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 항쟁의기관차〉 반드시 탄핵돼야할 파쇼·부패권력 

윤석열이 탄핵돼야하는 이유

윤석열의 <태블릿PC조작건>이 주목받고있다. 변희재미디어워치대표고문을 중심으로 주장되고있는 최순실·장시호태블릿PC조작의 핵심내용은 윤석열과 법무장관 한동훈이 속해있던 박영수특검4팀이 박근혜구속을 위해 태블릿증거를 위조했다는것이다. 변희재는 한동훈자택앞에서 <태블릿조작자백촉구및진상규명>집회를 하고있으며 7년째 <PC조작설>을 주장하고있다. PC조작설이 수면위로 떠오른것은 송영길전민주당대표가 이주장에 힘을 실어주면서다. 한동훈이 변희재의 주장을 <태블릿PC조작저질괴담>으로 매도하자 2023.6 송영길은 한인터뷰에서 <한동훈장관이정말태블릿PC증거조작에자유롭다면바로변희재를빨리구속시켜야한다>·<MBC기자와최강욱의원압수수색하듯변희재압수수색해서바로구속시켜야되는것아니냐>고 지적했다.

한편 <대장동사건>에서 윤석열의 역할이 주목되고있다. 화천대유대주주 김만배와 정영학(화천대유계열사천화동인5호)의 대화녹취록에 따르면 이들은 <윤석열영장들어오면윤석열은죽어>·<죽죠.원래죄가많은사람>이라고 언급하며 윤석열과의 연관성을 드러냈다. 2011 윤석열은 부산저축은행불법대출사건수사의 주임검사를 맡아 사건을 무마시키는 역할을 했다. 이건은 부산저축은행이 대장동개발과정에서 불법으로 대출을 해준 사건이다. 김만배의 누나는 윤석열부친 윤기중의 집을 매입한바 있다. 윤석열은 화천대유<50억클럽>의 박영수전특검과도 밀접한 관계다.

윤석열이 해병대수사외압의 장본인이라는것도 이미 드러났다. 2023.8 MBC는 윤석열이 해병대사망사건수사관련 수사외압의 장본인일수 있다고 보도했다. 윤석열은 7.31오전 해병대1사단일병사망사고에 대한 조사결과를 보고받은후 <격노>했고 사단장처벌이 부적절하다는 취지로 국방장관에게 직접 지시했으며 국방장관이 이첩보류를 지시했다는것이 확인됐다. 이는 수사독립침해와 법치주의파괴에 해당한다.

<대장동사건>이 윤석열이 대통령되기전 토건비리라면, 양평고속도로노선을 김건희일가소유토지로 이전한것은 대통령이 된 후 토건비리다. 김건희는 도이치모터스주가조작의 핵심임에도 윤석열을 등에 업고 처벌을 피했다. 김건희는 학력·경력위조, 논문표절, 고가보석비리, 대통령관저이전개입, 리투아니아명품쇼핑등으로 불법성·부도덕성을 드러내고있다. 그외에도 윤석열은 수많은 본·부·장(본인·부인·장모)비리를 덮고 수사를 제대로 하지않았으며 이미 수사한것도 대부분 무혐의판결이 나거나 나도록 만들었다. 

윤석열의 조작·비리·외압은 뚜렷한 탄핵사유이자 권력붕괴의 시작이다. 이는 역사적사실과 해외사례를 통해 확인된다.

독일국회의사당방화사건의 전말

1933.2.27저녁 독일 라이프찌히의 국회의사당에 불이 났다. 현장에는 프란츠폰파펜부총리에 앞서 헤르만괴링국회의장이 도착했다. 괴링은 방화를 보면서 사뭇 흥분해 넋을 잃은채 하늘을 향해 <새정부에대한공산당의범죄>라고 부르짖었다고 파펜은 회상했다. 괴링은 신임게슈타포수장 루돌프딜스에게 <이것은공산주의혁명의시작>·<자비는없을것>·<공산당당직자는발견하는즉시모조리사살해야>·<모든공산당의원을오늘밤안으로목매달아야>한다고 지시했다.

현재시점에서 방화사건의 진상을 완전히 밝히기는 어렵다. 전모를 아는 사람들은 대개 화재이후 몇달사이 히틀러에 살해됐다고 역사는 기록한다. 그렇기에 보통 국회의사당방화사건은 네덜란드출신 정신이상자 마리뉘스판데르뤼버의 우발적단독범행을 히틀러일당이 악용한것으로 알려졌지만 여러정황들은 히틀러세력이 일으킨 조작사건임을 보여준다.

괴링의 제국의회의장관저에는 의사당건물까지 중앙난방장치가 지하통로로 연결돼있다. 2.27밤 베를린돌격대(갈색셔츠단)주요성원 칼에른스트는 돌격대분대를 이끌고 이통로를 통해 의사당내부로 들어가 가솔린등을 뿌리고 의장관저로 퇴각했다. 그전에 히틀러측은 뤼버가 한술집에서 의사당에 방화할것이라 떠벌린 소리를 듣고 뤼버를 점찍어놨다. 가솔린등이 뿌려진뒤 뤼버는 의사당에 불을 질렀다.

라이프찌히재판에서 뤼버가 대규모건물을 빠르게 불태울정도의 도구를 갖고있지않았던 사실이 확인됐고 전문가들은 발화현장에 상당한 양의 화학물질과 가솔린이 뿌려져있었는데 혼자서 그렇게 많은 양을 반입할수 없고 짧은 시간에 많은 지점에 불을 붙일수 없다고 확인했다.

히틀러세력은 뤼버의 공범으로 에른스트토르글러공산당의원·게오르기디미트로프불가리아공산당원과 그외 불가리아공산당원2명을 지목했지만 뤼버와 공산당과의 연관성을 전혀 입증하지못했다. 오히려 디미트로프는 나치의 공작을 파헤치며 명성을 얻는다.

의사당방화가 괴벨스와 괴링에 의한 조작사건이라는것은 여러증언들로도 확인된다. 2차세계대전직후 뉘른베르크재판에서 독일내무부관료출신 한스기제비우스는 <의사당에불을지른다는것을맨먼저떠올린사람은괴벨스였다>고 증언했다. 게슈타포수장 루돌프딜스는 선서진술서에서 <괴링은방화가어떻게시작될지정확히알고>·<방화직후체포할사람들의명단을미리준비>하도록 명령했다고 언급했다. 독일육군참모총장출신 프란츠할더는 1942 히틀러생일축하자리에서 괴링이 <의사당에관해제대로알고있는사람은나하나뿐,내가불을질렀으니까>라고 한 말을 증언했다. 

