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먼로주의>
2025.12.5 트럼프정부가 2기 첫NSS(국가안보전략)로 <신먼로주의>를 공식화했다. 도널드트럼프미대통령의 이름을 따 <돈로주의>라고도 불리는 신먼로주의를 통해 트럼프정부는 <수년간방치된서반구에서의우위회복>·<적대적외세가서반구자원을착취하고,서반구에서군사적영향력을행사하는것을용납하지않겠다>·<유럽갈등등에는개입을자제하고자국과서반구의이익에집중>을 내세웠다. 1기정부때 최우선전략지역이던 중국이 <서반구> 다음으로 밀렸다. 이에 대해 애틀랜틱카운슬싱크탱크 중국담당부국장은 <미중경쟁을가치충돌이아니라이익기반경쟁으로본다는점을분명히한것은미중경쟁을규정하는방식에서매우큰변화>·<NSS는중국의권위주의를언급조차하지않는다>고 분석했다. 뿐만아니라 신먼로주의에는 러시아에 대한 비판도 일절없다. 한편 <대만분쟁>억제를 위해 <제1도련선어디에서든침략을저지할수있는군대를구축할것>·<이는미단독으로할수없고,그래서도안된다>며 <동맹들이국방지출을늘리고,집단방어를위해훨씬더많은일을해야한다>며 <한국>·일본에 국방비증액을 압박하면서 인도태평양지역에 집중하지않겠다는것을 분명히 했다. 일련의 사실은 트럼프정부의 전략이 <인도태평양전략>에서 신먼로주의로 바뀌었다는것을 보여준다.
트럼프의 전략은 19~20세기 미국가정책의 21세기버전이다. <먼로주의>는 1823 제임스먼로대통령이 의회연두교서에서 유럽·신대륙의 상호불가침을 주장하며 등장했다. 유럽이 아메리카대륙에 식민지를 만들지말고 신생독립국에 간섭하지말것, 대신 미국은 유럽보유기존식민지를 포함해 유럽에 관심을 두지않겠다는 고립주의선언이었다. 1897 집권한 윌리엄매킨리대통령은 1869 정계에 진출한뒤 보호무역주의를 강력히 주장하며 관세장벽을 세웠고, 1896 공화당대선후보로 지명돼 당선, 1898 미국·스페인전쟁을 치루며 쿠바를 <독립>시킨뒤 1899 전쟁을 종식했다. 이때 푸에르토리코를 국외영토로 하고 괌·필리핀을 식민지로 만들었으며, 하와이를 복속시켰다. 매킨리의 경제·군사정책은 먼로주의의 연장이다. 매킨리는 재선후 10개월만에 암살됐고, 정책은 부통령 시어도어루스벨트에게 계승됐다. 루스벨트는 파나마운하지대소유권을 강탈했고 <큰몽둥이정책>을 주창하며 라틴아메리카식민지화를 본격화했다. 트럼프의 신먼로주의는 이같은 역사적배경을 가지고 등장했다.
2025.8 트럼프정부는 베네수엘라를 <마약범죄국>, 니콜라스마두로베네수엘라대통령을 <마약카르텔두목>으로 모략하면서 마두로정보제공자에 대한 상금으로 5000만달러를 내걸었다. 8월중순부터 카리브해에 강습함·상륙함등 해상무력과 1만5000미군을 배치한뒤 민간선박을 <마약운반선>으로 음해하면서 2025.12까지 30여차례 공격해 100명 넘게 학살했다. <유니타스2025>·<서든스피어>를 비롯한 군사연습·작전을 끊임없이 전개하는 한편 베네수엘라에서 11㎞ 떨어진 트리니다드토바고를 <떠있는항공모함>으로 삼으면서 대베네수엘라침략전쟁을 준비했다. 다른한편 미국은 베네수엘라를 마약범죄국으로 만들기 위해 <가짜깃발>작전을 여러번 벌였다. 9월 베네수엘라군대가 적발한 불법선박에는 코카인3680kg·연료2400L등이 실려있었고, 불법마약·연료거래를 하던 4명중 1명은 미DEA(마약단속국)요원이었다. 10월 미CIA(중앙정보국)는 <용병집단>을 꾸리고 카라카스광장공격·옛미대사관공격·자체공격작전들을 시도했으나 베네수엘라당국에 적발·저지됐다. 베네수엘라당국은 미국이 트리니다드토바고와 베네수엘라에서 가짜깃발작전을 계획한 사실을 폭로하면서, 1898 미·스페인전쟁의 신호탄이던 <메인>호사건과 1964 통킹만사건을 예로 들었다.
미제국주의의 라틴아메리카<마당>화
미국은 먼로주의에 따라 유럽을 상대로는 고립주의, 아메리카대륙내에서는 패권주의·팽창주의를 시행했다. 1846~48 미국·멕시코전쟁의 결과 미국은 텍사스·캘리포니아를 병합하며 제국주의국가로 완전히 발돋움했다. 약300년간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멕시코의 국력이 약한틈에 1835 텍사스미정착민들의 자치권요구반란에 따른 <텍사스독립전쟁>이 발발, 반란군은 멕시코정부에 의해 진압되고 미국인포로365명이 모조리 학살되는 <골리아드학살>사건이 발생한다. 1836 텍사스공화국은 완전독립을 선언한뒤 1845 미의회에서 텍사스합병안이 통과되며 미국의 28번째주로 편입된다. 미·멕시코간 본격적충돌은 캘리포니아에서 벌어졌다. 미국의 텍사스합병이후 국경선문제를 놓고 갈등이 발생했는데 양측이 주장한 국경선차이는 무려 240㎞였다. 미는 서부로의 영토확장을 준비하고있었다. 미대통령 제임스포크는 텍사스지역으로 미군을 진군시켜 멕시코를 압박했고 1846 리오그란데강근처에서 멕시코가 선제공격했다고 주장하며 전쟁을 선포, 미국·멕시코전쟁이 발발한다. 전쟁중이던 6.14 캘리포니아미정착민들은 <캘리포니아공화국>을 선포, 25일뒤 미국에 병합됐다.
