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의 십자군전쟁과 동서문화의 융합
11세기 십자군전쟁이 발발했다. 전쟁은 중동에 위치한 기독교성지인 예루살렘이 이슬람세력인 셀주크투르크족의 차지가 되자 이를 되찾자는 명목으로 시작됐다. 예루살렘은 이슬람교창시자 마호메트를 계승한 <카리프>들의 정복전쟁에 의해 638 점령됐으나 이들은 기독교에 관대해 기독교인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성묘교회에 방문하는것을 허용했다. 313 밀라노칙령으로 기독교를 정식종교로 공인한 로마의 콘스탄티누스황제의 모친 헬레나가 326 80세고령의 나이에 예루살렘을 순례한 이래 기독교인들은 성지순례를 매우 중시했다. 그러나 이슬람교를 믿었지만 아랍인은 아니었던 셀주크투르크는 이슬람교가 지배적인 땅에 교회·수도원이 융성한것을 보며 1078 예루살렘순례를 금지하기 시작했다.
기독교는 1054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의 파문으로 인해 갈등이 심각해지며 로마교회와 비잔티움교회가 공식적으로 분열돼 각각 가톨릭교와 그리스정교로 나뉘어져있었다. 갈등의 시작은 726 동로마제국황제 레오3세가 성화상(이콘)을 우상으로 낙인하며 공경을 금지하고 파괴한, 성상파괴령에 의한것이다. 한편 당시 유럽사회는 1066 노르만이 영국을 정복하고 대륙에서 영토문제로 프랑스와 빈번히 대립했으며 성직의 서임권을 둘러싸고 신성로마제국 하인리히4세를 중심으로 한 교황권과 그레고리오7세를 중심으로 한 황제권의 갈등도 심화되던 상황이었다. 1077.1 <카노사의굴욕>은 그레고리오7세가 하인리히4세를 파문하자 하인리히4세가 교황이 있는 이탈리아북부 카노사성에 찾아가 3일간 무릎을 꿇고 빌었던 사건으로 교황권이 황제권보다 우위에 있다는것을 보여줬다.
십자군전쟁은 비잔틴제국(동로마제국)황제 미카엘7세가 1073 로마교황청에 원군을 요청하면서 촉발됐다. 1071 셀주크투르크는 비잔틴군대를 격파하며 소아시아 깊숙이 진격해 비잔틴제국의 반이상을 점령한 상태였다. 1054 동서기독교갈등을 생각하면 당시 비잔틴제국이 셀주크투르크에 의해 멸망직전에 놓여있는 긴박한 상황이었다는것을 보여준다. 그레고리오7세는 가톨릭교회에서 최고권한을 의미하는 수위권을 확고히 하기 위해 1074 5만병력을 파견하려고 계획했으나 최종적으로 파병은 이뤄지지않았다. 1092 셀주크투르크는 콘스탄티노플과 보스포러스해협을 사이에 두고있는 소아시아의 니케아지역까지 점령하며 콘스탄티노플의 함락기회를 노리고있었다. 알렉시우스비잔틴황제는 로마교황 우르바노2세에게 <전통적으로기독교영토였던비잔틴제국에서이슬람무법자들을축출하는것이서방교회와동방교회의신자들에게당연한의무>라는 내용의 친서를 보냈고 이에 우르바노2세는 1095.11 프랑스남부 클레흐몽에서 종교회의를 개최해 군대파병을 확정했고 전쟁참여자에게는 <면죄의특권을주겠다>고 확약했다.
십자군전쟁의 참전목적에 <성지회복>이라는 대의만 있었던것은 결코 아니다. 영주는 영토·전리품을, 상인은 동지중해의 상권획득을, 농민은 영주의 압박에서 벗어나려는 각자의 세속적목적을 갖고있었다. 당시 유럽은 봉건제가 공고화돼 영주가 자유농민들을 농노화하고 다른 영주의 영지를 빼앗아 농노에 대한 착취를 강화하면서 영주사이의 전쟁, 농민폭동이 빈번했다. 십자군전쟁은 이러한 사회적갈등을 외부로 돌리는 기능도 있었다.
십자군전쟁은 크고작은 원정들을 다 합하면 13세기까지 약8차에 걸쳐 진행됐다. 그중 주요원정은 1~4차원정이다.
1095 시작된 1차십자군원정에는 대략 15만명정도 참가한것으로 추산된다. 1차원정직전에 광신도 피에르를 따라 군사훈련을 전혀 받지못한 군중십자군이 원정을 떠났다. 이들은 각종학살·약탈을 감행하며 이슬람영토에 다다랐으나 셀주크투르크군에 의해 전멸됐다. 군사훈련을 받은 4만명정도의 정규원정군은 1097 콘스탄티노플에 집결했다. 이들은 소아시아의 니케아·안디옥을 점령한 후 계속 남하해 1099.7 예루살렘을 탈환했다. 병사들의 목적이 성지탈환에만 있었던것이 아니었기에 약탈·살육·학살이 무자비하게 이뤄졌다. 기록에 의하면 예루살렘성전터주변에서 학살당한 사람들의 피가 사람의 무릎까지 차올랐다고 한다.
1144 소아시아 에데사가 셀주크투르크에 의해 점령되면서 2차십자군원정이 시작됐다. 에데사는 1차십자군을 이끌었던 사람중 1명인 보두앵블로뉴백작이 세운 백국이었다. 2차원정에는 프랑스왕 루이7세와 신성로마제국황제 콘라드3세를 중심으로 20만대군이 출정했지만 이들은 각자 셀주크투르크와 전쟁을 하면서 계속 참패했고 1148 모두 철수했다. 2차원정결과 분열돼있던 이슬람세력이 결집했고 1차원정이후 소아시아에 세웠던 <십자군국가>들은 시리아를 통일한 술탄 누르앗딘에 의해 세력을 잃었다. 이때부터 교황청은 십자군원정의 재원마련을 위해 <면죄부>를 판매했다.