재판결과 뤼버는 유죄판결을 받아 처형됐고 나머지 4명은 무죄로 판명됐으나 사건을 발판삼아 히틀러세력은 의도한대로 파쇼정국을 더욱 강화했다.

국회의사당방화사건의 배경

방화사건의 근본원인은 히틀러세력의 권력장악음모다. 1920년대중반부터 독일자본가들은 나치당(민족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에 자금을 댔다. 1930년대초부터는 라인·베스트팔렌중공업기업주들이 재원을 투입했고 그결과 막대한 자금이 선거전과 돌격대무장유지에 흘러들어갔다. 1932가을 독일중공업의 주요자본세력들은 정부부처의 지도적역할을 히틀러에게 맡겨야한다고 압박했다. 자본가세력은 공산당을 견제하기 위해 나치당을 키웠고 나치당은 권력강화를 위해 공산당을 가장 먼저 공격했다. 

1929 대공황이 발생하자 독일내 공식실업자수가 600만명을 넘었고 전국 모든 도시에는 식량배급을 받으려는 행렬이 줄을 이었다. 히틀러는 이시기 나치기관지에 <힘겨운현실덕에수백만의독일인들이우리민족을속이는맑스주의자들의유례없는협잡·거짓말·배신에눈을떴>다고 기록하며 독일민중의 고통을 정권장악의 발판으로 삼았다. 히틀러는 1930총선을 앞두고 독일강국화·전쟁배상금지불거부·베르사유조약파기·부패척결·유대인부호굴복·일자리창출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선거결과 나치당은 640만9600표를 획득해 107석을 차지했다. 2년전총선결과 81만표획득·12석차지와 비교하면 괄목할 성장이었다. 나치당이 다른 중간정당들로부터 지지자 수백만명을 빼앗은 결과다. 당시 최고경제신문<베를리너뵈르젠차이퉁>편집인 발터풍크는 뉘른베르크재판에서 <(1931무렵)산업계의친구들과나는나치당이그리멀지않은미래에권력을잡을것이라고확신했다>고 증언했다. 풍크는 1930 편집인을 그만두고 재계와 나치당을 연결하는 중개인노릇을 했다.

나치당과 그대척점에 있는 공산당도 이선거를 통해 1928 326만5000표에서 1930 459만2000표로 증가하며 의석수가 54석에서 77석으로 약진했다. 

공산당은 사회민주당과는 달리 광범한 반제전선과 반파시즘전선결성방침을 전면에 제기하며 투쟁을 전개하고있었다. 1929.10 공산당중앙위총회에서 에른스트텔만은 대자본가가 나치당의 재건을 돕고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나치당을 <가장위험하고더러운금융자본의도구>라고 규정했다. 공산당은 1930.8 <독일인민의민족·사회적해방을위한강령>을 채택했다. 강령을 통해 공산당은 나치당의 민중선동실체를 폭로하고 모든 민주주의세력이 반파시즘행동기반위에서 단결해 독점자본의 권력을 무너뜨려야한다고 강조했다. 또 나치당을 극단적반동·전쟁정당으로 규정하고 가장 반동적인 금융자본의 지지를 받고있다고 밝혔다. 1930가을 공산당주도로 결성된 반파시즘투쟁동맹의 성원수는 1931전반기 10만여명에 이르렀다. 1932.1 공산당지도로 1회전독일농민대회가 개최돼 농민위원회결정이 논의됐으며 1932봄 공산당은 대통령선거에 통일후보를 내세우자고 사회민주당에 제안했다. 한편 같은 시기 나치당을 밀어주기 위한 <케플러모임>이 조직됐는데 이중심에는 1923~30 독일제국은행의 수장이었던 할미라샤흐트가 있었다. 

1932대선에 파울폰힌덴부르크가 재선에 나섰다. 힌덴부르크는 우파의 지지를 받고있었을뿐아니라 히틀러를 견제했던 민주적정당들로부터도 <공화국의구원자>로 여겨지며 지지를 받고있었다. 선거는 힌덴부르크와 히틀러의 각축으로 이어졌고 사회민주당은 <텔만을지지하는사람은히틀러가승리하는것을돕는다>는 배신적논리를 내세우며 힌덴부르크를 지지했다. 독일공산당은 사회민주당의 힌덴부르크지지를 비판하며 텔만을 후보로 내세웠다. 선거결과 힌덴부르크49.6%·히틀러30.1%·텔만13.2%로 결국 결선투표를 진행했고 힌덴부르크가 승리했다. 

1932.5.26 공산당중앙위는 반파시즘행동에관한호소문을 통해 독일노동계급에게 <히틀러파시스트의피어린계획을저지하기위해모든노력을기울여야한다>고 호소하며 반파쇼세력의 통일전선결성을 제안했고 <파시즘이냐,프롤레타리아냐>의 <계급대계급>노선을 <파시스트독재냐,파시스트위협격퇴냐>의 반파시즘노선으로 수정했다. 공산당의 노력으로 사회민주당계열노동자의 지지가 강화돼 1932.6말 독일노동조합총연맹은 반나치즘통일전선지지의사를 표명했고 1932.9~12 1100건의 파업을 통해 1932.9 정부의 단체교섭권의 사실상 폐지조치를 막아냈다. 

이같은 정세하에서 1932.11 총선이 실시됐고 나치당196석·사회민주당121석·공산당100석을 차지했다. 1933.1 독일자본가세력은 힌덴부르크에게 히틀러를 총리로 임명할것을 강압했고 1.30 히틀러는 총리로 임명됐다.

히틀러의 최대위협은 나치당과 결코 타협하지않는 공산당이었다. 히틀러가 총리에 임명되자마자 나치당은 우선 <적색테러>를 도발했다. 괴벨스의 표현대로 <볼셰비키의혁명시도>를 파쇼권력강화의 지렛대로 삼으려는 계책이었다. 2월초 히틀러정부는 공산당의 모든 집회를 금지하고 공산당계신문발행을 불허했다. 괴링은 프로이센주경찰에 히틀러를 반대하는 모든 사람을 사살하라고 노골적으로 지시했고 2.22 조직된 5만보조경찰대를 이끌고 24일 베를린의 공산당본부를 급습했다. 공산당지도부는 이미 피신해 괴링은 텅빈 당사에서 지하창고에 쌓인 선전물만 발견했다. 이것을 <공산당이혁명을일으키려한증거>라고 떠들었지만 누구도 이말을 믿지않았다. 공산당이 나치당의 장단에 맞춰 <볼셰비키혁명>을 일으킬 가능성은 없었다. 히틀러는 1933.3.5 총선을 앞두고 권력장악을 위한 사건조작을 감행하게 된다.

