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 국공내전, 중원야전군소속 9중대중대장 구지디는 47명의 중대원을 이끌고 문하전투에 나선다. 연대장은 집결호가 울리기전까지 한사람도 후퇴하지말고 적에 맞서라고 명령한다. 중대원들중 일부는 집결호가 울렸다고 주장하지만 구지디는 전선에서 물러서지않고 마지막까지 싸운다. 중대원은 모두 몰살됐고 구지디만 살아남아 코리아전에 참전한다. 포병부대에 배속된 구지디는 강원도 횡성군에서 지뢰를 밟은 포대장을 구해준다. 대신 머리에 파편이 박혀 실명위기에 처한다. 전후 구지디는 성치않은 몸으로 실종처리된 중대원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사활을 건다. 1958겨울 문하지역저수지공사중 시신47구가 발견된다. 9중대원전원에게 해방훈장이 수여된다.
문하전투는 국공내전에서 가장 치열했던 전투중 하나다. 9중대가 해야할일은 국민당군의 진격속도를 늦춰 사단이 철수·반격할수 있는 시간을 버는것이었다. 미국이 지원한 최신무기·탱크로 무장한 국민당군에 낡은 포신과 장비로 맞서야하는 인민해방군에게 <집결호>는 희망의 소리다. <집결호>는 과연 울렸는가는 구지디가 생을 걸고 답을 찾아야했던 질문이다. <집결호>는 울리지않았고 중대원은 몰살됐지만 연대는 퇴각해 국공내전을 승리로 이끌수 있었다. 격전의 와중에 연대장의 판단이 틀리지않았기에 구지디는 <운명을나눠짊어졌을뿐>이라고 말하며 연대장을 용서한다. 해방훈장을 수여한뒤 울려퍼진 나팔소리는 9중대원들을 혁명열사로서 사람들 마음속에 불러일으킨다.
우여곡절을 딛고 발전한 새중국의 단면을 볼수 있다. 미국은 국공내전당시 국민당의 배후였고 공산당을 멸살하기 위해 국민당군에 대량살상무기를 지원했다. 코리아전당시 미군은 중국접경지역을 폭격했고 중국본토침략을 도발했다. 새중국은 해방과 혁명의 나날속에 미국의 공격과 훼방이 없었던 날이 없다. 미제탱크를 몰고 돌아치는 국민당군에 사실상 혈혈단신 맞서 승리를 쟁취해야했던 인민해방군이 코리아전당시 미군을 향해 포사격을 하며 중국의 장비·무력이 빠른 속도로 일신했다는것을 보여준다. 한편 교사출신으로 전쟁에 나가 오줌을 지렸던 나약한 병사가 구지디에 의해 정치지도원이 돼 마지막까지 용맹하게 싸운다. 군인의 견결한 사상과 강고한 의지가 전쟁승패를 결정한다.
해방과 통일은 아직 완성되지못했다. 영토완정을 위한 국공내전과 <항미원조보가위국>을 위한 코리아전참전은 완전한 해방과 통일을 위해 분투해온 중국민중의 역사다. 대만이 전쟁의 화점으로 전변된 현실은 중국당국과 미제침략세력간의 충돌은 피할수 없다는것을 보여준다. 영토완정을 핵심이익으로 하는 중공산당이 전쟁불사의 의지를 발휘하며 군인과 무력을 강화해오고 오늘날 단기전전략으로 대만전을 준비하고있다. 100여년에 걸친 제국주의의 간섭과 침략의 역사가 그끝을 향해 나아가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