3차십자군원정에서 주목되는 사람은 살라흐앗딘이다. 1174 이집트의 술탄으로서 아이유브왕조를 창건한 살라흐앗딘은 2·3차십자군전쟁에서 십자군을 패퇴시킨 최고사령관이었다. 살라흐앗딘은 3차십자군전쟁에서 1187.10 예루살렘을 함락하며 88년동안 기독교도에 강탈된 성지를 회복했다. 살라흐앗딘이 이슬람세계를 넘어 유럽에서도 칭송받는 이유는 1차원정당시 예루살렘을 무자비하게 살육한 유럽인들에 비해 살라흐앗딘은 기독교포로들은 몸값만 받고 석방했고 예루살렘에 살기 원하는 기독교도들에겐 추가세금을 내는 조건으로 거주를 허락했으며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는 관용정책을 실시했기에 그렇다. 한편 3차십자군전쟁에 참전했던 독일황제 프리드리히1세는 1190.6 소아시아에서 익사했고 프랑스 필리프2세와 영국 리처드1세는 예루살렘에 도착했으나 두사람간 관계악화로 필리프가 귀국하며 십자군역량은 극도로 축소된다. 사자왕이라고도 불린 호전적인 리처드가 결국 살라흐앗딘과 휴전협정을 맺은 이유다.
4차십자군원정에서는 모순적이게도 십자군에 의해 콘스탄티노플이 전화에 휩싸이게 된다. 1198 교황 인노켄티우스3세는 3차십자군을 주창했고 프랑스영주들이 이에 호응했다. 이들은 예루살렘함락을 위해 이집트를 쳐야한다고 여겼고 육로가 아닌 해로로 출정하려고 했다. 많은 군대를 수송하기 위해 베네치아공화국의 엔리코단둘로총독과 협상해 각종군수품을 조달받으려했고 단둘로는 은8만5000마르크를 요구하며 정복지의 절반을 베네치아가 갖는다는 조건을 달아 50척의 무장한 범선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문제는 십자군측이 이비용을 전부 마련하지못한 상황에서 단둘로가 십자군의 절박한 처지를 이용해 달마티아(현 크로아티아)의 차라지역의 수복을 강요했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십자군은 엉뚱하게 기독교지역인 차라를 공격해 살육·방화·약탈을 감행했다. 분노한 교황은 십자군과 베네치아를 모두 파문했는데 이들에게 비잔틴제국황태자 알렉시우스4세가 접근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알렉시우스는 권력장악을 위해 이군대가 콘스탄티노플을 침략하도록 부추겼고 결국 1204 4차십자군은 콘스탄티노플에 상륙했다. 치열한 공방전끝에 함락된 도시는 온통 불바다가 됐고 여기에 알렉시우스가 빚상환약속을 지키지않은것까지 합해 베네치아·십자군과 비잔틴세력간의 전쟁이 연이어 일어난다. 결국 완전히 함락된 콘스탄티노플에서 단둘로는 병사들에게 3일간의 약탈을 허용했고 그결과 콘스탄티노플은 약탈과 학살에 완전히 폐허가 됐다. 그정도가 얼마나 심각했으면 150년이 지난 후 이슬람세력 술탄에 의해 함락위기에 처해 서유럽에 원군을 요청하려고 하자 콘스탄티노플민중들은 이슬람세력에 함락되는 편을 택했고 결국 이슬람세력에 의해 멸망했다.
야만적이며 패전만 거듭한 십자군전쟁의 결과 교황권이 추락한것은 필연적결과다. 더해 원정에 참가한 제후·기사들이 몰락하며 봉건세력이 약화되고 이는 왕권강화로 이어졌다. 무엇보다 선진적인 동방문화가 유럽으로 유입됐고 그길목에 있던 이탈리아의 상업·도시의 발달이 촉진되며 추후 일어날 르네상스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페스트의 확산과 중세의 종말
러시아고고학자 다니엘촐슨은 중앙아시아 세미리싱크지방의 이식쿨호수근방을 조사해보고 1338~39 비정상적으로 사망자수가 많았다는것을 확인한다. 네스토리우스교의 비석에는 죽은 이유가 페스트(흑사병)라고 기록돼있다. 이지역은 선페스트, 즉 작은동물에 기생하는 감염된 벼룩에 의해 전염되는 페스트의 중심부중 하나로서 흑사병이 시작된 곳으로 공식화된다. 병은 동쪽으로 중국, 남쪽으로 인도, 8년뒤 서쪽 크림지방으로 확산된다.
세균 파스튜렐라페스티스는 동물의 혈관, 벼룩의 위장에서 서식하는데 특히 이세균이 좋아하는 케오피스벼룩은 설치동물의 털속에 기생했다. 그중 들쥐는 14세기중반 들끓었는데 십자군의 배를 통해 유럽으로 유입됐다고 추정된다. 1330년대 중국은 잇따른 재난에 흑사병이 더해 저(浙)지방에서만 500만명이 사망했다고 알려져있다. 페스트균은 실크로드를 따라, 메소포타미아·시리아·아르메니아를 휩쓸었고 1346 소아시아 타타르지방에 정착했으며 크림반도에서만 약8만5000명이 사망했다고 기록돼있다. 타타르인들은 제노아상인들과의 싸움에서 대포를 이용해 성안에 시신을 들여보냈고 시신과 함께 균도 성안으로 유입됐다. 배를 타고 흑해에서 지중해로 도망간 제노아상인들이 이탈리아반도에 상륙하면서 페스트균은 본격적으로 유럽에 확산된다. 1348.1 3척의 배가 제노바에 정박했는데 사람들이 갑자기 전염병에 감염되는것을 보며 제노아인들은 선원들을 내쫓았고 이배들은 다른 항구들로 흩어지면서 페스트는 더욱 확산됐다. 전염병은 1348봄 시칠리아·이탈리아본토까지 확실히 번졌다. 아비뇽교황청의사 기드숄리아크에 따르면 페스트에 걸린 사람들은 2달동안 계속 열이 나면서 피를 쏟는 증세가 있었는데 3일만에 죽는 경우도 있었다. 다른 경우는 발열과 함께 등창이 생겨 5일만에 죽기도 했다.
당시 의학·과학지식으로는 페스트감염경로를 알수 없었던 유럽인들은 대부분 공기오염이 병의 주원인이라고 믿었다. 일각에서는 1347 대지진이 원흉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1세기이상 가장 권위있고 설득력있는 해석으로는 파리대학의학부가 1348.10 공식발표한 보고서였다. 여기에 따르면 1345.3.20 물병자리에서 3개행성인 화성·목성·토성이 합을 이뤘던 사건이 대기의 치명적오염을 유발했고 천체변화로 인해, 오염된 대기를 사람이 흡입함으로써 독성물질이 심장까지 침투했다는것이다. 지금으로선 말도 안되는 이주장은 당시 <하나님의분노>가 전염병확산의 근본원인이라고 믿었던 기독교적가치관과 부합됐다.
