 역사속에서 애국자와 매국노, 혁명가와 변절자의 삶이 극단적으로 다른 이유가 다른데 있지않다. 삶과 운명의 기로에서 애국과 혁명의 길을 선택하는것은 전적으로 신념에 달려있다. 신념있는 사람은 의리를…

[항쟁의기관차8 – 해방] 자주·평화·통일의 길로

우리민족의 모든 비극과 분열은 전적으로 외세에 의해 발생했다. 그래서 우리민족의 최대과제는 전국적범위에서 민족의 자주를 실현하는것일수밖에 없다. 외세에 의해 발생한 분단의 문제를 외세의 간섭없이 우리민족끼리 자주적으로 풀어나 가는데 조국통일의 기본방도가 있다. 따라서 미남워킹그룹과 같은 내정간섭기구를 반대한다. 민중민주당은 강령에서 우리민족에게 또다른 희생을 강요할 흡수통일과 적화통일, 체제통일과 전쟁통일을 모두 반대한다고 밝히며 우리민족끼리 평화적으로 통일할수 있는 과학적방법으로서의 연방제방식의 통일방안이…

[항쟁의기관차8 – 해방] 남북관계를 파탄시킨 미남워킹그룹

1987 6월항쟁승리후 통일운동이 활성화됐다. 김일성주석은 1990.5.24 최고인민회의시정연설에서 조국통일5개방침을 제시했다. 군사적대결해소·다방면적교류와협력·유리한국제적환경마련·범민족통일전선의형성등을 언급했다. 1990.8 범민족대회가 개최되고 그해 11월 조국통일범민족연합이 결성됐다. 북은 주동적으로 북남당국간대화도 진척시켰다. 1991.12.11 시작된 5차고위급회담에서 남북기본합의서(남북사이의화해와불가침및교류·협력에관한합의서)가 채택·서명됐으며 5차회담합의에 따라 코리아반도를 평화지대·비핵지대로 만들기 위한 <비핵화공동선언>이 12.31 채택됐다. 1992.2.19 남북기본합의서는 6차회담에서 발효됐고 1992.9 8차회담에서는 정치·군사·협력교류분야의 3개부속합의서가 채택됐다. 1993.3 미남합동군사연습<팀스피리트>를 앞두고 최고사령관명령으로 준전시상태가 선포됐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이 1991.12.24 최고사령관으로 추대된…

[항쟁의기관차8 – 해방] 대북삐라살포에 연락사무소폭파로

2011.2.27 남북장성급군사회담북측단장은 서해지구군통신선을 통해 남국방부에 보낸 전화통지문에서 <심리전행위가계속된다면임진각을비롯한반공화국심리모략행위의발원지에대한우리군대의직접조준격파사격이자위권수호의원칙에서단행될것이라는것을정식통고한다>고 밝혔다. 심리전행위란 대북삐라살포행위를 가리킨다. 삐라살포는 군사학에서도 심리전의 일환인 전쟁행위로 규정하고있다. 북은 삐라의 내용이 <최고존엄>을 모독하고있다며 격분했다. 정부차원의 삐라살포는 2000 6.15공동선언합의이후 중단됐다. 주로 <탈북자>를 내세운 반북단체들의 대북삐라살포가 시작됐다. 박근혜<정부> 당시 확성기를 이용한 대북심리전방송이 재개되기도 했다. 이때는 경고로 끝났지만 2014.10.10 경기도 연천에서 <북한동포직접돕기운동>소속<탈북자>들이 비공개로 날려보낸 400만장의 대북삐라풍선에 북이 대공기관총을…

[항쟁의기관차8 – 해방] 친미반역권력에 대해 <전민보복전>선언

<이명박근혜>시기에 남북관계는 계속 악화됐다. 그들은 계속 핵문제를 시비하고 미남합동군사연습을 강화하고 서해NLL, 대북삐라살포, 6.15공동선언·10.4선언남북합의파탄등 긴장과 갈등을 격화시켰다. 2013.2 북의 3차핵시험직후 박근혜는 <대통령>취임사에서 <북한핵실험의최대피해자는바로북한이될것이라는것을분명히인식해야할것>이라며 망언했다. 2014.3.28 박근혜는 이른바 <드레스덴선언>을 발표한다. 이에 대해 4.12 북국방위대변인은 <흡수통일논리>·<황당무계한궤변>이고 북을 비방중상하고있다며 비난했다. 선교사로 북에 억류됐다거나 <탈북자>출신으로 북에 체포됐다고 주장하는 사례들 모두 2013·2014·2016 박근혜<정부>당시 벌어졌다. 2016 <기획탈북>책동은 하나의 사례일뿐 그배경에는 박근혜<정부>의 간교한…

[항쟁의기관차8 – 해방] 지구폭파장면이 나오는 <단숨에>공연

북은 2012 김일성주석탄생100돌을 맞이해 <사회주의강성대국의대문을열자>며 추동했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이 2011.12.17 서거한다. 그이후의 과정을 김정일국방위원장이 1994 김일성주석서거후 1995 <고난의행군>을 선언했을때와 비교하면 북의 변하지않는 신념·의지와 군사·경제적발전을 확인할수 있다. 2012.4 김정은위원장은 김일성김정일주의를 정립하고 4차당대표자회와 최고인민회의를 개최하며 당·국가의 조직체계를 정비했다. 당대표자회는 김정일국방위원장을 조선노동당의 <영원한총비서>로, 최고인민회의는 <영원한국방위원장>으로 추대했다. 2012.12.12 고도 499.7~584.18km의 극궤도위성 광명성3호2호-은하3호2호를 안착시켰다. 2013.1.1 발사성공축하자리에서 처음으로 상영된 지구폭파장면이 나오는 모란봉악단의 <단숨에>가…

[항쟁의기관차8 – 해방] 2010.11 대화가 불가능해지면 연평도포격전?

2008~09 4차북미·반미대결전이 진행되던 2008 하반기는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은신>행보와 김정은위원장의 최고사령관대리로 알려진 시기다. 2009.4.5 광명성2호-은하2호를 발사하고 5.25 2차핵시험을 진행했다. 2009.8 클린턴전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했다. 당시 방북은 두여기자송환을 명분으로 진행돼 북미간의 정치협상이 이뤄지진 않았다. 이과정에 6자회담을 통해 진행된 북비핵화다자협상은 실패했다. 2차핵시험전 2009.4 북외무성은 6자회담불참을 공식선언했다. 2018.6 김정은위원장의 친서를 가지고 김영철부위원장이 처음으로 미워싱턴D.C를 방문했을때 미언론들은 2009 정보국라인의 북미채널성과라고 보도했다. 클린턴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