미제국주의가 스페인제국주의를 구축해 라틴아메리카전체를 지배하기 위해 조작한 사건이 메인호폭발사건이다. 1898.2 쿠바 아바나항에 정박중이던 미전함 메인호가 폭발해 미군266명이 사망했다. 3년전인 1895부터 쿠바독립운동세력은 스페인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항전을 전개했고, 스페인이 이들을 겨냥해 진압작전·대량학살을 벌이던 와중에 메인호가 폭발했다. 미황색언론들은 사실관계와 상관없이 스페인이 메인호를 침몰시켰다고 몰아가며 <군사적대응>을 주문했다. 미해군은 <배밑에설치된기뢰의폭발만이그만한파괴를초래할수있다>는 보고서를 제출하며 다른전문가들이 제기한 사고가능성을 무시했다. 3.29 미의회에 보고서가 제출, 4.25 이를 근거로 스페인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메인호를기억하라>구호를 들었다. 메인호폭발원인은 정확히 규명되지않았고 미국의 스페인과의 전쟁을 위한 자작극가능성도 제기됐지만 1975 미국조사에서는 폭발원인이 석탄연소에 의한 내부적인것이라고 정리했다.
20세기 들어 미국의 라틴아메리카침략·지배는 더욱 본격화됐다. 1904 루스벨트는 <큰몽둥이정책>을 내세우고 스스로를 <경찰>로 선언하며 <안정화>를 위한 군사·정치적개입을 정당화했다. 1906~09 쿠바를 여러차례 점령했고, 앞서 1901에는 미국이 쿠바독립을 인정하는 대신 쿠바헌법에 <플랫수정안>을 넣으라고 강요했다. 이를 통해 쿠바에 대한 내정간섭권한을 규정하고 관타나모를 영구조차하면서 쿠바를 사실상 미국의 보호국으로 만들었다. 이같은 내용은 1903 미국·쿠바관계조약으로 공식화됐다. 1903 미국은 파나마가 콜롬비아로부터 분리돼 운하를 장악하도록 지원했고, 같은해 헤이·뷔노·바리야조약체결로 파나마운하건설·운영권을 확보하며 지배권을 행사, 1914 운하개통후 근1세기동안 파나마운하지배권을 가졌다. 1910년대부터 아이티·도미니카공화국·니카라과를 점령·개입했으며, 이후 반제진보세력을 억압·말살하기 위한 군사쿠데타·비밀작전등을 벌였다. 일례로 미CIA는 과테말라에 1954 <PBSuccess>작전을 전개해 미국기업<유나이티드푸르트컴퍼니>에 불리하게 토지개혁을 한 하코보아르벤스대통령을 쿠데타로 축출했고, 1964 브라질, 1973 칠레의 친미쿠데타를 배후조종했으며, 1970~80년대 라틴아메리카군사파쇼정권들의 진보세력탄압을 위한 국가테러인 <콘도르>작전을 기획했다. 먼로주의로부터 시작된 라틴아메리카마당화를 위한 책략은 작전수행과 정권전복시도들을 통해 현실화됐다.
정권전복을 위한 사건조작과 침략작전
1983 미국은 카리브해 작은 섬나라 그레나다를 침공했다. 로널드레이건미대통령은 <공산주의확산저지>·<소련쿠바연합의전초기지무력화>와 그레나다의 <질서회복>·<미국의대생보호> 명목으로 <긴급분노>작전을 개시했다.
그레나다에서 1969 모리스비숍이 결성에 참여한 인민의회운동과 공동체발전운동이 1973 사회운동·교육권쟁취·민중해방목표로 통합돼 신보석운동을 결성, 1979 무혈좌익봉기를 일으켜 인민혁명정부를 수립했고, 비숍은 총리로 취임했다. 피델카스트로·체게바라·다니엘오르테가등 라틴아메리카혁명세력의 영향을 받은 혁명정부는 그레나다에 인민평의회를 설립했다. 쿠바·소련이 새혁명정부를 지원하며 경제·물자원조를 제공했다. 혁명정부는 산업국유화·문맹퇴치·의무교육제도·현대화사업등을 실시했다.
미국의 그레나다혁명정부위협은 1980.6.19 폭탄테러, 1983.3 미해군의 그레나다영공침범등으로 감행됐다. 한편 1983.10 비숍등 지도부와 그지지자들이 납치·총살·학살을 당하는 <포트루퍼트>사건이 발생했다. 포트루퍼트사건은 당시지도부내에서의 권력다툼이 아닌 미국이 기획·공작한 사건이라는 합리적의혹이 제기된다. 실제 이사건을 빌미로 미국은 그레나다정부의 국제공항건설이 소련·쿠바합동군사기지라고 모략하며 1983.10.25 <갑작스런격노>작전을 개시, 비대칭적으로 침공했다. 그결과 미군19명사망·116명부상, 그레나다 군인45명사망·358명부상, 민간인최소24명사망, 쿠바군25명사망·59명부상·638명포로를 기록했다. 미국은 이작전을 <유혈사태없는작전>으로 포장했지만 민간인사망은 병원폭격에 의한것이었으며 포트루퍼트학살사건등으로 인해 그레나다 유족들과 민중들은 고통스러운 기억속에 살고있다. 미국은 그레나다에 대한 공작과 침공이 성공하자 그레나다의 혁명성과를 지우고 쿠바·소련등에서 파견된 활동가들을 추방하며 국제주의지원망을 완전해체했다. 더해 친미임시정부를 세워 진보세력을 숙청했다.
침공직후 수십개국정부가 반대의사를 표명했고 유엔안보리(안전보장이사회)에선 국제법위반규정결의안을 논의했으나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유엔총회에서는 미국의 침략을 그레나다의 독립·주권·영토보존에 대한 <노골적침해>로 규정하고, 이를 규탄하는 결의안을 108표로 통과시켰다. 미정보기관은 소련과 조선의 군사계획을 입증하는 문서를 발견했다고 주창했지만 이또한 조작이었다.