흑사병의 빠른 확산은 그직전 유럽에서의 대기근으로 인해 이미 취약해진 상황과 맞물린다. 11세기부터 인구가 늘어나기 시작했고 13세기에 들어서는 인구밀집도가 매우 높아진 상황이었다. 그중 농부들이 이주하기 힘든 인구중심지의 경우 13세기말 생산성하락등으로 인해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었다. 흑사병이 돌기 70~80년전에는 소빙하기로 인해 빙하가 내려오며 경작지대가 축소됐고 흉작이 계속돼 1272~1311사이 영국에서만 기근이 4차례나 있었다. 기록에 따르면 식인행위가 일상적이었다고 하니 그심각성이 얼마나 큰지 잘알수 있다. 흑사병이 유럽을 덮치기전부터 인구는 이미 감소하고있었고 저항할 힘이 없는 사람들은 흑사병에 속수무책 죽어갔다. 1348 이탈리아에서의 페스트확산을 시작으로 전염병은 점차 북상해 1350.12 스칸디나비아반도까지 휩쓸었다. 흑사병으로 인한 사망자수는 논란이 있으나 당시 유럽인구의 1/3이 사망했다는것이 통설이다.
흑사병으로 인해 가톨릭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무너진것은 물론이다. 흑사병을 두고 <신이내린처벌>이라고 주장했는데 정작 가장 많이 죽은 계층은 좁은 공간에 밀집해있던 수도원의 수도사등 종교인들이었다. 한편 흑사병으로 인한 인구의 급격한 감소로 노동임금이 상승했고 농민의 요구가 억압될 경우 농민반란이 일어나거나 농민들이 도시로 이주했다. 이는 노동력의 격감을 부추겼다. 전역이 황폐화돼 생산물이 떨어지자 물물교환에서 화폐지불체제로의 전환이 빠르게 이뤄졌다. 이같은 사회변화는 중세가 끝을 맺었다는것을 의미한다. 종교가 쇠퇴하고 인간중심의 사고가 대두됐으며 인구감소에 따라 기계발달이 촉진되며 르네상스시대가 열릴수 있는 객관적조건이 마련되고있었다.
르네상스와 부르주아세력의 대두
페스트가 휩쓸어 폐허가 된 유럽에 14세기 새시대양식인 르네상스가 등장하며 근대가 시작됐다. 르네상스는 이탈리아에서 시작, 이후 북유럽으로 확산됐다. 페스트이후 인간중심사고가 확산되며 새문화를 갈망하는 시대적분위기는 인문주의적인 그리스·로마문화를 14세기에 되살리기 위한 흐름으로 이어졌다. 이탈리아는 십자군원정당시 동방문화가 유입됐던 통로이자, 페스트확산당시 가장 먼저 큰 피해를 입었던 지역이며 중앙집권적통치가 아닌 지방분권적통치로 인해 여러도시국가가 형성돼있던 곳이다. 이같은 지리적, 역사적, 정치적 특성은 르네상스가 이탈리아에서 시작될수 있는 배경이 됐다.
이탈리아 여러지역중에서도 피렌체가 르네상스의 핵심이 될수 있었던것은 메디치가문이 있었기때문이다. 메디치가의 역사는 약350년(1400~1748)간 이어진다. 메디치가는 피렌체북쪽 농업지역인 무겔로에서 왔다고 알려져있으며 1400에는 피렌체의 중산층가문으로서 부르주아계급이었다. 은행업에 종사하며 상당한 부를 소유하고있던 메디치가는 1400경 수장 조반니데메디치때 은행업을 더욱 확장하고 부를 축재했다. 한편 피렌체는 공화국으로서 시의회(시뇨리아)에 의해 통치됐다. 조반니의 선조들은 시민의 편에서 귀족(그란디)에 맞서 투쟁했는데 1343 조반니부친의 먼친척은 당시 피렌체군주에 의해 평민들(포폴라니)중 가장 위험한 분자로 지목돼 처형됐고 1378 조반니조부의 먼친척은 시뇨리아에서의 연설로 방직·염색·모직길드의 하급노동자들이 일으킨 촘피의 난을 촉발시켰다. 이민란은 귀족들의 권력을 꺾고 교황당(겔프당)의 과두정을 무너뜨렸다. 이렇듯 메디치가는 시민계급을 옹호하는 전통을 갖고있었다. 피렌체의 상황과 가문의 특성은 피렌체가 교황·귀족의 힘이 약화되고 시민·부르주아의 힘이 강화되는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반면 피렌체주변국인 베네치아와 밀라노는 각각 귀족과두정과 황제령공국이었다.
피렌체는 경제적으로도 무역·상업에서 가장 융성한 나라였다. 피렌체의 은행들은 유럽전역에 은행을 뒀고 피렌체금화(플로린)는 유럽의 화폐역할을 했으며 양털·모직과 같은 주요생산품의 생산과 염색산업도 피렌체에 집중됐다.
조반니당시 피렌체의 유력가문은 귀족가문인 알비치가였고 이들이 피렌체의 국정을 좌우했다. 조반니는 1397 메디치은행을 설립했고 1402 은행조합의 대표로 선출되며 정부관료가 됐다. 조반니의 정치적판단과 수완이 드러난 사건은 1418 교황 요한23세를 돈으로 구제한 일이다. 요한23세가 폐위돼 감옥에 갇히자 3만5000플로린의 보석금을 대신 지불했고 은신처를 제공했으며 사후에는 기념비까지 세워줬다. 요한23세가 폐위된 후 다른 교황들인 그레고리오12세와 베네딕토13세로 양분된 사태를 종식하며 등장한 마르티누스5세는 조반니의 신의있는 모습에 감명을 받아 메디치은행을 새로운 주거래은행으로 선정했고 그결과 메디치가의 부와 명성은 더욱 커지게 된다.
1412 조반니는 시의회의장(곤팔로니에레)에 선출됐고 1422 피렌체가 밀라노와 4년간의 전쟁에 들어가자 1426 조반니는 귀족들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세금을 인두세에서 재산세로 변경하며 스스로 막대한 세금을 지불했다. 1427에는 공직생활마지막결정으로 시민의 권리를 축소하려는 귀족들의 건의안을 무산시키기 위해 자신의 영향력을 동원했다.