사건조작으로 파쇼권력강화

1933.2.28 방화사건다음날 히틀러는 힌덴부르크에게 시민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의 7개조항을 유예하는 내용의 긴급명령에 서명할것을 압박했다. 긴급명령은 <국가를위태롭게하는공산당의폭력행위에대한방어조치>라 불렸다. 긴급명령에 따라 <필요한경우> 중앙정부는 연방주들의 전권을 넘겨받을수 있게 됐고 <심각한치안교란>을 포함한 다수범죄에 사형판결을 내릴수 있게 됐다. 3월선거를 앞두고 공산당당직자4000명과 사회민주당·자유주의진영지도부대다수가 체포됐다. 돌격대는 민중들을 닥치는대로 고문·구타·학살했다. 공산당간행물·정치집회를 심각하게 탄압했고 사회민주당계신문·자유주의잡지들까지 발행정지됐으며 민주적정당의 집회도 금지·해산됐다. 나치당의 동맹자인 국가인민당만 탄압받지않고 선거운동을 할수 있었고 나치당은 막대한 자금력을 동원해 대대적으로 선거운동을 전개했다. 

한편 괴링이 장악하고있던 프로이센주정부는 방화사건이후 공산당이 <의사당방화로유혈폭동과내전의신호를보낼속셈이었다>·<전면전,내전을시작하려던것으로확인됐다>고 흑색선전을 하며 관련한 <문서들>을 공표하겠다는 거짓약속을 남발했다.

나치당의 대대적인 폭력과 거짓선동, 대규모선거운동에도 1933.3 총선결과 나치당은 44%밖에 획득하지못했다. 나치당은 제국의회의 과반수이상은 차지했으나 파쇼권력수립을 위한 2/3다수에는 미치지못했다. 나치당은 다음수순으로 수권법통과에 나섰다. 수권법은 제국의회의 헌법상기능을 히틀러가 차지하는것이었다. 이는 긴급명령으로 수권법통과에 반대하는 야당의원들을 체포하면서 가능해졌다. 표결결과 찬성441·반대94(사회민주당)로 수권법이 통과되며 히틀러나치권력이 완성됐고 3.24 히틀러는 사실상 독일의 파쇼독재자가 됐다. 

수권법통과직후 히틀러나치는 가장 먼저 연방주들을 완전히 장악하기 시작했다. 괴링이 실권을 갖고있는 프로이센주를 제외한 모든 주의 정부·의회가 해산됐고 나치성원들이 신임주총감으로 임명되며 주권한이 사실상 파쇼권력에 종속됐다. 1934.1 주정부들은 <제국의행정기구>에 지나지않는다고 공표됐고 이내용을 담은 독일재건법이 1934.1.30 공포됐다. 

이미 공산당이 집중탄압을 받은 조건에서 1933.7 사회민주당이 해산될때까지 사민당의원들은 히틀러의 대외정책에 찬동하는등 비위를 맞추며 비굴하게 나왔다. 중간정당들도 7월 들어 해산을 발표했다. 히틀러집권에 부역한 국가인민당의 운명도 마찬가지였다. 1933.7.14 나치당은 <누구든다른정당의조직기구를유지하거나새로운정당을결성하려는자는,그행위가다른법규들에의해더중한벌을받지않는한,3년이하의징역또는6개월이상3년이하의금고에처한다>는 내용의 법령을 포고하며 파쇼통치를 다시한번 선언했다. 

히틀러나치는 전대미문의 조작사건인 국회의사당방화사건을 계기로 진보·개혁세력을 제거하고 파쇼권력을 강화한지 6년만인 1939 폴란드를 침공해 2차세계대전을 일으켰으며 세계반파쇼세력에 의해 패전하며 격멸됐다. 윤석열파쇼권력이 각종사건을 조작하는 이유와 그결말이 어떠할지 역사가 보여주고있다.

우크라이나신나치세력의 권력형비리

볼로지미르젤렌스키와 우크라이나신나치세력은 권력형비리의 정점에 있다. 2021기준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부패인식지수에서 우크라이나는 180개국중 122위를 기록했다. 

전쟁와중에도 우크라이나고위직의 부정부패는 만연하다. 2023.1 공공자금부패감시독립탐사저널리즘 나시그로시는 우크라이나국방부의 4000억규모 군납비리를 보도했다. 우크라이나국방부는 2022.12.23 액티브컴퍼니LLC와 131억6000억흐리우냐규모의 급식재료납품계약을 체결했는데 공개된 계약서에 따르면 모든 식재료가 일반소매가보다 최고2.8배나 비싼것으로 확인됐다. 전쟁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을 고려해도 지나치게 높은 가격이다. 액티브컴퍼니는 국방부산하 군자재납품국영기업간부가 창립했고 계약체결한달전 국방부전직관료가 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나시그로시측은 국방부가 전·현직국방부관계자와 납품가부풀리기를 공모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9월에는 우크라이나국방부가 튀르키예업체와 3300만달러상당의 방한복납품계약을 체결했는데 여름옷이나 다름없는 방한복을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으로 구매한 사실이 드러났다. 

우크라이나정부는 <부패와의전쟁>을 선언하며 1월 국방차관·검찰부총장등 10여명을 교체했고 8월에는 전국병무청장을 일제히 해임했으며 9.2 젤렌스키의 배후이자 대표적인 우크라이나올리가르히(신흥재벌) 이호르콜로모이스키가 돈세탁혐의로 체포되기까지 했다.

전쟁중 부패는 전시물자빼돌리기로도 드러난다. 미국의 탐사보도기자 시모어허쉬는 우크라이나정부부처들이 리베이트를 받을수 있는 무기·탄약수출입계약을 위한 페이퍼컴퍼니설립기회를 두고 경쟁하고있다고 폭로했다. 투입된 무기가 암시장에 흘러들어간다는것도 공공연한 사실이다. 멕시코의 악명높은 카르텔이 미국산무기인 재블린대전차미사일로 무장하고있다는 사실이 멕시코TV를 통해 공개되기도 했다. 