1990.1.3 파나마대통령 마누엘노리에가가 체포됐다. 1989.12 조지부시미정부는 노리에가정권전복을 위한 일명<정당한명분>작전을 개시했다. 군2만6000명을 투입한 이작전의 목표는 노리에가생포였고 본질적으로는 파나마에 대한 확고한 식민지화였다. 1903이후 파나마운하주변지역은 미군점령지였다. 1968 오마르토리호스장군 주도로 좌익쿠데타가 성공했고, 1977 토리호스·카터조약으로 2000까지 파나마운하통제권을 파나마에 반환할것을 결정했다. 이조약은 <중립조항>에 따라 파나마운하의 안보가 <위협받을경우> 미군사개입권리를 부여한 한계가 있었다. 이는 미국의 군사적개입을 합법화하는데 악용됐다. 한편 토리호스의 신임을 받던 노리에가에게 미CIA공작이 들어갔고 노리에가는 1986까지 미CIA로부터 32만달러이상 받았다. 1981 토리호스가 비행기폭발사고로 사망했는데 미비밀기관에서 일했던 존퍼킨스는 미국의 암살이라고 주장했다. 노리에가는 미국공작의 결과물로 대통령까지 됐지만 권력을 잡은뒤 <정치적독립>을 주장하면서 미국과의 관계가 깨지기 시작했고, 미국의 금수조치를 우회하기 위해 쿠바·니카라과와 은밀히 협력하면서 미국과 완전히 결별하게 됐다. 부시정부는 노리에가체포작전을 위해 <마약과의전쟁>명분을 내세우고 노리에가의 마약밀매연루사실을 부각하며 <마약독재자>로 낙인, 침공을 정당화했다. 침략결과 미군24명이 사망한 반면, 파나마측은 독립적인 조사위원회추산3000~4000명이 사망했다. 대부분 민간인이었다.
한편 1961 미국은 쿠바의 사회주의정권을 붕괴하고 재식민화를 위해 팔라야히론(피그스만)을 침공했다. 카스트로정권이 토지·설탕·정제시설을 사회화하기 시작하며 미국의 마당에서 벗어나자 미국은 경제제재·비밀작전·카스트로암살시도등을 공공연히 벌였고 미CIA는 <플로토>작전으로 팔라야히론을 침략했다. 작전에 동원된 지상군2506여단은 과테말라를 비롯한 여러기지에서 훈련받은 1500여명의 쿠바망명자·용병으로 구성됐다. 미B26폭격기를 쿠바공군마크로 도색해 1961.4.15 쿠바비행장을 공격하고 1대는 <탈주자>인척 플로리다에 착륙하는등, 미국의 조종하에 사건은 조작됐다. 카스트로의 명령하에 쿠바혁명공군조종사들은 미국의 주요보급선을 격침시키며 전투개시 몇시간만에 연료·탄약·통신을 차단, 72시간만에 2506여단소속병사 약1200명을 포로로 사로잡았다. 카스트로는 첫공습희생자장례식에서 <제국주의자들이우리를용서할수없는이유는우리가미국의코앞에서사회주의혁명을일으켰기때문이다>라고 선언했다. 이는 현재 베네수엘라가 겪고있는 미제국주의에 의한 공격과 마두로부부불법체포의 근본원인이기도 하다. 쿠바·그레나다·파나마에서의 작전들은 미제국주의에게 있어 라틴아메리카지배전략의 시작은 반미반제정권의 붕괴며 정치·경제적목적은 지역패권장악과 지정학적우위차지, 천연자원강탈에 있다는것을 보여준다.
베네수엘라에 대한 정치·경제적공격
2025.12.16 트럼프는 베네수엘라로 향하는 <제재대상>유조선에 대한 전면봉쇄를 명령하며 <베네수엘라는남미역사상최대규모의해군에완전히포위돼있다>고 압박했다. 19세기 시몬볼리바르를 중심으로 한 라틴아메리카민중들이 해방투쟁에 나선 이래 제국주의는 라틴아메리카식민지화를 위해 해상봉쇄등으로 끊임없이 위협해왔다. 19세기 스페인제국은 2차례에 걸쳐 베네수엘라해안에 해상봉쇄를 선포했다. 1810~23 스페인왕당파는 1·2공화국의 경제적압박을 위해 주요항구를 봉쇄했다. 특히 라과이라와 같은 핵심항구를 봉쇄하며 해방군에게 무기·증원군·보급품이 유입되는것을 가로막았다. 1821 볼리바르군대가 카라보보전투에서 승리하고 스페인군이 푸에르토카벨로요새에 포위되자 해방독립을 가로막기 위해 스페인당국은 베네수엘라해안을 봉쇄하려고했다. 이는 1823.11 푸에르토카벨로가 함락되면서 실패했다. 1829~30 그란콜롬비아가 해체된뒤 주권국가가 된 베네수엘라공화국을 포위공격하기 위해 스페인함대는 베네수엘라를 비롯한 여러국가상선들을 나포했다. 당시 국제적으로 고립되고 국력이 약화되던 스페인은 지상전을 감행할 엄두를 내지못한채 항복했다. 19세기말부터 시작된 베네수엘라내전상황속에서 베네수엘라당국이 외채상환을 중단했다는 명목상 이유로 1902~03 영국·독일·이탈리아등 유럽열강들과 미국은 베네수엘라의 요새를 포격하고 해군함정을 나포, 침몰시켰다.