조반니에 의해 설립된 르네상스시대 대표적건축물은 1419 세워진 오스페달레델리인노첸티다. 이건물은 빈민구제소로 지어졌다가 이후 고아원·병원을 거쳐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있다.
메디치가의 기반을 마련한 조반니를 이어 장자 코시모디조반니데메디치가 가문의 수장이 됐다. 이무렵 메디치가는 유럽의 16개수도에 설립한 은행으로 막대한 부를 쌓아놓고있었다. 명성과 부를 가진 부르주아출신 메디치가에 대한 귀족들의 견제와 공격은 계속 심화됐다. 알비치가가 이끌던 귀족들은 코시모를 암살하고 그가문을 추방하려고 했지만 이음모는 실패했다. 그러나 1433 시뇨리아를 장악한 귀족들은 코시모가 시민위에 군림하려고 음모하고있으며 그증거로 메디치가가 건립하고있던 새궁전을 지목했다. 메디치가는 전원추방됐지만 1429~33 알비치가의 실정과 재정위기로 1434 추방령이 철회됐고 메디치가는 피렌체로 귀환한다. 코시모는 귀환후 정적제거에 나서지않고 주모자몇명을 추방하는것으로 그쳐 좋은 평판을 얻었고 콘팔로니에레에 선출됐다. 한편 코시모는 학문발전·예술장려·구호소지원등을 통해서도 명성을 얻었는데 동방의 희귀자료들을 수집하는 상설조직을 가동했고 수집물을 대형도서관에 보관했으며 플라톤아카데미를 설립했다. 예술에서 화가 안젤리코·리피, 조각가 기베르티·도나텔로, 건축가 브루넬레스키·미켈로초에 대한 후원을 아끼지않았다. 1436 브루넬레스키는 로마에서 연구해온 혁신적방법으로 산타마리아대성당의 돔을 완성해 대성당이 마침내 완공됐다. 이후 이성당의 돔은 르네상스의 대표적건축물이 됐다. 이는 코시모의 피렌체통치의 기점을 알리는 사건이기도 했다.
1446 이탈리아에서 밀라노·교황·나폴리와 피렌체·베네치아·제노바·볼로냐간의 전쟁이 발발했다. 코시모는 나폴리와 동맹세력을 이간시키며 승리를 거뒀지만 피렌체는 밀라노와의 항시적전쟁상태로 국고가 탕진된 상황이었다. 코시모는 밀라노와의 적대적관계를 인맥과 혼맥으로 연결된 친선적관계로 변화시키는 외교적성과를 얻었다.
1463 코시모가 사망했다. 시뇨리아는 성대한 장례식과 기념비건립을 계획했으나 코시모의 유언에 따라 메디치가에서 이를 거절했다. 시뇨리아는 코시모에게 국부라는 칭호를 부여하고 이사실을 코시모묘에 공화국이름으로 새겨넣도록 법령을 통과시켰다.
코시모의 뒤를 이은 피에로디로렌초데메디치는 일고토소(통풍병자)라는 별칭을 갖고있었다. 소년시절부터 통풍으로 고생을 해 붙게 된 별명이다. 피렌체는 시뇨리아와 곤팔로니에레에 의해 통치되지만 코시모의 강력한 영향력으로 인해 시뇨리아에서 시행되는 모든 조치는 실행에 앞서 메디치수장의 동의를 받아야한다는것이 관례로 굳어졌다. 이는 메디치가가 확고한 통치세력으로 자리매김했고 거의 절대권력을 행사했다는것을 보여준다. 피에로도 코시모가 죽자 반대세력에 의해 위기를 겪는다. 특히 피에로가 병약하고 아들들은 어렸기때문에 반대세력은 이때를 적기로 봤다. 그러나 메디치가는 이번에도 기지를 발휘해 암살위기에서 벗어나고 세력을 규합해 반란군을 진압했다. 피에로는 이과정에서 메디치가의 전통에 따라 반란군에 대한 처형을 반대했고 일부는 사면해주며 명성을 이어갔다. 이시기 메디치가가 후원한 대표적화가가 보티첼리다.
피에로의 장남 로렌초디피에로데메디치는 <위대한자>로 불렸다. 이시기 메디치가의 권세는 절정에 이르러 후대는 로렌초때 피렌체공화정이 사실상 독재정으로 변했다고 비판한다. 실제 로렌초는 메디치가가 피렌체를 통치할 유일한 세력이어야한다는 생각을 갖고있었다. 피렌체시민들은 로렌초의 통치가 독재적이라고 해도 시민스스로 그것을 통제할수 있다고 여겼다. 메디치가는 이시기 시뇨리아가 거둬둔 세금은 다른 방면에 지출하면서 문화·예술·행사와 관련한 비용은 메디치의 사금고에서 지출했다. 이시기 메디치를 견제한 교황 식스투스4세와 유력귀족가문 파치가는 로렌초를 살해하고 시민을 선동해 메디치가를 제거하는 한편, 외국군을 동원해 피렌체를 기습하려했다. 파치가의 반메디치선동에도 시민들은 동요하지않았고 로렌초의 동생 줄리아노가 창상으로 사망했으나 로렌초는 위기에서 벗어나며 권력을 더욱 공고히 했다. 로렌초의 통치하에 피렌체는 르네상스시대 최고전성기를 맞이하며 이탈리아에 대한 지도적지위를 갖게되고 유럽의 지적이고 예술적인 수도가 됐으며 경제적으로도 빠르게 성장했다. 한역사가가 로렌초시대를 <이탈리아가1000여년동안미처누려보지못한전성기>였다고 평가한 이유다. 1484 인노켄티우스4세교황이 메디치가와 혼맥으로 연결하려고 한 사실은 부르주아가문인 메디치가의 권위를 보여준다. 로렌초의 학문·예술에의 막대한 후원하에 피사대학교가 설립됐고 르네상스시대 걸출한 예술가들, 미켈란젤로·레오나르도다빈치·보티첼리등이 활약했다.
