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4 항쟁의기관차〉 〈모터사이클다이어리〉 마냐나

체게바라는 볼리비아에서 전사하며 전설이 됐다. 육체는 비록 그생명을 다했지만 그정신은 라틴을 넘어 세계에 퍼져 영원히 빛나고있다. 체가 혁명승리이후 계속 쿠바에 있었다면 그렇게는 안됐을것이다. 혁명승리에 안주하지않고 쿠바에서의 혁명의 불씨를 전라틴에 타번지게 하기 위해 새로운 무장투쟁에 나서며 최후의 순간까지 혁명적양심에 따라 최선을 다했기때문이다. 이는 혁명을 결심하고 투쟁에 나설때의 마음을 끝까지 견지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초지가 어떻게 형성됐는지를 보여주는데서 체의 일기장만큼 믿음직한 증언록은 없다. 

라틴에서도 상대적으로 발전된 아르헨티나에서 의사라는 안정된 전문직에 귀족의 약혼녀를 둔 체는 친구와 라틴을 여행하며 제국주의의 식민지아래 신음하는 민중의 삶을 목격한다. 과학적신념이 될 논쟁을 벌이고 청년다운 열정과 차분한 이성으로 혁명의 길, 형극의 길을 찾는다. 허리를 끊을듯한 천식의 고통을 안겨주는 강을 건너 생일날 나환자의 섬으로 나아가는 체의 모습은 모터사이클다이어리의 핵심이며 앞으로 전개될 혁명적 삶과 투쟁의 축도다. 민중을 믿고 민중에 의하는 참된 길, 승리의 길이다. 

체는 원칙이 강한 사람이다. 소련이 제시한 세브(코메콘)의 길은 제국주의의 식민지와는 다르지만 그렇다고 자주자립과는 거리가 멀었다. 카스트로는 널널한 <마냐나기풍>이 몸에 밴 라틴에서 자립경제를 건설하는것의 어려움을 잘 알고있었다. 쿠바혁명을 책임져야했던 카스트로와 혁명의 원칙을 견지하는 체사이의 견해차이는 체를 새로운 투쟁의 전장으로 추동한 동력중 하나가 됐다. 체의 북코리아방문도 한몫 했을것이다. 아프리카를 거친것은 위장차원이 크다. 체만이 아니라 쿠바의 정예군인들이 볼리비아에 혁명의 불씨를 지펴올리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 영화 <모터사이클다이어리>를 봤으면 영화 <체>도 봐야한다. 

혁명은 수입할수 없다, 혁명은 복사할수 없다. 맞다. 민족국가단위로 혁명이 진행되는 현시대에 죽으나 사나 스스로의 힘으로 혁명을 수행해야한다. 자주는 삶이고 승리며 의존은 죽음이고 패배다. 혁명의 주체역량을 키우고 그역할을 높이는 하나의 길뿐이다. 사회정치적자주성을 실현하는 과제도 자립공영을 이룩하는 과제도 모두 민중의 힘을 조직해 관철해야한다. 북이 쿠바와 달리 핵·미사일강국이 된 이유는 혁명세력과 근로민중이 하나가 돼 허리띠를 졸라매고 자주자립을 향해 헌신분투했기때문이다. 북에는 <마냐나기풍>이 없다. 북은 가장 권위있는 혁명소설 <불멸의역사>의 <운명>편에 체를 비중있게 형상화했다. 매우 이례적인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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