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는 2004 노무현정권에서 처음으로 대통령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당시 열린우리당은 반발했지만 새천년민주당과 한나라당, 자유민주연합이 연합해 노무현의 <정치적중립성>을 이유로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다. 노무현은 2004.2 경인지역6개언론사와 가진 합동회견에서 <개헌저지선까지무너지면그뒤에어떤일이생길지는나도정말말씀드릴수가없다>고 발언하고 몇일뒤 방송기자클럽초청대통령기자회견에서 <총선에서열린우리당을압도적으로지지해줄것을기대한다>·<대통령이뭘잘해서열린우리당이표를얻을수만있다면합법적인모든것을다하고싶다>라고 발언했다. 이에 대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을 위반했다고 결론을 내리고 중립의무준수를 요청했으나 노무현은 납득할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결국 대통령탄핵소추안의결까지 갔으나 직후 총선에서 <대통령을지켜야한다>며 열린우리당이 152석으로 압승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5월 헌재(헌법재판소)에서 탄핵소추안이 기각됐다. 2007.12.19 대선투표가 끝난 오후7시경 한네티즌이 <이명박탄핵을위한범국민운동본부>라는 이름의 다음카페를 개설했는데 2일만에 회원수가 5000명을 넘었다. 범국본은 2008.2.1 정관을 제정하고 정식단체로 결성됐다. 이후 2007.12.22 이명박탄핵을 목표로 한 촛불집회를 개최했고 2008.4.26까지 꾸준히 집회를 열었다. 4.29 미국산소고기의 실태가 방영되면서 5.2 촛불집회에 1만5000명가량의 시민들이 참가하며 2008 광우병소고기촛불시위가 본격화됐다. 4.26 다음아고라에 이명박대통령탄핵소추를 위한 온라인서명운동인 <탄핵요구1000만명서명운동>이 올라왔다. 한달만인 5.26 130여만명이 서명했고 이듬해 노무현서거이후인 5.25 다시 주목을 끌며 150만명에 육박했다. 이명박대통령당선직후부터 대통령탄핵운동이 벌어졌다. 이미 이전부터 <BBK주가조작사건>으로 혐의를 받아왔고 대선과정에서 진실여부가 더욱 불거졌다. 검찰은 이명박의 혐의에 대해 무혐의라고 발표했다. 당선된후 2008.2 특검도 역시 관련된 혐의가 전혀 없다고 했다. 2020.10 다스자금횡령과 BBK주가조작으로 막대한 금융피해를 다중에게 입히고 삼성등에서 거액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이명박의 17년징역형이 확정됐다. 이전부터 범죄자였지만 대통령후보시기부터 당선자시기와 집권시기까지 검찰의 기소를 피했고 정권이 끝난뒤에야 처벌이 이뤄진것이다. 탄핵은 검찰의 기소가 아닌 <국민의대표>기관으로서 국회의 권한으로 할수 있는 방법이지만 이명박정권시기 실제 탄핵이 추진된적이 없다는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대리정권의 선거판은 항상 후보자들의 비리부패혐의폭로의 난투장이 돼왔다. 이로인한 정치혐오증은 지배세력이 의도하는것이기도 하다. 서로 비슷한 범죄자들이 후보자로 나와 다투다가 선거후에는 서로 죄를 덮어준다. 정치판이 그밥에 그나물인 이유다. 탄핵만으로는 그정치판을 완전히 일소하고 새로운 민중권력을 세울수 없다. 탄핵의 주체가 같은 정치권이기에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