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장르가 있다. 제한된 공간에서 극소수만 살아남는 서바이벌게임. 약육강식의 정글법칙이 작품속에 적용될때 관객들은 남의 일처럼 여기지않는다. 지금 살고있는 사회와의 본질적차이를 느끼지못하기에 그렇다. 어느새 자신을 비쳐보며 매회 그운명선들에 울고 웃는다. 극성이 강할수록 더 빠져들고 한번 보기 시작하면 밤을 새며 시청한다. 그런 영화계의 최강자로 우뚝 서 남코리아인의 자부심마저 드높인 드라마가 출현했다.
봉준호는 아카데미연출상을 수상하는 자리에서 스콜세지의 글을 읽었던 기억을 되살리며 개인적경험이 보편적으로 인정받는 창의성의 한원천임을 언급해 큰 박수를 받았다. <기생충>에서는 각본을 쓴 자신의 과외교사경험이 <오징어게임>에서는 남사회에서 자랐다면 누구나 경험한 놀이가 그런 기능을 한다. 반지하로 들어가든 빚더미에 짓눌리든 삶의 벼랑끝에 선 사람들에게 <인생역전>의 계기는 <악마의유혹>이라고 해도 거부할수 없다. 어차피 죽게 됐으니 모험이라도 해보겠다는 심리가 생기는것은 인지상정이다.
헌데 과연 인간사회의 법칙이 동물세계와 똑같을까. 사회학자들은 원시사회의 질서가 현재도 유지되는 공동체들에게서 증여가 사회의 기본원리라는 사실을 찾아냈다. 리더는 정치적영예만 빛날뿐 경제적으로 오히려 가장 빈한하다. 그래야 그공동체가 존재할수 있다는 삶의 지혜를 깨달아서다. 과학은 원시공동체가 비공동체적시절을 거쳐 다시 고급공동체로 전화발전한다는 진리를 밝혀냈다. 사회적존재인 사람은 생물학적존재인 동물과 본질적으로 다르고 현재의 착취사회가 미래의 공동체사회로 나아간다는 이치는 이제 더이상 비밀이 아니다.
왜 비슷한 영화인데 우리가 만들면 다른가. 구성과 연기, 미술과 같은 기교적측면도 있겠지만 역시 우리민족성이 남달라서가 아닌가싶다. 사람이 숱하게 죽어나가는 잔혹한 영화지만 사람을 중시하고 생명을 중시하며 의리를 중시하는 우리민족성이 반영된데에서 세계적범위의 공감대가 형성된게 아니겠는가. 어둠이 깊어지면 새벽이 온다고 사람 못살 생지옥은 사람 살만한 새세상으로 반드시 바뀐다. 그때는 영화에서처럼 99%우리민중끼리 싸우는게 아니라 1%반민중착취자로부터 정당하게 환수해 제대로 된 복지를 실현하게 된다. 공동체의식이 남다른 우리민족이 가장 먼저 가장 높은 수준의 공동체를 이루며 잘살게 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