미제국주의의 베네수엘라반제민중정권에 대한 정치·경제적공격은 2001부터 본격화됐고, 그과정에서 베네수엘라원유강탈을 위한 각종제재·봉쇄들이 감행됐다. 2001 우고차베스대통령이 볼리바르혁명과정에서 유기탄화수소법을 통과시켰다. 이법은 모든 석유·가스매장량에 대한 국가소유권을 주장하고 탐사·추출등의 활동은 국영기업에 맡기되 정제·판매등은 외국기업을 포함한 민간기업참여를 허용한다는 내용을 담고있다. 당초 베네수엘라는 1943·75에 법적으로 석유를 국유화했다. 그러다가 1990년대 신자유주의에 따라 상당부분 사영화됐다. 이시기 베네수엘라당국은 IMF(국제통화기금)가 부과한 긴축정책을 수용했는데, 1989~93 민주행동당 카를로스안드레스, 1994~99 기독민주당 라파엘칼데라는 각각 사민주의자, 보수주의자였으나 IMF신자유주의정책을 받아들이는데 차이가 없었다. 1999 집권한 차베스는 법적으로 국가가 석유산업, 특히 국가대외수입의 80%를 차지하는 석유수출을 다시 통제했다. 미석유회사들 엑손모빌·셰브론은 이에 반발하면서 부시정부(2001~09)에 차베스에 대한 조치를 취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이에 미국은 2002 차베스축출을 위한 쿠데타를 시도했다. 베네수엘라석유회사경영진·친미부패세력을 부추겨 파업을 일으키고 베네수엘라경제에 타격을 주려고했으나 베네수엘라노동자의 힘에 의해 분쇄됐다. 2013~14 차베스암살과 석유수출감소는 볼리바르혁명과정에서의 심각한 위협이었다. 마두로는 국정안정에 노력을 기했으나 2014.6 배럴당 약108달러였던 유가가 2015 50달러이하, 2016.1 30달러이하로 급격히 하락하며 심각한 도전에 직면했다. 한편 그전부터 제국주의와 친미극우는 베네수엘라를 상대로 한 혼합전쟁을 준비하고있었는데, 일례로 1998.12 차베스승리후 다음해까지 베네수엘라친미극우세력들은 나라의 재부를 마이애미로 대거 빼돌렸다. 쿠데타시도·석유파업사태동안 자본유출은 더욱 심화됐고, 베네수엘라의 통화안정성은 악화됐다. 이를 빌미로 제국주의세력은 2006 베네수엘라의 국제신용시장접근에 제재를 가했다. 차베스사후 혼합전쟁이 더욱 본격화됐는데, 통화공격·제재·물자부족·언론왜곡·NGO압력·법적공방등이 감행되며 국가역량을 약화시키고 사회의 결속력을 무너뜨리기 위한 다방면적공격이 벌어졌다. 미국은 2017.8 금융제재, 2018 제재추가로 결제시스템·무역채널을 마비시켰다. 트럼프1기정부때 용병공격·전력망파괴·가이아나와베네수엘라사이갈등조장·후안과이도<셀프대통령>등이 있었다. 2023.1.12 마두로는 연례회계보고서발표에서 미국이 2015이후 부과한 제재로 인해 베네수엘라가 석유부문에서 2320억달러 손실을 입었다, <형사제재로인한이러한외환부족은일반적인경우처럼원자재,소모품및자본재구매를위한투자를막아비석유경제활동유지에지장을초래했다>며 비석유경제에 미친 영향은 6420억달러에 달한다고 언급했다. 이어 미제국주의와 친미극우세력에 대해 <그들이우리나라에서벌여온전쟁,석유산업과경제를상대로벌여온전쟁의숨겨진얼굴,감춰진얼굴을드러낼것>·<그들은사회붕괴를조장하고외국개입을통한정권교체와쿠데타를위한조건을조성하려고했다>고 규탄했다.
날강도미국의 시트고약탈
2019.1 트럼프정부는 베네수엘라국영석유회사PDVSA자회사 시트고(CITGO)의 경영권을 베네수엘라극우반정부세력에게 넘겨줬다. 시트고는 미국내정유시설3곳·송유관6곳·주유소약4200곳을 보유한 120억달러규모의 기업이다. 이는 2018 베네수엘라대선이 부정선거로 치러졌다고 강변한 과이도의 셀프대통령선언을 미정부가 인정한것과 때를 같이한다. 시트고를 몰수하려는 공작은 과이도가짜정부의 부채를 236억달러까지 부풀려 상환불가능상태로 만들고, 채권자들의 재정난을 악화시켜 시트고를 소송으로 압류하는 방식으로 감행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과이도가짜정부가 시트고를 장악하기전까지 시트고는 과도한 부채를 지고있지않았다. 베네수엘라는 2019전까지 모든 채무관계를 성실히 이행하고있었다. 2024.1 미대법원이 시트고주식경매수익분배에 10개 채권자가 참여한다고 하자 베네수엘라당국은 <미국기관들이베네수엘라국민의자산을약탈하려는목적으로베네수엘라를상대로자행하는다방면적인침략행위의일환이며,국가간평화로운공존을규율하는규범을명백히위반한것>이라고 지적했다. 2025.6 미당국은 시트고의 <부채상환>명목으로 주식매각을 진행했고 채권단은 압류명령을 신청했다. 12.2 미델라웨어주지방법원은 시트고를 기업공개투자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계열사 앰버에너지에 59억달러에 매각하는것을 승인했다. 시트고는 기업가치120억달러에 훨씬 못미치는 금액에 강탈됐다. 베네수엘라국회는 특별임시회의에서 시트고불법매각을 만장일치로 규탄하고 이같은 약탈행위에 연루된 베네수엘라극우무리들의 시민권을 박탈하는 안건을 발의했으며 이사건에 책임이 있는 351명을 제재하기로 결의했다. 12.19 델시로드리게스부통령·석유부장관은 PDVSA본사가 위치한 카라카스 라캄피냐에서의 대규모집회에서 미정부가 시트고를 훔치고 약탈하며 2019부터 배당금을 불법적으로 지급하지않은것에 대해 350억달러이상의 배상금지급을 촉구했다.
해적질로 유조선불법나포
2025.12.10 트럼프는 백악관 라운드테이블행사에서 <우리는방금베네수엘라연안에서유조선1척을억류했다>·<억류한유조선중사상최대규모>라고 언급했다. 미법무장관 팸본디는 소셜미디어X에 <오늘연방수사국·국토안보부수사국·미해안경비대는전쟁부의지원을받아베네수엘라와이란에서제재대상석유를운송하는데사용된유조선에대한압류영장을집행했다>고 썼다. 이에 베네수엘라외교부는 성명을 통해 <이는이민문제도아니고,마약밀매도아니며,민주주의도아니고,인권문제도아니다.항상우리의천연자원,즉석유와에너지,오직베네수엘라국민에게만속한자산에관한것>이라며 <베네수엘라볼리바르공화국은노골적인절도이자국제적해적행위에해당하는이번사태를강력히규탄한다.베네수엘라는모든베네수엘라국민에게조국수호를위해굳건히서줄것을촉구하며,국제사회가압력과약탈의도구로악용하려는이번파괴적이고불법적인전례없는침략행위를거부할것을촉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두로는 <개인소유선박에대한해적행위>·<베네수엘라에서구입한190만배럴의석유를싣고있었다>라고 규탄했다. 특히 그(트럼프)는 2024 선거운동당시 베네수엘라석유를 아무런 대가없이 차지하는것이 항상 자신의 목표였다고 공개적으로 밝혔고, 이는 우리에 대한 침략정책이 우리의 에너지자원을 약탈하려는 고의적인 계획의 일부임을 분명히 하는것이라고 강조했다. 쿠바외교부는 해상공격을 해적행위이자 테러행위로 규정하고, 쿠바로 향하는 석유를 포함한 천연자원거래에 대한 베네수엘라의 권리를 방해하는것이라며 <경제적질식>정책을 강화한것이라고 분노했다. 쿠바환경부는 쿠바가 석유의 1/3을 베네수엘라에서 수입하고있고, 그대가로 주로 의사·교사등 전문인력을 베네수엘라에 제공하고있다고 언급했다.