젤렌스키는 권력형비리범 레즈니코프국방장관을 해임한뒤 또다른 부패혐의자를 국방장관자리에 앉히면서 자기모순을 드러냈다. 신임국방장관 우메로프는 국유재산기금수장으로 있던 당시 국영전력생산회사 첸트레네르고와 거래하면서 권력을 남용해 전기를 시장가격이하로 판매하는것을 묵인하고 횡령관련조사를 방해한 혐의로 반부패국의 조사를 받고있다. 

젤렌스키는 <반부패전사>의 탈을 쓴 권력형비리범으로서 부패의 정점에 있다. 젤렌스키는 시트콤<국민의일꾼>에서 <반부패전사>이미지를 얻고 2019 대선에 성공했다. 젤렌스키는 취임후 처음으로 우크라이나올리가르히들의 변호사로서 2024까지 공직수행자격이 박탈된 부정부패범 안드리보흐단을 비서실장으로 임명하며 본색을 드러냈다.

2022 2월과 11월사이 젤렌스키와 그측근들의 재산을 비교한 BBC보도에 따르면 젤렌스키는 6억5000만달러에서 15억달러, 9월 해임된 레즈니코프전국방장관은 7억달러에서 14억달러, 쿨레바외교장관은 4억5000만달러에서 12억달러, 클리치고키예프시장은 1억5000만달러에서 8억달러, 토돌약대통령실고문은 4억달러에서 10억달러로 급증했다. 

우크라이나최대건설회사CEO출신 올레마이보로다는 재직당시 공무원에게 뇌물을 주기 위한 현금들이 <젤렌스키의수석고문인올레타타로프변호사에게맡겨졌다>·<변호사는경찰·법원·검찰과의접촉을통해완벽한중개자역할을했다>고 폭로했다. 우크라이나의 한매체는 올초 뇌물혐의를 인용하며 <타타로프는젤렌스키의내부부패에대한관용의상징이됐다>, 우크라이나반부패행동센터측은 <젤렌스키가타타로프를제거하지않는한그는국가의부패를척결하는데진지한사람으로여겨지지않을것>이라고 지적했다.

최고의 권력형비리범이 젤렌스키라는것은 우크라이나민중들도 다 아는 사실이다. 일코쿠체리프민주주의이니셔티브재단·키예프국제사회학연구소가 7·8월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성인78%는 키예프의 부패문제에 젤렌스키가 <직접적책임이있다>고 답했다. 반면 <책임이없다>는 응답은 18%에 불과했다. 페트로포로셴코전대통령지지자들은 젤렌스키세력이 역외계좌를 이용해 세금을 회피하고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9월 젤렌스키가 유엔총회참석차 미국을 방문하자 미공화당소속 케빈매카시하원의장은 <우리가이미쓴돈이책임있게쓰였는지어떻게알수있는지,승리를위한계획은무엇인지가미국일반대중이알고싶은것>이라고 지적했다. 언론에서는 우크라이나권력형비리로 인해 젤렌스키가 미국의 외면을 받고있다고 보도하고있다. <부패는반역>이라는 젤렌스키의 말대로라면 최고반역자는 우크라이나민중을 총알받이로 내몰면서 막대한 부를 축재한 젤렌스키 자신이다.

젤렌스키의 투기와 매국

젤렌스키의 권력형비리는 해외땅투기를 통해서도 드러나고있다. 이집트탐사보도저널리스트 모하메드알알라위에 따르면 젤렌스키는 이집트홍해연안의 휴양도시 엘구나의 고급빌라를 구매했다. 알알라위는 젤렌스키가족이 이집트에서 고급부동산을 취득했다며 빌라구입·가격·계약당사자가 나온 문서를 입수해 공개했다. 문서에 따르면 구매당사자는 젤렌스키의 장모고 계약일자는 2023.5.16이며 구매가격은 485만달러인것으로 확인된다.

이집트정치학자 알두라만알라바시는 젤렌스키일가의 부동산투기의 금액출처가 서방의 <우크라이나지원금>일것으로 추정하며 우크라이나지배엘리트들이 지난 1년간 이집트에서 부동산을 구입했다고 언급했다. 젤렌스키는 과거 이탈리아에 있는 400만유로상당의 별장을 러시아백만장자에게 임대한적이 있다. 전쟁기간 젤렌스키는 부동산구매를 위해 서방화폐를 사용했고 나토회원국으로부터 받은 금액의 상당부분을 개인사치품구매를 위해 지출했다. 

2021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가 폭로한 문서에 따르면 젤렌스키와 그측근들은 런던중심가에 호화부동산매입을 위해 역외회사를 설립했다. 2019 당선직전 젤렌스키가 일부지분을 측근에 양도한 사실도 확인됐다. 알아라비아방송은 젤렌스키가 그측근들과 함께 조직적으로 부정축재를 해왔다고 보도했다. 2012부터 공동으로 재산을 관리하며 이스라엘·미국마이애미등에도 호화저택을 구매했다고 폭로했다.

젤렌스키신나치세력은 매국의 방법으로 비리자금을 형성하고있다. 우크라이나패배는 정해졌으며 영토일부는 폴란드·헝가리·루마니아에 넘겨질수 있다고 미군사전문가 스콧리터는 분석했다. 더글라스맥그리거전펜타곤고문도 한유튜브채널에서 워싱턴이 우크라이나서부점령작전을 승인하면 폴란드는 즉시 르보프를 차지할것으로 예측했다. 7월 블라지미르푸틴러대통령은 세르게이나리쉬킨러대외정보국장과의 대화에서 폴란드가 <영토회복>을 명분으로 우크라이나서부를 병합하려하는데 키예프가 <빚진것>을 갚기 위해 나라를 팔아먹든 말든 상관하지않겠다고 언급했다. 이같은 발언들이 나오는 이유는 우크라이나패망시 젤렌스키가 서부지역을 폴란드에 자진해 팔아넘길 가능성이 높아서다. 우크라이나신나치세력을 앞세워 러시아소모전을 벌이는 미국도 우크라이나서부를 폴란드에 넘기며 전쟁을 종결할것으로 추정된다. 

