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3.3 독일사령부는 <성채>작전을 준비한다. <성채>작전의 요지는 혹처럼 돌출된 쿠르스크에서 소련군을 포위·섬멸한뒤 북동쪽으로 전차공격을 계속하며 모스크바를 공격하는것이다. 히틀러는 소련함락의 결정적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전차전력강화를 지시하며 4개월이나 작전수행을 미룬다. 1943.4 소련사령부, 스탈린최고사령관은 스탈린그라드에서 독일군이 패배했으나 하리코프에서는 건재하며 독일군이 전략적주도권을 쥐려할것이라고 경고하며 언제, 어디서, 어떤힘으로 공격할것인가를 알아야한다고 강조한다. 주코프부최고사령관은 쿠르스크전선이라고 답한다. 1943.7 쿠르스크에서 치열한 전투가 전개되고 소련군은 승리한다.
영화는 시대를 반영한다. 1968부터 개봉된 5부작소련영화 <해방>은 2차세계대전의 실상을 사회주의적사실주의사조에 맞게 담아내고있다. 국가차원에서 제작됐기에 충분히 동원할수 있었던 대전차·전투기등으로 규모있고 박진감있게 전투를 묘사했고 굴복하지않는 소련군의 용기와 희생된 전사자들의 모습까지 생생하게 표현하고있다. 더욱이 적인 히틀러를 우스꽝스럽게 표현하지않았다. 1943만 해도 독일은 유럽대륙대부분을 점령하던때다. 히틀러는 카리스마가 있었고 파쇼세력은 힘든 상대였기에 소련의 승리는 더욱 빛을 발한다. 흐루시쵸프의 배신적인 스탈린격하만행이 있고난뒤 제작된 영화여서 그런가, 오히려 스탈린의 위엄을 제대로 그리지못했다.
스탈린이 없었다면 2차세계대전은 승리하지못했다. 1939.8 독일과의 불가침조약, 1941.4 일본과의 중립조약에는 소련을 보위하고 2차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기 위한 스탈린의 지략이 반영돼있다. 시간을 얻어 전쟁을 대비하는 한편 세계반파쇼전선을 형성하면서 제국주의세력이지만 반파쇼세력이었던 영국·미국을 견인했다. 이과정에서 영·미가 1942 서부전선을 형성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않고 1944에 가서야 서부전선을 형성하며 보인 기회주의성과 2차세계대전이후의 적을 소련으로 상정한것까지 참고견디며 세계반파쇼전선을 강화·발전시킨것은 스탈린의 중요한 공적이다. 스탈린은 끝내 전쟁을 승리로 이끌면서 혁명의 대고조기를 열었다.
쿠르스크가 뚫리면 바로 모스크바다. 2024.8 미·나토의 조종, 지원하에 키예프신나치군이 쿠르스크를 침공했다. 이를 러시아와 함께 조선이 격퇴하며 2025.3 전투를 승리로 종결했다. 그과정에서 조선은 최고수준의 국제주의정신을 전세계앞에 빛내였다. 2차세계대전에서 파쇼독일은 쿠르스크전투패배이후 단1번도 이기지못했다. 소련은 쾌속으로 서쪽으로 진군하며 파르티잔부대와 결합해 파쇼군대를 격퇴했다. 이영화의 원제는 <해방>이지만 알려진 제목이 <유럽의해방>인 이유가 다른데 있지않다. 2차세계대전승리의 영광을 기회주의적인 영·미가 아닌 소련과 세계진보적인류가 받아안으며 혁명의 대고조기를 열었다. 전쟁은 혁명전야다. 반제진영은 3차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며 세계혁명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