미국이 불법나포한 <스키퍼>호는 쿠바를 거쳐 중국으로 향하던것이었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정부가중국행유조선을집중적으로나포하는행위를지속하면마두로정권에심각한경제적타격을줄수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이베네수엘라원유수출봉쇄조치를강화하면서베네수엘라로부터값싼원유를공급받아왔던쿠바에치명적결과를안길것>이라고 보도했다. 하루생산량 약100만배럴의 베네수엘라원유의 최대수입국은 중국이다. 트럼프가 2017 베네수엘라원유수입을 금지하고 자산을 동결시킨 이래 베네수엘라는 미국이 아닌 중국에 가장 많은 원유를 판매해왔다. 한편 미국의 유조선불법나포는 중국이 <3차라틴아메리카·카리브해정책문서>를 발표한 같은날 이뤄졌다. 이문서에선 카리브해·라틴아메리카에서 <패권주의와힘의정치에반대>, 재정·무역·에너지·인프라·제조업등 부문에서 각국과의 <전략적협력강화>·<중국이글로벌사우스국가들과의군사적교류·협력강화>를 중국의 <글로벌안보구상>과 연동할것을 선언했다. 12.20 미당국은 중국행 <센추리>유조선을 재차 불법나포하고 카리브해해상작전을 강화했다. 12.23 쑨레이주유엔중대표단부대표는 유엔안보리긴급회의에서 <미국이자행한조치는일방적강압행위>·<주권과항행의자유원칙에대한직접적도전>이라고 맹비난했다.
미국은 유조선불법나포와 베네수엘라봉쇄를 위해 2025.11 <제럴드포드>항모전단을 카리브해에 배치하고 11월말 모든 항공사에 베네수엘라상공·주변영공폐쇄를 강압한뒤 미군용기를 동원해 베네수엘라주변국제영공을 끊임없이 <순찰>하면서 위협해왔다. 1.3 베네수엘라침공·마두로부부납치이후 1.7 2달간 추적해온 러시아국적 <마리네라(벨라1)>호와 <M소피아>유조선을 나포했다. 마리네라호는 러법률·국제해상법상 합법적으로 러교통부로부터 허가를 받은뒤 러국기를 달고 항해했다. 그럼에도 1.6 미국은 북대서양상에서 마리네라호를 요격하려했고, P8A정찰기를 동원해 계속 추격했다. 1.8 러외무부측은 <미당국이외교부채널을포함한공식적경로를통해해당선박의러소유·민간선박신분에대한정확한정보를거듭입수했다>·<미당국은이에대해의심할여지가없었으며,유조선이무국적또는위장깃발을달고항해했다고주장할근거도없었다>며 규탄했다. 그러면서 <이번나포는워싱턴이베네수엘라의천연자원에대한무제한적인통제권을확립하려는광범위한전략의일환>이라며 신식민주의적행태를 단호히 거부한다고 언급했다. 제국주의미국은 1.9·15·20에도 유조선들을 불법나포하면서 베네수엘라원유를 탈취했다. 2025.12 2척의 유조선에 실린 원유는 약400만배럴이었다. 트럼프가 강변한 <유조선1척당약110만배럴원유확보>의 기준을 적용해도 트럼프정부가 불법나포로 확보한 원유는 최소770만배럴이다. 트럼프는 이원유들을 직접 매각하겠다며 강도적본색을 노골화했다.
미국의 대쿠바고립압살
1898 미·스페인전쟁이후 쿠바를 사실상 식민지화한 미국은 1900년대 들어 관타나모베이해군기지를 영구임차하고 1920년대까지 친미대리정권을 유지하며 해방투쟁을 억압하기 위한 상시적인 군사개입을 감행했다. 1959 쿠바혁명승리후 1961.4 히론전투, 1962.10 쿠바미사일위기가 있었으며 1960년대 CIA는 작전명<몽구스>, 대규모비밀공작을 통해 카스트로암살시도·쿠바내부시설파괴·농작물오염등 수백건의 파괴활동을 벌였다. 전쿠바정보국장 파비안에스칼란테는 카스트로 생전에 CIA의 암살시도가 638회나 됐다고 공개했다.
1970~80년대 <냉전>시기 쿠바는 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혁명세력을 지원했고 미국은 이를 차단하는 방식으로도 대쿠바책동을 전개했다. 1975~91 앙골라내전에 쿠바는 앙골라사회주의정권방조를 위해 수만명의 전투병력을 파견했고 미국은 앙골라반군을 군사적으로 지원하면서 양국군대가 제3국에서 대규모로 맞붙었다. 1977~87 에티오피아·소말리아전에서 쿠바는 에티오피아를, 미국은 소말리아를 각각 지원했다. 1983 그레나다침공당시 쿠바군 수십명이 사망하고 포로로 잡혔으며 1996.2 쿠바출신친미용병으로 구성된 <형제들의구조대>소속 경비행기들이 쿠바영공을 침범해 쿠바가 격추했다. 이렇듯 미국과 친미극우에 의한 도전은 계속됐다.
1970~80년대 대표적인 미국의 테러·비밀공작은 1976 CIA연계 극우세력이 일으킨 쿠바항공기폭파사건이다. 73명이 학살된 이사건을 두고 쿠바정부는 미국의 군사적테러공작으로 규정했다. 1981 쿠바내 확산된 뎅기열을 쿠바당국은 미국의 비밀생물전공작으로 봤다. 2010년대초 <자아네트>공작은 <색깔혁명>배후조종미정부기구 USAID(국제개발처)가 쿠바내 폭동유도를 위해 <쿠바판트위터>를 비밀리에 운영하다가 적발된 사례다. 쿠바는 이를 <소프트파워를이용한군사전복시도>로 간주했다.
