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의 신한국당에서 1997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으로, 박근혜의 새누리당과 현재의 국민의힘으로 이어지고있다. 이들은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이뤄진 정권교체인 김대중·노무현시기를 <잃어버린10년>이라고 칭한다. 반공반북의 뿌리깊은 파쇼체제속에 진보·변혁세력은 철저히 제한된 상태에서 무능한 개혁정권에 대한 민중들의 불만은 파쇼세력이 전면에 등장하는 계기로 이어졌다. <이명박근혜>9년간 정보원(국가정보원)장5명중 첫1인을 제외한 원세훈·남재준·이병기·이병호4명이 사법처리됐다. 파쇼정권에 뿌리를 둔 <이명박근혜정권>은 정보원을 철저히 이용하고 그에 의존했다. 정권초기인 2008.5 미국산쇠고기수입반대촛불집회가 전개되자 2008.7 총리실에 공직윤리지원관실을 설치하고 민간인사찰을 본격화했다. 경찰은 당시 집회를 막기 위해 컨테이너박스로 길을 막았는데 참가자들은 이를 <명박산성>이라고 불렀다. 집회에 대한 경찰의 과잉진압은 2015 백남기농민이 물대포에 맞아 쓰러졌다가 끝내 회복하지못하고 목숨을 잃는 사건으로 이어졌다. 원세훈행정자치부장관이 정보원장에 취임(2009.2)하면서 보수세력옹호·<종북>좌파척결이 전면에 내걸렸다. <미디어워치>창간을 지원하고 심리전단을 2개팀으로 확대했다. 이듬해에는 사이버사령부가 창설됐다. 이해 심리전단을 3개팀으로 확대하며 2012 총선을 앞두고는 4개팀까지 확대했다. 다시금 군사파쇼정권시기의 공안통치가 시작됐다. 이들은 촛불집회의 <배후>를 언급하며 친노와 진보좌파에 의혹을 던지고 여기에 <종북>몰이<색깔론>을 씌웠다. 각분야의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하도록 했으며 이를 정보원이 총괄했다. <종북>몰이는 박근혜<정부>로 이어져 <정보원댓글사건>의 위기국면전환용으로 <남북정상회담회의록>을 공개해 NLL논쟁을 불러일으켰고 2014.12 통합진보당을 강제해산시켰으며 <세월>호유족과 사드반대주민들의 투쟁등에 <종북>몰이를 이어갔다. 이명박정부는 국방부사이버사령부를 통해서도 대선여론개입활동을 벌였고 박근혜<정부>는 정보원대선개입수사를 은폐·축소하는데 집중했다. 이명박은 미디어법개정으로 종편을 설치했으며 이를 통해 사실상 조·중·동에 방송사를 선물했다. 종편은 이후 파쇼세력이 여론을 주도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됐다. 뉴라이트의 등장과 역사교과서논란에 이어 5.18광주민중항쟁의 매도논란은 파쇼세력이 즐겨 사용하는 흑색선전으로 자리잡았다. 이는 반공반북이데올로기의 현대판버전이다. 끊임없이 재생산해 친미친일의 반민중적이고 반민족적인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는데 이용했다. 결국 반민중적이고 부정부패한 권력집단은 그본태가 드러나고 민중의 거센 촛불항쟁으로 무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