2023초 우크라이나에 투입된 미국의 재원은 곧 우크라이나정부의 부채며, 이를 갚기 위해 젤렌스키가 우크라이나땅을 팔아넘기고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러시아군사과학선임연구원 블라지미르쁘로흐바찔로프는 2022.12.28 젤렌스키가 미국의 투자펀드사 블랙록에 나라를 매각했다고 주장했다. 젤렌스키정부가 블랙록CEO 래리핑크와의 회의를 통해 우크라이나전후재건과 투자유치를 논의한것 같지만 실제는 그렇지않다는것이 바찔로프의 견해다. 한미국매체도 <블랙록의우크라이나매입음모>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2022.11.10 우크라이나경제부와 블랙록금융시장자문부는 우크라이나정부의 경제재건을 위한 로드맵을 블랙록이 조언한다는 내용의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양해각서는 블랙록이 재건·투자유치·운영등에 관여한다는 내용이다. 우크라이나최고라다전의원 일리야키바도 이거래는 우크라이나정부가 영토를 직접 팔아넘긴것이라고 지적하며 인구는 <판매계약>에 포함되지않았다고 힐난했다. 한편 바찔로프는 우크라이나경작지의 절반이상이 이미 초국적농업기업 카길·듀퐁·저먼오스트리안에 넘어갔으며 미국의 몬산토가 1700만㏊의 우크라이나경작지를 소유하고있다고 밝히며 이기업들의 자금이 금융자본에 의해 통제되고있다고 밝혔다.

이미 금융자본에 팔린 우크라이나의 민중들이 전쟁총알받이로 계속 희생되는것은 불보듯 뻔하다. 안제이두다폴란드대통령의 <우크라이나인들의목숨값이미국인의것보다저렴하다>는 발언은 나라 잃은 민중의 처지가 얼마나 비참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우크라이나스캔들

2022.2 푸틴은 한연설을 통해 우크라이나올리가르히는 <친서방문명화선택>을 앞세워 러시아의 지정학적경쟁자들에게 비굴하게 봉사하며 우크라이나민중에게서 훔친 수십억달러를 서양의 은행계좌에 숨겨뒀다고 지적했다. 반러신나치세력의 2014 유로마이단쿠데타에 미대사관이 하루100만달러씩 투입했고 쿠데타핵심들에게 거금을 투입했다는 사실도 강조했다. <친서방문명화선택>의 결과 우크라이나내 빈곤·절망·기술역량상실등이 만연해 우크라이나경제는 붕괴됐고 민중의 재원은 강탈됐으며 우크라이나는 외부통제하에 놓였는데 특히 외부통제는 우크라이나내 해외컨설턴트·비영리단체등의 기타기관에 의해 우크라이나현지에서 이뤄지고있다고 푸틴은 언급했다. 우크라이나가 사실상 식민지상태라는것은 독립적사법부가 없고 서방의 요구에 따라 <국제기구대표들>에게 고등법관회의·판사자격위원회와 같은 최고사법기구 인사선발권이 쥐어졌고, 미대사관이 국가부패방지청·국가반부패국·반부패특별검찰청·반부패고등법원을 직접 통제하는것으로 드러난다고 폭로했다. 그러면서 신나치세력에 의해 <국가사유화>가 <민족성을상실하고국가주권을박탈당하는방향>으로 이끌어졌다고 언급했다.

우크라이나의 미국식민지화를 기회삼아 이권을 취한 대표적인물이 조바이든미<대통령>일가다.

2022.3 러시아는 미국이 우크라이나에서 생물무기개발을 벌이고있다며 미당국자와 관여기관명단을 구체적으로 공개했다. 미국방부산하국방위협감소국·블랙앤드비치우크라이나지사·메타비오타등의 기관과 주요인물들이 드러났는데 그중 메타비오타의 우크라이나대표는 조바이든의 차남 헌터바이든의 측근인 마리구티에레스다.  

러화생방방위군사령관 이고르키릴로프는 미국의 군산복합체가 우크라이나에서 박쥐코로나바이러스실험을 하고 특정민족을 표적으로 하는 생물무기를 개발하고있다고 주장했고 러국방부는 헌터가 미국제개발처·조지소로스재단·질병통제예방센터등과 협력해 우크라이나에 설립을 지원한 생물학실험실이 14개지역·30개며 2018~20 지원한 금액이 무려 3200만달러에 달한다고 언급했다. 이같은 사실은 미매체 뉴욕포스트의 보도로도 확인된다. 헌터는 메타비오타병원균연구스타트업연구소에 50만달러를 직접투자했고 헌터가 설립한 로즈먼즈세네카투자전문회사는 골드만삭스은행을 통해 수백만달러에 달하는 투자를 이끌면서 우크라이나생물학실험실자금조달에 직접 관여했다. 

헌터가 우크라이나에 이권개입을 해온것은 이미 드러난 사실이다. 헌터는 2014 우크라이나에너지회사 부리스마홀딩스의 이사로 재직했다. 부리스마는 2014 유로마이단쿠데타의 여파를 완충하기 위해 당시 미국내 우크라이나담당인 부통령 바이든의 권력을 이용할 목적으로 헌터에게 이사직을 수여했고 공식적으로 월8만달러이상을 지급했다. 또 FBI(연방수사국)정보에 따르면 부리스마측은 바이든의 영향력을 이용하기 위해 바이든과 헌터에 합산 약1000만달러의 뇌물을 지불했다.

바이든일가가 헌터의 부당이득과 바이든의 연관성을 부정하던중 2020 헌터의 노트북에 저장돼있던 결정적증거들이 세상에 공개됐다. 2020.10 뉴욕포스트는 헌터가 부리스마이사로 재직당시 바이든·부리스마대표만남을 주선한 이메일이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부리스마고위임원은 이메일을 통해 <당신(헌터)의영향력을어떻게사용할수있을지에대해조언해달라>고 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스캔들의 주범이 헌터와 바이든이라는 사실은 이미 드러났다. 바이든은 2015 우크라이나대통령 포로셴코에게 우크라이나검찰총장 빅토르쇼킨의 해임을 압박했다. 쇼킨은 헌터를 포함한 부리스마이사전원에 대한 심문·조사를 계획하고있었다. 바이든은 12월 우크라이나에 방문해 쇼킨을 해임하지않을경우 미국의 10억달러차관보증을 취소할것이라고 협박했다.

바이든은 우크라이나스캔들을 은폐하기 위해 공공연히 권력을 남용했다. 2022.2 척그래슬리·론존슨공화당상원의원은 미국무장관 토니블링컨에게 <국무부가우리사무실의기록을보류하고헌터바이든과관련된이해상충에대한조사과정에서정보를부적절하게분류함으로써공개하지못하도록부적절하게제지했다는것이최근기록에서드러났다>고 언급했다.