미국의 대쿠바경제봉쇄는 1958 시작됐다. 주요경제제재법안은 1958.3 무기금수조치, 1960.10 부분무역금수조치, 1962.2 포괄적무역금수조치, 1963.7 쿠바자산통제규정, 1992 <쿠바민주화>법, 1996.3 헬름스·버턴법, 2000.10 무역제재개혁수출증진등이 있다. 2015부터 오바마정부는 쿠바와의 <관계정상화>를 위한 제재완화를 단계적으로 추진하며 테러지원국명단제외·일부품목수입허용등을 시도했고 인터넷·통신제재를 해제하며 구글등 미기업의 쿠바내서비스제공허용·인터넷통신사업참여허용·여행및송금제한완화등을 추진했다. <완화>흐름은 실상 2010직전부터 본격화된 USAID의 쿠바내 반혁명세력육성과 관련된다. 미CIA지원하에 <색깔혁명의씨앗을뿌린<혁명수출>그룹>이라 불리는 <작전그룹>이 쿠바랩그룹과 접촉했고 USAID는 2018부터 본격적으로 반정부미디어장치를 구축하면서 쿠바청년들에 대한 사상문화적침투를 가속화했다. USAID로부터 2020에만 14만5230만달러를 받은 <전쟁및평화보고연구소>가 기획한 여러매체들이 쿠바정부를 헐뜯고 쿠바를 <공산주의지옥>으로 매도했다. 이를 배경으로 2021.7.11 대규모반정부시위가 전개됐고 7.20 미하원외교위원 쿠바관련의회청문회에서는 <산이스트로운동>이 쿠바정부전복시도의 중추적역할을 담당하고있다고 언급했다. 조바이든미<대통령>이 트럼프집권직전 2025.1 쿠바의 테러지원국(SSOT)지정을 해제하는등 겉으로는 <유화>적으로 나왔으나 실제론 2024.7.11 미국무부가 2021.7.11 쿠바반정부시위를 <기념>하며 반사회주의정권전복시도를 정당화하면서 반쿠바의식을 숨기지않았다.
트럼프정부의 대쿠바정책
2025.1 트럼프는 집권직후 바이든<정부>의 쿠바테러지원국지정해제를 폐기했다. 트럼프는 바이든이 1.14 발표한 국가안보정책지침5(NSPM5)폐지대통령각서를 철회했고 2.5 미국무부는 쿠바제한대상공무원명단을 재발표했으며 3.10 효력발생의 개정된 명단에는 쿠바국영기업 오르빗이 추가됐다. 오르빗은 쿠바로의 송금을 담당해온 기업이다. 2025.1 쿠바계 마르코루비오국무장관후보자는 인준청문회에서 쿠바가 테러지원국지정기준을 충족한다면서 그이유로 콜롬비아<불법무장단체>지원, 하마스·헤즈볼라·이란과의 연계등을 내세웠다. 2025.6.30 트럼프는 대쿠바제재를 강화하는 국가안보대통령각서에 서명했다. 각서에는 미국인의 쿠바관광법적금지내용이 담겼다. 또 국무부에 쿠바군, 정보·안보관련기관연계조직에 대한 <블랙리스트>작성·발표를 지시했다. <쿠바금지인사>목록에 지방의원·노조간부·국영언론사편집장·쿠바혁명수호위원회지역부문책임자등을 추가했다. 이들은 미국인과의 사업, 송금, 미입국비자발급이 금지됐다. 특히 이른바<쿠바군부와연계된> 국영회사 가에사, 그계열사와의 직간접금융거래가 금지됐다. 각서에는 쿠바에 대한 경제제재를 지지하며 유엔등 국제사회의 제재해제요구를 반대한다는 내용이 명시됐다. 이에 대해 미정치매체 폴리티코는 <트럼프의쿠바에대한강경정책강화는쿠바망명자커뮤니티에대한제스처>·<이커뮤니티는대체로이번대선에서트럼프를지지했고,미국이쿠바공산주의정부를축출하는데도움을주기를원한다>고 분석했다.
8월에는 미국이 쿠바의 해외의사파견프로그램과 연관된 브라질·아프리카·카리브해국가들의 비자를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쿠바미국담당부국장은 <의료협력은계속될것>이라며 <(루비오의)우선순위는많은것을말해준다.팔레스타인에대한이스라엘의대량학살에자금을지원하고,쿠바를고문하고,도움이필요한사람들을위한의료서비스를빼앗으려고한다.>고 맹비난했다.
쿠바의 2025유엔보고서에 따르면 2024.3.1~2025.2.28 금수조치로 인한 피해액은 75억5600만달러로 추산된다. 이는 전년대비 49%증가한것으로, 월평균 약6억3000만달러에 해당한다. 손실의 대부분은 수출감소에 따른 26억800만달러, 우회이동에 의한 25억7000만달러며 그외 농업·에너지·건설·교육·산업등 여러부문에서 큰 타격을 입었다. 2025.10.28 유엔총회에서 대쿠바금수조치해제촉구결의안이 채택됐다. 193개 회원국중 찬성165·반대7(미국·아르헨티나·헝가리·이스라엘·북마케도니아·파라과이·우크라이나)·기권12로 <미국이쿠바에부과한경제,상업및금융금수조치를종료할필요성>결의안(문서A/80/L.6)이 채택됐다. 2024에도 동일한 연례결의안이 채택된바 있다. 결의안주제토론에서 미국대표는 쿠바가 <미국의적들과공모하고협력한다>고 모략했으나 브루노로드리게스쿠바외무장관은 <L.6>초안을 소개하며 미국의 <범죄적정책>으로 인해 쿠바는 식량·의료에 필수적인 자금·기술접근이 <잔혹하게차단>됐으며 그결과 신생아1000명당 5명미만이던 영아사망률이 2025상반기 8.5명에 달한다고 격분했다. 미국의 <쿠바테러지원국>지정이 불공정하다며 은행·무역·투자를 저해하는 동시에 <미영토에서쿠바에대한테러행위가조직되고자금이지원돼왔고지금도그러한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보고서를 통해 2025.11 미국의 카리브해군사력증강에 대해 <이지역의마약밀매단속작전이훨씬더광범위한전략적목표를은폐하고있다>며 마두로를 축출하고 나아가 베네수엘라산석유공급을 차단해 쿠바를 압박하려는것이라고 꼬집었다. 백악관이 카리브해에서의 작전을 <마약퇴치노력의강화>로 규정하지만 이번 캠페인의 정치적논리가 마약문제에만 국한되지않는다며 <마두로를제거하면미국이카라카스와아바나사이의생명줄을끊고쿠바국가전복이라는공화당의오랜목표를가속화하는정책을펼칠수있게된다>고 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베네수엘라가 쿠바에 한창때는 하루10만배럴이상 수출했지만 2024에는 하루3만2000배럴까지 감소했고 2025 더 줄어든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군사적공격행위는 해당지역의 정치·전략적방향을 중국등 다른파트너국가들로 빠르게 전환시킬것이며 마약단속·기타안보과제수행에 필요한 각국정부와의 협력을 저해할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루비오의 쿠바혁명을 되돌리겠다는 야망에 의해 미정책입안자들이 움직이면서 마두로정권의 지속성과 쿠바정치질서의 회복력을 모두 잘못 판단했다며 석유공급차단이 쿠바의 급속한 붕괴를 촉발할 가능성은 낮다고 전망했다. 한편 2025.12 보도에 따르면 1~11월 베네수엘라는 쿠바에 하루평균2만7000배럴의 원유·연료를 수출했다. 이는 쿠바석유부족량의 약50%, 섬전체수요의 약1/4을 충당한다. 12.10 미국의 쿠바행유조선나포로 인해 쿠바에너지공급에 큰 타격이 가해진 가운데 쿠바에너지인프라관련연구자는 <멕시코석유수출량이줄고러시아의대량공급도실현되지않는지금,다른대안이보지않는다>·<상황이어렵고앞으로더어려워질것>이라고 비관했다.
