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22시30분경 <한국>역사상 45년만에 비상계엄이 선포됐다. 윤석열은 <혼란을초래하는반국가세력을척결하겠다>며 국정운영에서 민주당과의 갈등이 자유민주주의체제를 붕괴시키고있다고 주장했다. 군인들이 탄 장갑차가 서울시내에 나타났으며 버스·헬기를 동원한 계엄군이 국회에 진입해 의원들의 출입을 막았다. 이재명·우원식·한동훈체포조는 당대표실문을 부수고 들어갔다. 12.4 01시 여·야국회의원들은 국회본청으로 들어가 비상계엄해제요구결의안을 재적190명 전원찬성으로 가결했다. 04시26분경 윤석열이 비상계엄해제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 18명국무위원전원·대통령실수석비사관이상의 참모진은 사의를 표명했다.12.3계엄실패후 윤석열은 대국민담화에서 <법적,정치적책임문제를회피하지않겠다>·<자신의임기를포함한앞으로의정국안정방안은우리당에일임하겠다>고 밝혔다.
계엄선포이틀전 박근혜<정부>시절정보사령관을 지낸 노상원은 군간부들에게 <곧계엄이있을테니준비하라>고 언질을 줬다. 노상원은 <돼지부대>로 불리는 HID·암살조등 북파공작부대를 사실상 관리한것으로 알려졌다. 비상계엄선포후 노상원은 중앙선관위서버에 침입해 <부정선거>관련증거를 확보, <선관위30명을무력으로제압하고B1벙커로데려오라>고 지시했다. 계엄당시국방장관 김용현은 계엄포고령을 직접 검토했으며 당일오전 <국회가국방예산으로장난질인데탱크로확밀어버려라>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홍장원정보원(<국가정보원>)1차장은 윤석열이 <여야당대표등정치인을이번기회에잡아들여싹정리할것>을 명령하고 <국정원에도대공수사권을줄테니우선국군방첩사령부를도와서지원하라>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곽종근전특수전사령관은 이상현1공수여단장에게 <문을부수고들어가거나전기라도끊어표결을막으라>고 하달했다.
12.7 국회본회의에서 3차<김건희특검법>과 윤석열대통령탄핵소추안에 대한 표결이 진행됐다. 국민당은 김건희특검법을 표결로 부결시키고 탄핵소추안에서는 집단퇴장해 정족수미달로 표결을 무산시켰다. 법안부결뒤 여의도국민당당사앞·지역구국민당의원사무실앞등에서 규탄집회가 벌어졌다. 12.6 검찰은 비상계엄사태특수본을 구성하고 12.7 내란혐의로 김용현전국방장관을 긴급체포, 12.8 내란혐의피의자로 윤석열을 입건했다. 한동훈국민당대표는 한덕수국무총리를 <책임총리>로 국정운영을 <일임>·<질서있는대통령조기퇴진>을 내세웠지만 야권을 포함한 시민사회는 <2차내란>이라며 <12.3내란주범·협력자가사태해결운운하는꼴>·<시간끌기용>등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민심의 압박에 12.14 대통령탄핵소추안이 가결되고 국민당지도부와 한동훈대표가 사퇴했다. 그후 권성동당대표권한대행체제가 세워졌다.
한편 계엄당일 창원지검은 정치자금법위반및증거은닉교사혐의로 명태균을 구속기소했다. 계엄전까지 창업산단국가기밀누설·대선여론조작·김건희국정개입외에도 국민당의원다수가 여론조작·당선로비등으로 유착된 <명태균게이트>로 윤석열은 집권후 최대위기를 맞고있었다. 11.25 뉴스타파는 오세훈스폰서 김한정이 강혜경에게 <국민의힘까지죽일수없지않냐>·<명태균에게10억이나20억을건네고사건을덮자>고 회유한 녹취를 공개했다. 명태균은 <윤건희>자택아크로비스타에 수시로 드나들며 정치브로커역할을 했으며 강혜경은 명태균이 <이준석을차기대통령으로만들겠다>는 말도 했다고 증언했다. 윤석열은 계엄으로 대중적인 즉각탄핵요구에 직면했으며 다른 한편 12.12 명태균이 검찰에 여론조작·국정농단의 증거가 담긴 <황금폰>을 제출하며 <명태균게이트>는 여전히 여러유력정치인들의 <정치생명>을 위협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