2022.11 미공화당이 하원다수당으로 확정된 다음날, 공화당은 기자회견을 통해 <헌터가외국정부및기업과벌인<수상한비지니스거래>에바이든이관여했다는진술과증거를얻었다>·<바이든일가가국민을속이고탈세와돈세탁등위법을저지른혐의를입증하겠다>·<대통령이가족을부유하게하는데참여하는것은한마디로최고권력의남용>·<(조사는)조바이든에관한것>이라고 언급했다.

한편 마이크모렐전CIA(중앙정보국)국장대행은 2023.4 연방하원법사위·정보위비공개증언에서 <현국무장관이자,당시바이든선대본부상임고문이었던토니블링컨주도하에헌터의노트북사건을러시아소행으로몰아가는데가담했다>고 실토했다. 2020.10 미대선몇주전 헌터노트북이 공개됐으나 이에 대해 전현직CIA요원51명은 <노트북사건은미대선을혼란으로몰아가기위한러시아의허위정보유포작전>이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발표가 바이든선대본부의 사주에 따른것이라는 주장이다. 

한편 2019 도널드트럼프대통령은 젤렌스키와의 전화통화에서 부리스마건, 쇼킨해임건과 관련해 바이든부자를 수사할것을 요구하며 그대가로 우크라이나군사지원을 제시했다. 하원다수당이었던 민주당은 트럼프를 외세결탁혐의로 탄핵소추했다. 12월 소추안은 통과됐지만 2020.2 공화당다수인 상원에서 탄핵은 부결됐다.

<헌터게이트>와 바이든탄핵위기

<헌터게이트>의 본질은 바이든일가의 권력남용과 부정부패다. 헌터는 우크라이나에서만이 아니라 중국·러시아등과의 해외사업에서도 부통령 바이든의 지위를 악용했고 바이든도 직간접적으로 부당이익을 얻었다.

<헌터게이트>의 진상을 밝히기 위한 노력은 2023 더욱 본격화됐다. 2월 <헌터바이든의노트북에대한여론확산을억압했던트위터>를 주제로 청문회가 열렸다. 트위터를 인수하며 CEO가 된 일론머스크는 트위터의 <헌터게이트>관련 게시물공유금지를 지시한 책임자 제임스베이커를 해고했다. 미하원감독위원회는 이청문회에 베이커등 트위터전직간부3명을 증언대에 세웠다. 정보확산을 막기 위해 <헌터게이트>를 <가짜뉴스>로 매도한것 자체가 가짜뉴스였다는것이 드러난것이다. 5월 미감독위원회는 <1000만달러이상의외국돈이바이든일가의재정적이익을위해만들어진20여개의페이퍼컴퍼니와유한회사로흘러들어갔고,이후그돈은대통령가족9명의계좌에들어가기전에비밀리에여러계좌를거쳤다>고 밝혔다. 6월 비영리단체 마르코폴로설립자는 웹사이트를 개설해 헌터노트북속 사진을 공개하며 헌터의 불법성과 부도덕성을 폭로했다.

<헌터게이트>를 통해 주목되는 다른 사안은 그림판매사건이다. 헌터는 바이든집권첫해 화가로서 뉴욕·LA등에서 전시를 열었다. 그림은 각 7만5000달러에서 50만달러까지 팔렸는데, 검증 안된 신인작가작품이라는점에서 꽤 고가의 판매가격이었다. 현직대통령아들이 부친의 영향력에 기대 그림판매를 한것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이그림들은 로비용으로 사용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2023.6 헌터는 탈세·불법무기소지혐의로 기소됐다. 2018.10 헌터는 약물사용자였음에도 콜트코브라38권총을 소지한 혐의를 받고있다. 이는 최대10년의 징역형을 받을수 있는 혐의다.

헌터의 범죄사실이 계속 드러나고있는데도 바이든은 관련질문에 대해 <아들이매우자랑스럽다>며 황당하게 답변했고 며칠후 나렌드라모디인도총리와의 백악관국빈만찬에 헌터를 대동하기도 했다. 

헌터의 탈세관련 바이든의 권력남용과 은폐의혹은 2023.7 미국세청내부고발자 개리샤플리·조셉지글러의 의회증언으로 다시한번 드러났다.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탈세관련 수사를 바이든측근검사들이 조직적으로 방해했다. 예컨대 델라웨어책임검사 레슬리울프는 이들에게 바이든과 그가족의 사업을 연결할만한 증거를 쫓지말고, 헌터의 <아빠>·<거물>에 대해서도 질문하지말것을 지시했다. 대선이후 국세청요원들은 헌터관련중요문서들을 워싱턴DC에서 버지니아의 한창고로 이동시켜 은폐했다. 내부고발자의 주장에 따르면 여러제약에도 불구하고 확보한 약간의 증거만으로도 헌터는 2014~19 830만달러의 해외소득에 대해 220만달러의 세금을 탈세했다. 미법무부세무부서등은 헌터에 대한 중죄기소가 필요하다는데 동의했다. 

8월 바이든과 그일가·동료들이 <과거러시아·카자흐스탄·우크라이나등의재벌들로부터거액의금전을수수받은적>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미하원감독위입수기록에 따르면 해당금액은 2000만달러이상이다. 헌터의 동업자였던 데본아처는 <바이든이부통령시절해외사업관계자들과20여건의전화통화를나누고,그에게거액을지불한해외재벌들과만찬을즐겼다>고 증언했다. 수수한 해외자금은 아처의 계좌로 입금돼 자금출처가 은폐됐다. 수수내역중에는 러시아억만장자 엘레나바투리나가 페이퍼컴퍼니 로즈먼드세네카토톤에 350만달러를, 카자흐스탄국영석유회사CEO가 로즈먼드세네카보하이계좌로 14만2300달러를 송금한 내역이 있다. 바이든은 같은해 6월 부리스마와 카자흐스탄정부간 거래를 주선했다. 미연방하원의원 제임스코머는 <헌터는바이든을해외재벌들로부터수백만달러를벌어들이기위해아버지를<브랜드>로팔았으며이로인해얻은수익을헌터바이든이가족들에게전달하고있는것으로보인다>고 지적했다.

중대범죄를 저질렀음에도 헌터는 법무부를 상대로 6월 탈세·불법총기소지혐의에 대한 유죄를 인정하는 대신 징역형을 면제받는 <플리바게닝>합의를 시도하며 또 논란을 일으켰다.