한편 미술사학자 에른스트곰브리치는 메디치가문의 문화예술후원에 대해 <은행업에대한사회전반의적개심을의식한것>·<고리대금업의오명에서벗어나기위해사회에환원한것>이라고 지적했다. 당시 고리대금업은 가장 멸시받는 직종중 하나였으며 <이윤추구와이자소득>은 기독교교리에서는 파문에 해당하는 죄였다.
로렌초때에 정점을 이룬 메디치가의 권세는 이후세대까지 영향을 미쳤다. 메디치가출신 조반니디로렌초데메디치는 1513.3 교황자리에 올랐는데 이사람이 성베드로대성전건축기금마련을 위해 면죄부를 판매하며 종교개혁을 촉발시킨 레오10세다. 조반니의 사촌동생 줄리오는 1523 교황 클레멘스7세에 등극했다. 한편 르네상스문화를 흠모했던 프랑스 프랑수아1세는 귀족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아들 앙리를 메디치가여성 카트린드메디시스와 혼인시켰다. 앙리는 장자가 아니었기에 왕이 될 가능성이 없었는데 황태자 프랑수아의 사망으로 카트린은 왕비로 등극했고 이후 어린아들 대신 섭정까지 했다. 메디치가가 시민계급출신으로서 교황청전담은행에서 시작해 교권의 우두머리인 교황2명을 배출했고 여성은 왕비가 된 사실은 근대부르주아계급의 시대를 예고하는것이기도 하다.
1770년대 등장해 19세기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가문으로 등극하며 현재까지 금융자본의 거두노릇을 하는 로스차일드가문은 종종 메디치가와 비교된다. 로스차일드가문이 영국·프랑스등지에서 은행업을 중심으로 정치·종교·사회·문화를 장악할때 메디치가의 사례를 적극적으로 고려했을것이라고 추정된다.
코비드19의 인위적확산
코비드19는 2019.12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처음 확인됐다고 세간에는 알려져있다. 2020.1 WHO(세계보건기구)는 국제적공중보건비상사태를 선언했고 3월 팬데믹(세계적범유행)으로 격상시켰다. 2022.8.3기준 5억8400만명의 확진자와 642만명의 사망자가 나타난것으로 집계된다. 한편 진짜 우한에서 코비드19가 시작된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된다. 2020.2 미상원의원이 우한연구소에서 바이러스가 유포됐다고 제기하자 러시아방송에서는 <미바이러스유포설>을 보도했다. 2015 빌게이츠가 TED강연에서 <앞으로수십년안에1000만명이상죽게된다면,그것은전쟁이아니라전염력이강한바이러스때문일것>이라고 언급했고 빌게이츠재단이 바이러스등 보건문제에 개입한것을 주목하며 일각에서는 게이츠를 코비드19확산의 배후로 지목하기도 했다.
2020.5 중국 펑파이신문은 런던대유전자연구소연구팀이 글로벌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전세계 7600명의 코비드19환자의 몸에서 채취한 바이러스유전체를 분석한 결과 <코로나19전세계적인확산이시작된시점은작년(2019)10.6부터12.11로보이고이기간코로나19는자연숙주에서인류사회로진입한것으로보인다>고 밝힌 사실을 보도했다. 연구팀은 198개돌연변이를 확인했으며 바이러스의 특징으로 <모든곳에있다>고 언급했다. <전세계에서동시다발적으로확산되기시작했기때문에<1번째환자>를찾는일은의미가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2021.2 WHO조사단을 이끈 피터벤엠버릭은 코비드19가 우한실험실에서 유출됐을 가능성이 <극히낮다>고 단언했다. 전문가들은 2019.12 최초의 공식확진자가 나오기전 바이러스가 이미 우한에서 유행하고있었다는 증거는 없다고 말했고 중국국가위생건강위원회측은 코비드19가 다른 지역에서 발생한 후 우한에서 발견됐을수 있다고 언급했다. WHO조사단일원인 피터다스작은 코비드19기원에 대한 조사가 동남아로 옮겨질수 있다며 <우한의화난수산시장의공급망은매우방대해중국여러지역은물론,다른나라에서들어오는물량도많다.이를추적하는일은쉽지않을것>이라고 밝혔다.
코비드19가 미제침략세력에 의해 인위적으로 확산됐다는것은 최근 우크라이나생물학연구소에서 드러난 사실들로 증명되고있다. 2022.3.10 러국방부는 우크라이나에서 박쥐를 이용한 코비드19바이러스연구가 진행됐고 이연구에 미국이 자금을 댔다고 폭로했다. 이연구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사이를 이동하는 야생조류를 통해 질병을 확산시키는것과 관련한 연구라고 발표했다. 러시아측은 3.7 미자금을 지원받은 우크라이나생물학연구소에서 탄저병·콜레라등 치명적병원체들이 연구됐고 최근 긴급히 파괴됐다는 사실을 폭로하기도 했다. 3.27 러외교부가 매체를 통해 <바이오바이든>이라는 제목하에 미정가가 우크라이나군사생물학활동에 깊게 개입됐다는 사실도 폭로했다. 1991부터 미국방위협감소국은 소련의 대량살상무기통제·제거를 의도로 넌루가프로그램을 시작했고 1993 미·우크라이나협정, 2005 생물무기개발에 사용할수 있는 기술·병원체·노하우의 확산방지에 관한 우크라이나보건부·미국방위협감소국간의 추가의정서등이 체결됐다. 2005~14 우크라이나내 생물학연구소가 알려진것만 8개 건설·보강됐고 미정가의 비호하에 미생물의학회사·생물관련민간상업조직등이 우크라이나내에서 생물실험을 대대적으로 진행했다. 2022.2.24 러시아군의 특수군사작전으로 우크라이나내 생물학연구소에서 균주가 신속히 제거되며 이같은 문제가 세상에 공개되기 시작했다. 3.8 미국무부정무차관 빅토리아눌런드는 병원균분야에서 미·우크라이나간협력이 존재했다는것을 공식인정하기도 했다.
러시아가 코비드19확산에 대한 진실을 폭로하자 3.9 미국방부가 <미국은우크라이나화학무기,생물학실험실을소유하고있거나운영하지않고있다>고 수습에 나섰지만 미국가정보국장 에이브릴헤인즈는 3.10 미상원에서 <우크라이나내10여곳이넘는생물학연구소가있다>고 인정했다.
