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 항쟁의기관차〉 거품과 공황을 심화시키는 금융

경제공황은 상대적과잉생산공황으로 지불가능수요가 현저히 떨어지면서 발생한다. 이공황의 연속과정으로 화폐유통질서의 파탄과 발권제도의 혼란상태가 야기돼 화폐공황이 나타난다. 이에 따라 발권은행의 저장금이 대량적으로 교환되기에 금태환은 정지되고 결국 금본위제가 파탄나게 된다. 1차대전전후 화폐발행남발로 사실상 금본위제가 정지되고 1920년대 다시 금본위제를 유지하려고 시도했으나 1929∼33 세계경제공황당시 그기형적금본위제마저 파탄났다. 공황은 2차대전을 거쳐서야 어느정도 극복되고 경기가 회복된다. 이를 기회로 1944 브레튼우즈회의를 하고 다시금 금본위제로의 복귀를 시도한다. 이를 위해 금융자본집단은 달러를 기준통화로 하는 금본위제를 확립한다. 금융자본집단은 1907 미국의 경제공황에 대한 대책으로 미연준(Fed)의 설립을 이끌어냈고 금융자본 집단이 미국의 화폐발행권을 쥐게 됐다. 이어 이를 보장하는 기구로 IBRD(국제부흥개발은행)와 IMF(국제통화기금)를 설치하기로 결정한다. 미달러가 세계경제에서 유통되는 비중이 높아지면서 세계경제에 대한 지배권도 강화됐지만 금본위제하에서는 달러를 발행한만큼 금도 유출돼 2차대전말 미국이 세계유통금의 70%가량을 보유하던것이 1960년대말에는 40%대로 줄어들었다. 금융자본집단은 세계화폐의 대안으로 IMF의 SDR(특별인출권)을 구상한다. 1971 미국의 달러금태환지불중단선언은 이런 대체물을 더욱 필요로 했지만 당시에는 이를 현실화시킬만큼 준비돼있지않아 금융자본집단은 금의 대체물로 석유를 구상한다. 미국무장관 키신저는 미국의 정치·군사적지원을 담보로 1위산유국 사우디와 석유결제대금을 달러로만 받기로 하는 협상을 끌어낸다. 1973 중동전쟁으로 인해 야기된 석유파동, 원료·연료의 구조적위기는 세계적인 인플레이션공황을 야기했고 금융적으로는 대량의 <석유달러>가 형성돼 금융자본집단의 호주머니를 채우는 계기가 됐다. 달러화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1985 플라자합의로 독일과 일본이 달러를 받쳐주기로 결정한다. 독일은 유럽경제공동체를 통해 경기침체는 피해가지만 일본은 아시아지역에서 그만큼의 지위를 갖지못하고 대대적인 양적완화를 시행해야했다. 1980년대말~90년대초 소련사회주의권의 붕괴와 중국사회주의의 시장경제도입은 금융자본집단에게 새로운 시장을 제공했다. 금융자본집단은 신자유주의<세계화>를 내세워 보다 공격적으로 시장을 공략했다. 중러와 신흥발전국가들이 결합해 2000 년대 BRICS라는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했다. 중국은 미달러가 기준통화로 자리잡은 세계경제질서에서 디지털화폐에서만큼은 그주도권을 뺏기지않기 위해 선도적으로 디지털화폐시장에 진출하고있다. 한편 유럽은 2차대전의 후과에서 벗어나 유럽지역을 포괄하는 경제공동체를 형성해 새로운 발전의 도약대를 마련하기 위해 1998 ECB(유럽중앙은행)를 세우고 1999.1.1 유로화를 도입하는데 성공한다. 이제 유로화는 달러에 버금가는 세계화폐로 부상했다. 1997 동아시아외환위기나 2000전후 닷컴버블위기등 신용위기·통화위기는 2008 금융세계공황으로 전세계를 휩쓸고 다시 2019 바이러스세계공황으로 발전했다. 이는 2008 공황당시 양적완화에 비교해 2020 대규모적인 양·질적완화로 확인할수 있다. 오늘 세계적범위에서의 화폐공황은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산업공황에 의해 발생하기도 하지만 과잉유동성화폐자본이 방대하게 조성돼 국제신용이 고도로 팽창하면서 국제통화위기에 의해 더욱 자주 폭발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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