<헌터게이트>는 수사기관까지 연루된 대규모권력형비리사건이다. 2019.12 FBI는 헌터의 이메일이 있는 하드디스크를 입수했으나 당시 FBI국장 크리스토퍼레이는 <이사건이2020미대통령선거에개입하려는러시아의작전인지를조사중>·<헌터바이든이러시아에의해억울한누명을썼을수도있다>며 진상을 호도했다. 폭스뉴스는 <FBI의돈세탁수사에연루됐을수있다>·<대선에서바이든이여론조사에서앞서자국장이수사에소극적>이라고 비판했다. 2022하반기 미공화당이 하원을 장악한후 헌터노트북의 최초폭로자는 인터뷰에서 노트북에 대한 폭로로 인해 민주당지지세력으로부터 살해협박을 받은것은 물론이고 FBI로부터 은폐압박을 받으며 2년간 온갖 방면에서 보복을 당했다고 언급했다. 이어 <공화당은미디어와결탁해진실을차단한FBI에책임을물어야>·<바이든대통령이부통령이었을때바이든일가가무엇을했는지진상을규명해야>한다고 강조하며 공화당에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범죄의 조직적은폐가 대선에 큰 영향을 미친것은 물론이다. 헌터노트북최초보도이후 2020.11 미대선1주일전 사전투표자들은 선거결정을 번복하기 위해 움직였다. 한정책연구소의 발표에 따르면 성인응답자79%가 헌터노트북진위여부에 따라 대선결과가 바뀌었을것이라고 답했다.

2023.8.12 미공화당하원의원 그레그스투비는 바이든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탄핵이유로 <바이든대통령동생제임스바이든과대통령아들헌터바이든이국내외기업들에대통령의공식적조치를대가로금품과사업기회를받은의혹>·<헌터바이든납세관련수사방해의혹>·<헌터바이든의불법마약거래와관련한의혹>등을 제시했다. 한편 국세청내부고발로 인해 관련수사는 특검으로 확대됐다. 메릭갈런드법무장관은 데이비드웨이스델라웨어연방검사장을 특검으로 지명했다. 9.12 매카시는 하원감독위·법사위·세입위에 바이든일가에 대한 탄핵조사개시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조사의 핵심은 헌터와 바이든의 연관성여부다.

실제 탄핵가능성은 낮은것으로 관측된다. 탄핵이 확정되려면 민주당이 다수당인 상원에서 탄핵심판을 거쳐야하기에 그렇다. 탄핵이 되지않는다고 해서 바이든일가의 부당이득·권력남용이 사라지는것은 아니다.

<워터게이트>의 전모

대선기간이던 1972.6 도청장치와 사진기를 가진 5명이 워싱턴DC워터게이트호텔내 민주당전국위원회사무실에 침입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혔다. 그중 제임스매코드주니어는 공화당후보이자 현직대통령 리처드닉슨의 선거운동원으로 재선위원회 보안담당자였다. 다른 1명은 대통령특별자문위원 찰스콜슨의 보좌관인 하워드헌트의 주소록을 가지고있었는데, 헌트의 주소는 백악관으로 돼있었다. 매코드와 헌트 모두 미CIA소속이었으며 헌트는 1961 쿠바침공을 진두지휘한 인물이었고 나머지3명은 쿠바침공에 직접 참여한 자들이다. 매코드는 연방법무장관이자 재선위원회위원장 존미첼의 수하였다. 미첼은 침입사건의 관련성을 모두 부인했고 사건발생5일후 닉슨은 공식적으로 <백악관은어떤식으로든연루된바없다>고 언급했다.

9월 대배심이 헌트와 대통령재선위원회성원 고든리디를 기소하자 하위공직자들이 기소를 피하기 위해 진실을 폭로하기 시작했다. 닉슨의 최고위백악관참모 로버트홀드먼·존에일리크먼에 이어 닉슨까지 사건에 직접 연루됐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증언에 따르면 <워터게이트>사건이 발생하자 닉슨이 FBI국장에 임명한 패트릭그레이는 워터게이트침입사건관련 FBI수사기록을 닉슨법률보좌관 존딘에게 넘겨줬고 미첼후임인 법무장관 리처드클라인딘스트는 그레이에게 미상원법사위원회와 <워터게이트>사건을 논의하지말라고 명령했다. 또 5명이 체포된후 닉슨은 이들이 수감될경우 대통령권한을 이용해 감형해주기로 비밀리에 약속했고 입막음을 위해 100만달러를 주겠다고 제안했으며 실제 45만달러가 전달됐다. 또 CIA는 FBI에 워터게이트침입사건이상으로 수사를 확대시키지말라고 주문했는데 그배경에 닉슨이 있다는 사실이 CIA부국장의 입에서 나왔다. 

불법정보수집및권력남용은 워터게이트도청만이 아니었다. 국가안보보좌관 헨리키신저의 명령하에 언론·정부관료들에 대한 불법도청으로 얻은 FBI자료가 닉슨보좌관 에일리크먼의 백악관금고안에서 발견됐고 상원위원회에 출석한 한증인은 닉슨이 백악관에서 이뤄진 모든 대화·통화내용이 담긴 테이프를 가지고있다고 폭로했다. 닉슨은 처음에 테이프제출을 거부했으나 결국 나중에 제출했는데 일부가 훼손된 상태였다.

민주당내불법도청문제로 시작된 <워터게이트>사건은 비자금수수·공안탄압·해외정부전복등 전반에 걸친 문제가 폭로되는 방향으로 확대됐다. 미첼은 민주당을 상대로 편지위조·언론공작등을 벌였고 선거운동서류를 훔치기 위해 최대70만달러에 이르는 비자금을 관리했다. 미첼과 닉슨재선위자금관리국장 모리스스탠스는 한금융가에게 25만달러를 받고 증권거래위원회의 조사에 도움을 줬다는 혐의로 기소됐으며 닉슨은 <보안상>이유로 사저에 정부자금1000만달러이상을 편취했고 문서위조를 통해 57만6000달러의 세금공제를 받았다. 일련의 부정부패가 폭로되는 와중에 부통령 스피로애그뉴가 뇌물수수혐의로 기소돼 1973.10 부통령직을 사임했다. 

한편 닉슨행정부는 1971.9 <국방부문서>사본을 공개하며 베트남전의 진상을 폭로한 대니얼엘스버그의 병력기록을 찾기 위해 엘스버그가 다니던 정신과의사사무실을 불법침입했으며 1969~70 캄보디아에 비밀리에 대규모폭격을 가하면서 미의회에도 은폐한 사실이 폭로됐다.