중관영매체 글로벌타임즈는 관련해 <미국은우크라이나에서코로나바이러스를가지고뭘했나?세계는설명을원한다.>는 사설을 통해 <미국은우크라이나에26개생물학실험실을통제할뿐아니라전세계30개국에걸쳐336개생물실험실을갖고있다>며 미국을 코비드19인위적확산의 주범으로 지목했다.
코비드19확산에 의해 세계적범위에서 경제위기가 심화되고 인류의 삶은 급변했다. IMF(국제통화기금)는 2020 세계경제성장률전망치를 -4.4%로 예측했다. 이는 1930년대 대공황이후 가장 낮은 세계경제성장률로, 2020 세계인류는 가장 심각한 경제위기상황에 놓여있다는것을 보여준다. 2020.9 유엔무역투자개발회의는 <2020무역개발보고서>를 통해 1월부터 5월까지 세계수출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 비교해 8.8%가 감소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2020.5기준 코비드19여파로 미국내 신규실업수당청구건수가 4000만건에 육박했고 1주만에 240만명이 넘는 노동자가 미국내실업수당을 신청한 사실은 코비드19경제공황에 따른 민생파탄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한편 인류역사에서 대공황이 1929·74에 이어 2019에 등장하며 45년을 주기로 반복했다는것은 중세흑사병·근대스페인독감에 이어 현대코비드19가 반복적으로 등장한것과 함께 결코 우연으로 보이지않는다. 세계자본주의체계의 조종자 시오니스트초국적자본과 그정치세력인 딥스테이트(deep state)가 미정가등을 배후조종하고있다는것은 널리 알려진 공개된 비밀이다. 코비드19대확산에 따라 현실에서의 관계망이 단절되고 <비대면>이 강조되며 초국적정보통신산업들이 일제히 <메타버스>를 주창하는것을 무심히 볼수 없는 이유다.
하이브리드전과 자이언트스텝
현시기 미국중심의 제국주의연합세력이 감행하는 전쟁방식은 하이브리드전(hybrid warfare)이다. 하이브리드전은 기존의 재래식무기와 더불어 모든 다양한 요소들을 공격수단으로 이용하는 전쟁방식이다. 2013 러시아연방군총참모장 발레리게라시모프는 <선전포고없이이뤄지는정치·경제·정보·기타비군사적조치를현지주민의항의잠재력과결합시킨비대칭적군사행동>이라고 정의했다. 현재 벌어지고있는 우크라이나전은 미국·나토가 우크라이나땅에서 감행하고있는 대표적인 하이브리드전이다. 전쟁이 미제침략세력의 직접수행이 아닌 대리전(proxy warfare)으로 수행되고있는것도 특징적이다. 미·나토는 소련·동유럽해체후 우크라이나에 본격적으로 친미파쇼세력을 투입했고 이들은 2014 <유로마이단>시위를 촉발하며 우크라이나반러정권을 전복하고 친미파쇼정권을 세웠다. 다른 한편으로 우크라이나내 금융자본세력을 동원해 아조프연대를 비롯한 우크라이나신나치부대를 키우며 돈바스지역에서 8년간 1만4000명에 달하는 러시아계주민들을 학살하고 삶의 터전을 완전히 파괴했다. 그결과 2014부터 최근까지 1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집을 떠났고 최소 81만4000명이 러시아로 갔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특수군사작전을 실시하자 미국은 3월 17조원, 5월 51조원등 여러차례에 걸쳐 수백조원의 군비물자를 <지원>명목으로 우크라이나에 쏟아부었고 나토군을 동원해 우크라이나군을 직접 훈련시키는 한편, 러시아주변에 나토군을 증강하고 6월 공중·미사일방어체계 람슈타인레거시22, 대규모해상연습 발톱스22등의 대러침략전쟁을 감행하며 반러침략책동을 더욱 심화시켰다. 뿐만아니라 서방미디어를 총동원해 러시아특수군사작전의 나토동진금지·주민보호·나치제거의 목적을 호도하고 러시아를 악마화하며 우크라이나신나치군대를 <구국의군대>로 왜곡하는 행위를 감행하고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전을 대리전으로 실시하고있다는것은 우크라이나신나치정권인 젤렌스키정권을 앞세워 전쟁을 벌이는것으로 드러난다.
미국은 하이브리드전과 동시에 경제위기를 심화시키며 세계적규모의 착취·약탈을 감행하고있다. 미연준(연방준비제도 Fed)은 2022.6.15 기준금리를 한번에 0.75%p올리는 자이언트스텝을 단행했다. 6월 미소비자물가지수는 9.1%까지 치솟으며 1981.12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는데 7.26~27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회의에서 또다시 기준금리를 0.75%p 올리는 자이언트스텝을 예고했다. 고금리·고물가·고에너지가·고곡물가등의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상황에 대해 조바이든미<대통령>은 블라지미르푸틴러대통령을 겨냥해 <인플레이션의큰원인>이라고 경제위기원인을 떠넘겼지만 6.17 푸틴은 연설을 통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특수작전은 서방이 모든 문제를 러시아탓으로 돌리는 일종의 구세주가 됐다고 반박했다. 특히 인플레·식량위기·에너지위기등의 문제는 군사작전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최근2년간미국의통화량은38%,EU의통화량은20%증대>, <서방은진공청소기처럼빈국의상품들을빨아들였다>며 현경제위기의 근원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우크라이나전에 이어 남코리아·대만에서 미국의 하이브리드침략이 임박했다는 징후는 곳곳에서 포착된다. 우크라이나에 젤렌스키신나치정권이 있다면 남코리아에는 윤석열친미파쇼정부, 대만에는 민진당분리주의정권이 있으며 우크라이나에 인접한 폴란드가 대러침략의 전초기지라면, 일본은 코리아반도·중국침략의 전초기지다.
일자위대는 미군과 콥노스·레졸루트드레곤·킨에지등의 합동군사연습을 벌였는데 2021기준 무려 120회이상의 반북·반중침략연습을 감행했다. 아베피격사망사건을 계기로 평화헌법을 전쟁헌법으로 개정하려하며 나토가입국들과 마찬가지로 GDP대비방위비2%를 향후 5년동안 순차적으로 실현할 계획이며 <적기지반격능력보유>를 의미하는 반격능력보유를 이번 2022방위백서를 통해 공식화했다.