혁명수호를 결의하는 쿠바
2025.12.18 쿠바혁명67주년을 맞아 10차민중권력전국회의6차정기회의가 진행됐다. 쿠바공산당중앙위1서기·공화국대통령 미겔디아스카넬은 연설을 통해 쿠바에 직면한 복잡한 상황과 라틴아메리카·카리브해지역에 드리워진 위험·위협에 맞서기 위한 필수적과제들을 논의·승인했다고 언급하면서 현재의 위기는 왜곡·역경·어려움·우리자신의실수들이 누적된 결과며, 극도로 공격적인 외부봉쇄로 더욱 악화되고있다고 짚었다. 특히 트럼프정부가 먼로주의를 왜곡해 해석한 내용과 최근 발표된 미국가안보전략은 미국의 패권주의적야욕을 명백히 드러내고있으며, 2014부터 확고하고 공식적으로 선포된 평화지대로서의 카리브해지역을 무시하고 위태롭게 하고있다고 짚었다. 미국이 저지른 약100건의 <초법적처형>과 미전투기의 베네수엘라영공침범유도, 워싱턴이 선택한 정부를 세우려는 시도등의 모든 행위는 국제법에 위배된다고 구체적으로 열거했다. 더해 쿠바에 대한 끊임없는 경제적공격에 대해 인플레이션조장·구매력하락등의 목적으로 자행하는 직간접적행위와 쿠바민중들을 겨냥한 정치사상적침투에 따른 쿠바혁명지도부와 민중들과의 신뢰약화조장을 짚었다. 한편 2025는 쿠바가 브릭스(BRICS)의 파트너국가로 가입한 해로, 글로벌사우스국가들사이 쿠바혁명의 역할과 리더십을 인정받은 해며 그외 여러연대운동과 세계여러지역과의 연계확대, 상업적관계·투자기회확대를 위한 외교정책추진등을 성과로 짚었다.
현경제위기에 대해 <위기의심각성을인정하고현실을미화하지않으며,동시에사회정의와국가주권을수호하기위해필요한모든변화를추진하겠다는정치적의지를재확인해야한다>며 생산활동에서 관료주의적장애물들을 혁신할것을 지적했다. 경제적으로 에너지취약성을 줄이고 연료수입의존도를 낮추며, 식량·에너지·기초산업분야에서의 생산능력회복, 임금·연금의 구매력손실을 막을것, 대외수입유지·다변화, 가장취약한부문보호등을 강조하고 자결권·주권·민족독립에 반하는것외의 모든 계획을 적극적으로, 두려움없이 추진할것을 결의했다. 정치적으로는 소통·경청·설명·구체적제안수렴등을 공공정책에 반영함으로써 각의원과 지역구간 유대강화와 관료주의·부패·낭비·자원횡령·국민문제에대한무관심에 맞서싸울것, 단결강화, 책임감있는 토론·참여를 통한 합의를 단결의 목표로 삼을것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누구도우리를꺾을수없을것>·<2026우리가착수하는모든과제,가장복잡한경제변혁에서부터가장단순한연대행위에이르기까지,피델카스트로의투쟁정신,민중에대한깊은사랑,그리고사회정의에대한확고한헌신으로가득차기를바란다>고 긍지높게 말했다. 끝으로 <자유쿠바만세!>·<혁명만세!>·<피델과라울만세!>·<사회주의아니면죽음!>·<조국이냐죽음이냐!>·<우리는극복할것이다!>구호를 외치며 연설을 마무리했다.
1.5 쿠바정부는 제국주의미국의 마두로부부납치·불법체포에 맞서 싸운 쿠바군32명이 전사했다며 1.5~6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했다. 이군인들은 쿠바혁명군·내무부를 대표해 군인침투·군사시설폭격에 맞서 임무를 수행했다. 쿠바정부는 이들의 죽음을 국가테러의 희생자로 규정하고 영웅적행동을 기렸다. 덧붙여 이군인들은 용병·점령군이 아니라 쿠바가 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기타지역에 유지해온 국제주의적협력의 틀안에서 합법적인 양자협정에 따라 배치된 인력이라고 강조했다.
1.8 트럼프는 한인터뷰에서 쿠바를 겨냥해 <벼랑끝에서있다>·<아바나에대한압박은계속될것>이라고 위협했다. 다음날 쿠바외무장관은 <미국은주권국가의권리에자국의의지를강요하려하고있으며,67년동안쿠바에대해무력과침략을자행해왔다>며 <(미국은)막대한군사력과엄청난경제규모,그리고광범위한침략과범죄의역사>를 내세우지만 <(쿠바는)국제법과국민의애국심>에 의해 뒷받침된다, <우리는쿠바를지킬것>을 확고히 말했다.