1973가을 닉슨탄핵을 위해 제출된 하원결의안이 8개에 이르렀다. 1974 탄핵안이 작성되자 8.8 닉슨은 사임했다. 1972.11 미대선에서 상대후보와 23.2%차로 압승했던 닉슨은 순식간에 몰락했다.

닉슨몰락의 배경

1960년대후반~1970년대전반기는 베트남전쟁에 대한 반전여론과 <68혁명>의 영향으로 여성·흑인·아메리카원주민등 피억압민중들의 요구가 분출되며 <신좌파>가 등장하던 시기다. 한편 1968 미전역에서 일어난 베트남전반대시위는 당시 집권당이었던 민주당에 불리했다. 닉슨은 1968.11 종전을 내세우며 당선됐고 베트남에서 미군병력을 순차적으로 철수해 1972 15만명가량의 미병력만 남겨뒀지만 폭격을 계속하며 <베트남화> 즉, 친미사이공정부가 미국의 자금·공군력을 이용한 대리전정책을 실시하며 전쟁을 이어갔다. 뿐만아니라 1970봄 캄보디아를 침공했고 1971 베트남의 라오스침공을 지원했으며, 라오스·캄보디아·베트남에 80만t의 폭탄을 투하했다. 

닉슨정부의 야만성은 미국내적으로도 심각했다. 대표적으로 블랙팬서당지도부에 대한 무자비한 총살을 들수 있다. 1966.10 창당한 블랙팬서당은 5000여당원을 보유하고있었고 흑인안전을 위한 무장력을 지니고있었다. 1967 공공장소에서 장전된 무기소지를 금지한다는 내용의 멀포드법을 제정하며 블랙팬서당을 집중적으로 탄압하기 시작했고 1969당시 총749명이 투옥됐다. 닉슨정부의 악명높은 FBI국장 존에드거후버는 1969.12 14명의 경찰을 침투시켜 프레드햄턴·마크클라크를 학살했다. 햄턴은 블랙팬서당의 공동창립자로서 흑인민권운동지도자로 각광받던 인물이다. 이들을 살해하기 위해 FBI가 비밀리에 모집한 흑인프락치만 3000명이 넘는것으로 알려졌다. 블랙팬서당측 변호사는 2년간 28명의 당원이 경찰에 살해됐다고 밝혔다. 

미정부에 대한 불신은 1970 들어 팽배했다. 1970 <정부신뢰도>는 모든 계층에서 낮게 집계됐으며 특히 미숙련생산직노동자의 66%는 정부를 불신했다. 무기생산중단에 대한 여론이 높아졌고 정부가 자본가에 의해서 좌우된다는 여론이 10여년만에 2배이상 증가했다. 또 민주당·공화당양당을 불신하며 <무소속>임을 자임하는 정도가 1940 20%에서 1974 34%로 증가했다. 이같은 반정부민심은 <워터게이트>사건을 통해 폭발해 닉슨의 사임으로 이어진다.

<썩은사과는버리되상자는내팽개쳐서는안된다>

<워터게이트>사건으로 권력형비리범 닉슨은 몰락했지만, 중요한 진실들은 은폐됐고 부정한 정치권력은 존속됐다. 제럴드포드는 닉슨후임으로 대통령이 되면서 <우리의국가적악몽은이제끝났다>고 선언했다. 뉴욕타임스는 <체제가원활하게돌아가고있다>고 보도했다. 반면 1974.9 프랑스언론 르몽드디플로마티크의 주필 크로드줄리앙은 닉슨을 제거함으로써 <워터게이트>사건을 낳은 모든 구조와 그릇된 가치는 그대로 남게 됐다며 국무장관 키신저는 여전히 그자리에 있게 되며 닉슨정부의 대외정책은 지속된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워싱턴은칠레의피노체트장군,브라질의가이셀장군,파라과이의스트로에스네르장군등을계속지지할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후 닉슨이 사임할경우 형사처벌을 지지하지않을것을 미하원 민주당·공화당상층지도부가 비밀리에 보장한 사실이 폭로됐다. 상원법사위의 한공화당의원은 탄핵을 둘러싼 보도들이 <대외정책에어떤영향을미칠지를생각하면서우리모두는몸서리쳤다>고 말하며 야합한 이유를 확인시켜줬다. 한편 월스트리트측은 닉슨이 사임해도 <우리는다른선수들과똑같은경기를치르게될것>이라며 금융자본이 조종하는 미정치체제는 변하지않는다는것을 드러냈다.

미정가에서는 <썩은사과는버리되상자는내팽개쳐서는안된다>는 비유를 들며 닉슨만 제거하고 체제는 유지할것을 노골적으로 시사했다. 실제 닉슨의 세력은 연명했고 대외정책은 유지됐으며 정부·자본가의 결탁도 계속됐다. 포드는 대통령취임과 동시에 닉슨을 사면했고 닉슨측근보좌관이자 닉슨의 도청테이프처리에 일조했던 알렉산더헤이그는 포드에 의해 나토연합군사령관으로 임명됐다. 그외 <워터게이트>사건관련자들은 감형되거나 집행유예됐다. 

자본가세력이 미정가를 조종하는것은 변하지않았다. ITT는 공화당·민주당양쪽에 불법정치자금을 제공했고 1970 ITT이사·CIA국장출신 존매콘은 키신저에게 칠레아옌데정부전복을 위해 10억달러를 내놓겠다고 말했다. 1971 ITT는 15억달러자산규모의 하트버트화재보험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독점금지법을 위반했는데도 기소되지않았는데 이는 ITT측이 공화당에 40만달러<기부>비밀합의를 했기에 가능했다. 그외 석유업계·낙농업계등은 로비를 통해 소비재의 높은 가격을 유지했다. <워터게이트>사건에 대한 철저한 조사과정에서도 기업들은 사실상 제외됐다. 닉슨선거운동진영에 불법자금을 제공한 AA·굿이어는 각각5000달러, 3M은 3000달러 벌금형을 선고받았고 굿이어·3M간부1명씩에게 각각 1000달러·500달러벌금을 부과했을뿐이다.

<워터게이트>사건의 진상이 폭로됨으로써 닉슨은 정치생명이 끝났고 미역사는 일정하게 발전했다. 하지만 일련의 사실은 대통령의 탄핵을 넘어 정권을 타도하고 부정의한 세력과 체제를 청산해야만 근본문제가 해결된다는것을 보여준다. 인류역사는 문제해결의 방법으로 항쟁을 제시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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