미제침략세력은 윤석열친미파쇼정부·남군부호전세력을 동원해 <북핵실험설>을 끊임없이 유포하면서 북침핵전쟁연습을 계속 강화하고있다. 문재인정권당시 2018 북미공동성명, 9월평양공동선언·군사분야합의서를 채택하며 UFG(을지프리덤가디언)북침핵전쟁연습등 대규모군사훈련이 사실상 폐지됐는데 윤석열정부 들어 이를 UFS(을지프리덤실드)로 명칭만 바꾼채 8.22 시작된다. 2022 후반기합동군사연습 야외기동훈련은 총13회 실시되며 내년상반기에는 대규모미남합동야외기동연습 <쌍룡훈련>이 5년만에 부활된다. 한편 7.29 미남국방장관들은 대북선제핵타격을 의미하는 EDSCG(확장억제전략협의체)를 9월중 열고 TTX(확장억제수단운용연습)의 강화를 확정했다. 북은 7.27 <위대한전승69돌기념행사>에서 우리무력의 일상적인 모든 행동들을 <도발>로, <위협>으로 오도하고있는 미국이 우리국가의 안전을 엄중히 위협하는 대규모합동군사연습들을 버젓이 벌려놓고있는 이중적행태는 말그대로 강도적인것이며 이는 조미관계를 더이상 되돌리기 힘든 한계점에로, 격돌상태로 몰아가고있다며 윤석열·군부세력의 도발행위에 대해 <즉시강력한힘에의해응징될것>·<윤석열<정권>과그의군대는전멸될것>이라고 엄중히 경고했다.
미제침략세력이 중국을 겨냥해 <대만분리독립>을 공공연히 언급하며 중국에 군사도발을 감행하는것도 전쟁을 촉발시키는 수법중 하나다. 시진핑중국가주석은 2022.7.28 바이든과의 통화에서 <우리는대만독립과분열,외부세력의간섭을결연히반대한다>·<불을즐기면불에타죽는다>며 군사적대응의지를 분명히 밝혔다. 대만측은 7.25~29 <한광훈련>이란 이름으로 대중침략연습을 실시했는데 이시기 중국은 군용기2대를 대만ADIZ(방공식별구역)에 진입시켰고 대만동부해안주변해역에는 중인민해방군군함을 전개했다. 한편 미하원의장 낸시펠로시가 8.3 대만에 방문하며 대만을 둘러싼 일촉즉발의 전쟁위기상황이 가중됐다. 화춘잉중외교부대변인은 <미국이중국의주권과안전,이익을훼손한다면책임을지고대가를치르게될것>이라고 경고했다. 4~7일 72시간동안 대만주변6개해역에서 실시한 중국의 군사훈련은 펠로시의 대만방문에 대한 항의이자 미제침략세력의 <대만분리독립>시도를 좌시하지않겠다는 의미다. 4일 중관영CCTV방송은 <중국군동부전구가대만해협에서장거리실탄사격훈련을실시했다>고 보도했고 중인민해방군동부전구 스이대변인은 이날 오후 동부전구로케트부대가 대만동부외해여러지역에 여러형태의 재래식미사일을 집중타격했으며 미사일은 전부 목표물을 명중시켰다고 발표했다.
기획된 <신세계>, 메타버스
메타버스란 현실을 초월한 가상의 세계를 의미하는것으로 초월·가상을 의미하는 메타(meta)와 세계·우주를 의미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다. 2007 미국의 기술연구단체 ASF는 메타버스를 증강현실세계·라이프로깅세계·거울세계·가상세계로 분류했다. 증강현실의 개념은 3가지로 세분화할수 있다. 첫째, 스마트폰·컴퓨터를 통해 보는 현실의 모습위에 가상의 물체를 입혀 상호작용하는 방식으로, 대표적으로 게임 포켓몬고를 들수 있다. 둘째, 현실의 물리적공간에 어떤 기계장치, 설치물을 놓고 그것을 통해 현실에 존재하지않는 판타지를 현실공간에서 보여주는 방식으로, 2014 코카콜라가 핀란드에 위치한 코카콜라디지털기기에 눈을 넣으면 싱가포르에 있는 같은 기기에서 눈을 내리게 해 화이트크리스마스를 체험하게 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셋째, 현실세계를 배경으로 새로운 세계관·이야기·상호작용규칙을 만들고 이것을 참가자들이 지키며 즐기는 방식으로, 호주의 아트시리즈호텔에서 개최한, 참가자들이 <합법적>으로 예술품을 훔치는 스틸뱅크시게임이 한사례다.
라이프로깅은 자기삶에 대한 다양한 경험·정보를 기록해 저장하고 때로 공유하는 활동을 의미한다. 많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활용하는 페이스북·인스타그램·트위터등의 SNS(소셜미디어)가 라이프로깅메타버스에 해당한다. 페이스북의 경우 2019기준 매일 15억6000만명이 접속하는데 이는 세계인구 1/5이 매일 쓰는것과 같다. 라이프로깅메타버스를 기업이 활용한 대표적사례로 나이키의 플러스러닝·트레이닝클럽앱을 들수 있다. 플러스러닝에서는 달리기경로·기록을 SNS에 공유하며 트레이닝클럽에서는 유명스포츠선수의 트레이닝프로그램을 따라하거나 자신이 달성한 트레이닝기록을 마찬가지로 SNS에 공유하는 방식이다. 이것으로 나이키가 얻는것들중 가장 큰것은 어떤 연구소나 기업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의 세세한 운동기록을 보유한다는 점이다. 나이키만이 아니라 모든 SNS의 기록은 개인이 하지만 그에 대한 소유권은 기업이 쥐고있다.
거울세계는 실제세계의 모습·정보·구조등을 가져가서 복사하듯 만들어낸 메타버스다. 구글어스·네이버맵과 같은 온라인상 지도나 각종배달앱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거울세계는 현실세계 그대로를 보여주기보단 특정목적에 따라 일부가 특화돼 보여지는 경우가 많다. 예컨데 배달앱은 음식점과 관련한 분야만 특정해 최대한 효율성을 높였고 에어비앤비는 세계곳곳에 위치한 다양한 형태의 숙박관련 정보들을 집약해 효율성과 확장성을 보이고있다. 이러한 특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영역에서 폭넓게 사용되고있다.
