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래전, 이영화를 처음봤을때, 화면을 가득 채운 붉은수수밭의 강한 인상을 지금도 잊을수 없다. 이야기도 감동적이었다. 여주인공의 죽음에 가슴아팠던 그때의 기억도, 붉은태양을 등에 지고 서있는 남편과 아들의 모습도 생생하다. 장예모가 어떤 감독인지를 단적으로 드러내보였다. 그뒤 중국을 대표하는 감독으로 국제영화제를 휩쓸었다. 공리도 중국을 대표하는 배우로 많은 상을 받았다. 중국을 대표하는 영화를 꼽으라면 서슴없이 <붉은수수밭>을 떠올린다.
당연히 작품을 다양하게 해석할수 있지만, 보기에 철저한 공동주의영화, 민중의 영화다. 드넓은 대지위에 민중이 키운 붉은수수밭이 어떤 바람에도 꺾이지않고 꿋꿋이 서서 눈부신 태양아래 붉은빛을 뿌린다. 민중들은 붉은수수로 술을 빚어 생계를 이어가고 그술을 마시며 결의를 다지고 그술을 무기로 외적과 맞서 싸운다. 봉건의 낡은 관습은 여주인공, 양조장의 무위도식자는 남주인공, 민중의 힘에 의해 정리된다. 양조장은 모두가 주인인 공동체다.
외적에 맞서 공산당과 비적, 마을사람은 모두 하나다. 비적도 공산당처럼 목숨을 걸고 용감히 싸운다. 비적두목의 죽음과 차원이 다른, 양조장노동자들의 신망높은 대표자였던 공산당원의 죽음은 마을사람들을 격분시킨다. 그좌장노동자는 항일을 위해 공산당이 소환해 양조장을 떠난것이고 그렇게 투쟁하다가 붙잡힌것이다. 양조장공동체는 모두 분기해 일제침략자들을 붉은수수밭에서 고량주폭탄을 터뜨리며 끝장내버린다. 마을사람들을 혁명적으로 각성시킨것은 존경받는 공산당원의 장렬한 죽음이다.
증류주인 고량주는 투명한 백주지만 제조중에 붉은잎을 띄우면 붉은색을 띠게 된다. 붉은색은 중국민중이 가장 좋아하고 악귀를 쫒는다고 믿는 신성한 색이며 중국만이 아니라 온세계에 통용되는 공동주의의 상징이다. 이세상의 온갖 낡은것들은 차례차례 억센 민중의 힘에 의해 사라져버린다. 오직 영원한것은 태양아래 대지위에 굳세게 서있는 저 붉은수수들, 민중들이다. 민중을 위한, 후대를 위한 죽음은 끝이 아닌 시작이고 순간이 아닌 영원이다. 민중을 위해 한일들은 민중의 마음속에 길이 빛난다. 죽음은 빛이다. 후대들의 앞길을 밝히는 빛, 후대들의 행복을 축원하는 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