가상세계는 현실과는 다른 공간·시대·문화적배경·등장인물·사회제도등을 디자인해놓고 그속에서 살아가는 메타버스다. 가상세계에서는 자신의 본래모습이 아닌 아바타를 통한다. 크게 게임형태와 비게임형태로 나뉘는데 월드오브워크래프트·리니지와 같이 일정한 규칙을 바탕으로 경쟁·협력하며 우승자를 가리거나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는 게임콘텐츠가 가상세계에 포함된다. 예컨대 세컨드라이프와 같은 인터넷기반 가상세계는 아바타가 린든달러라는 가상화폐로 아이템·부동산을 거래하며 다른 아바타와 상호작용을 하는데 이게임의 경우 선정성을 고려해 만18세이상의 사용자들만 이용가능했다. 이같은 콘텐츠는 커뮤니티형가상세계에 해당한다.
초국적자본들은 이미 메타버스를 이용해 정보를 독점하며 기업이익증대로 연결하고있다. 미기업 아마존은 일종의 클라우드서비스인 AWS(아마존웹서비스)를 운영하고있다. 기업들이 메타버스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대용량저장장치, 처리속도가 빠르고 안정적인 서버급컴퓨터, 안정적네트워크등이 필요한데 이것을 기업상대로 빌려주는 서비스가 AWS다. 동영상스트리밍서비스 넷플릭스, 게임중심동영상방송플랫폼 트위치, 비지니스에 특화된 SNS 링크드인, 페이스북등의 세계적규모의 기업들이 AWS의 고객이다. 아마존은 AWS를 통해 기업사용클라우드서비스의 30%이상을 차지하고있다.
구글은 증강현실·가상현실분야개발을 본격화하며 실재세계에 가상이미지를 결합한 혼합현실을 구현하는 프로젝트아이리스헤드셋을 2024출고목적으로 개발중이다. 더해 구글어시스턴트·네스트·핏빗등을 통해 일상생활·가정환경과 구글을 연결하려는 시도를 계속하고있으며 거울세계의 하나인 지도정보를 가장 많이 공급하고있다. 페이스북은 2014 가상현실장비제작업체인 오큘러스VR을 2조4000억원에 인수했고 오큘러스의 가상현실장치를 쓰고 가상세계에서 생활하는 2018 오큘러스룸플랫폼을 열었다. 2020.9에는 연례행사 <페이스북커넥트>에서 증강현실·가상현실분야투자계획과 가상현실장비오큘러스퀘스트2를 착용하고 이용하는 가상사무실 인피니트오피스를 공개했다.
메타버스는 그전부터 있었지만 중요도가 부각되고 시장이 확대되며 향후미래가 메타버스의 시대인것처럼 강조되는데는 코비드19이후 달라진 객관조건의 영향도 있지만, 무엇보다 이를 조종하는 세력이 초국적자본이라는 점이 결정적이다. 2022.5.22~26 다보스포럼에서 메타버스가 강조됐다. <역사적전환점:정부정책과비지니스전략>을 주제로 진행된 이번 포럼에서 <4차산업혁명>을 주창한 클라우스슈밥이 23일 엑센츄어세계경영컨설팅회사·MS사와 함께 가상의 <글로벌파트너십빌리지>를 조성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메타버스는앞으로사람,정부,기업과전체사회가글로벌문제를함께해결하기위해생각하고,일하고,상호작용하고의사소통하는방식에영향을미칠것>이라고 말했다. 다보스포럼은 정부·학계·시민사회전문가·기술등기타분야선도기업 60곳이상을 모아 메타버스를 정의하고 구축하기 위한 <새로운이니셔티브>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메타버스가 인류를 통제하고 사고를 조작하며 인간성을 말살시키는데 악용될수 있다는것은 이미 여러차례 경고됐다. 2021.8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싱크론은 미FDA(식품의약국)로부터 뇌인터페이스임플란드 <스탠트로드>에 대한 인간대상임상실험승인을 받았다. 이는 뇌에 칩을 이식해 컴퓨터와 연결하는 실험이다. 싱크론은 2022.5 신체마비환자의 뇌에 칩을 이식해 생각만으로 컴퓨터를 제어하게 하는 임상실험을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일론머스크가 세운 경쟁사 뉴럴링크보다 앞서 인체임상시험을 하게 됐다는 점이 주목받고있다. 이실험에 성공하면 FDA승인을 통해 <뇌·컴퓨터인터페이스>제품상용화로 이어진다. 의학적으로 신체마비환자들에게 활용될수 있다는 기대와 함께 과학기술로 인간뇌를 누가 통제하는가에 대한 윤리적문제도 제기된다.
미온라인소비단체 섬오브어스는 <메타버스:유해한콘텐츠의또다른소굴>의 보고서에서 메타(페이스북)가 운영하는 가상세계 호라이즌월드가 성폭력·자극적콘텐츠·혐오발언등의 온상이 됐다고 주장했다. 호라이즌월드는 2021 미국·캐나다에서 18세이상 성인상대로 시작한 메타버스서비스로 VR(가상현실)기기가 있는 이용자가 응용프로그램을 실행해 상반신만 있는 아바타를 만들어 가상세계를 체험하는 프로그램이다. 한연구자는 호라이즌월드에 접속한지 1시간만에 파티가 열린 방으로 안내됐는데 다른 사용자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다른 연구자의 경우 호라이즌월드에서 다른 사용자가 본인아바타를 만지면 장착된 가상현실기기가 진동하는데 이로인해 성희롱을 당하는것과 같은 경험을 했다고도 언급했다. 2022.4에는 메타버스플랫폼 제페토에서 11명의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성착취물을 만든 30대남성이 통신매체이용음란죄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현행법상 아바타에 대한 강간·강제추행·공연음란·스토킹등의 사례는 법적처벌이 어려운 상황임에도 온라인내 성폭력비율은 급속도로 증가하고있으며 청소년들이 이같은 범죄에 완전히 노출돼있다.
십자군원정·흑사병의 충격과 공포가 르네상스라는 새시대로 이어지는 상황은 우연일수 있으나 현시기 코비드19·하이브리드전의 충격과 공포가 메타버스라는 <신세계질서>로 이어지는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국가독점자본주의·현대제국주의의 조종자인 딥스테이트가 중심이 돼 지배·착취하는 세계에서 벗어나 전세계민중들의 자주성이 실현돼야만 평화와 안전이 확고히 보장되고 첨단과학기술이 민중을 위해 쓰일수 있으며 민중을 위한 사상·문화가 꽃필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