세계는 지금 베네수엘라가 무너지면 다음은 쿠바, 그다음은 중미·남미로 전쟁이 확대될것으로 보며 현사태를 예의주시하고있다. 실제 트럼프는 미국의 10개정부들이 진압하지못한 쿠바혁명에 대한 최대압박을 강화하겠다고 위협하면서 <그곳에직접들어가초토화시키는것외에는그들에게더이상의압력을가할방법이없다>고 침략흉계를 노골화하고있다. 이에 맞선 쿠바의 유일한 답변은 반제반미항전이다.
조작사건으로 시작한 미국의 베트남침공
1964 미국은 통킹(박보)만사건을 조작하고 북베트남·라오스를 폭격하기 시작했다. 1960.12.20 결성된 NLF(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는 1960.1 2차인도차이나전쟁이 터지자 전쟁1기간(1960~64)동안 미군·친미파쇼권력의 강제집단이주정책인 <전략촌>건설에 대항해 1962말기준 남부1만7000개촌락중 4400개해방, 9000개촌락행정기구무력화에 성공했고 1963말 전략촌의 80%를 파괴, 정부군8만명을 살상했다. 1964.8초 린든존슨미대통령과 로버트맥나마라국방장관은 미국민에게 북베트남어뢰정이 미구축함<매덕스>를 <국제해역에서정기순찰중이유없이>공격했다고 주장했다. CIA가 북베트남해안시설공격의 비밀작전을 수행하고있었기에 <이유없는공격>이라는 말자체가 성립되지않았다. 매덕스함은 특수전자정찰임무를 수행중이었고, 국제해역이 아닌 베트남영해를 침범하고있었다. 무엇보다 매덕스함에는 어뢰에 공격받은 흔적이 없는것으로 밝혀졌다. 2일뒤 다른구축함에 대한 공격이 있었다고 했는데, 이또한 날조된것이었다. 실제 1971 뉴욕타임스가 입수·폭로한 <팬타곤문서>를 통해 통킹만사건이 조작사건임이 확인됐다. 1965 20만명이 넘는 미군이 남베트남에 투입됐고, 1년뒤 20만명이 더 추가됐다. 1968 주둔미군이 50만명을 넘었고 미공군은 역사상 유례없이 많은 폭탄을 투하했다. 무차별폭격은 민간인학살로 이어져 1965.6 뉴욕타임스는 <공산군>이 베트남 꽝가이에서 철수하자 산들을 폭격해 최대500명이 사망했고, 미국은 <베트콩병사>라고 주장했지만 이후 베트남병원에서 네이팜탄화상치료를 받은 환자 4명중 3명이 마을여성이었다고 보도했다. 전쟁기간 미군은 엄폐물이 된다며 밀림지대초토화를 위해 고엽제7200만L를 공중에서 살포하는식의 생화학전·세균전도 동시에 벌였다.
1965~68 전쟁2기 남베트남해방구를 중심으로 NLF위원회·인민자치위원회가 설립돼 토지개혁등 각종개혁을 실시했고 <호치민루트>를 통해 물자들을 유입받으며 총반격을 준비했다. 1968.1~2 구정(테트)공세를 실시했다. 미군·친미주구군대의 반격으로 4만여명이 죽고 30만명이 잡혔지만 NLF의 전력은 약화되지않았다.
1969~72 전쟁3기 미군이 캄보디아·라오스까지 침공하면서 전선을 넓혔다. 1971 미군은 라오스·캄보디아·베트남에 80만t폭탄을 투하했다. 1972.7 헨리키신저미국무장관, 베트민지도자 레득토의 교섭이 시작된후 12월에만 미국은 4만t의 폭탄을 투하하며 무려 1218명을 학살했다. 전쟁전기간 총700만t의 폭탄이 투하됐다. 한편 전쟁기간 CIA는 <피닉스>작전에 따라 공산주의지하조직원으로 <의심>되는 남베트남민간인 최소2만명을 재판 없이 비밀리에 처형했다. 베트남민중의 무장항전과 전세계민중의 반전반미시위가 더욱 가열하게 전개됐다. 1968초 미국민들은 전쟁에 승리하지못하고 미군병사4만명이 사망했으며 25만명이 부상당한것, 전쟁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않는다는것에 분노하면서 대규모반전시위에 나섰다. 1968봄 존슨은 대통령재선불출마선언을 하고 베트남과의 평화협상을 파리에서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1968가을 리처드닉슨은 미군철수공약으로 대통령에 당선됐고 1972.2 베트남내 미군12만명을 제외하고 철수했으나 이는 베트남전을 대리전으로 계속 전개하려는 술책이었다. 미국의 자금·공군력을 지원받은 사이공정부가 전쟁을 계속 수행하도록 하려던것이었으나 기울어진 전세는 바꿀수 없었다.
1973.1 워싱턴·하노이동시성명으로 <베트남전쟁종결과평화회복에관한협정>·4개의정서·3가지각서전문이 공표됐다. 1973.10 베트남노동당21회중앙위총회는 혁명전쟁을 계속할 방침을 채택, 12월 베트남노동당정치국은 남부에 총공격을 결정, 1975.3 북베트남정규군의 총공격이 시작됐다. 4.30 2차인도차이나전쟁이 종식됐고 1976.7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이 결성됐다.
미국의 대베트남제재
제국주의미국은 1975 베트남전종식직후 1990년대초반까지 베트남에 대한 전면적경제봉쇄·제재를 가했다. 1975 미국은 적성국교역법을 적용해 베트남전역에 전면적무역금지를 실시, 미국시민과 기업의 베트남내 상거래·자금이체·기술수출을 전면차단했다. 그결과 미국내 있던 약7000만달러규모 베트남자산이 <동결>됐고 미금융기관을 통한 어떠한 형태의 차관·신용공여도 금지됐다. 수출통제·기술봉쇄는 가장 엄격한 <그룹Z(제한국가)>등급으로 분류돼 미국산부품이 들어간 제3국제품수출까지 엄격히 제한받았다.
베트남을 고립시키는데 국제기구·동맹국이 동원됐다. IMF·WB(세계은행)·ADB(아시아개발은행)의 최대주주지위를 이용해 베트남에 대한 신규차관·원조를 조직적으로 저지했고 일본·중국·아세안(ASEAN)국가들을 동원해 외교·경제적으로 고립시켰다. 이는 1978 베트남·캄보디아전쟁후 더 심화됐다. 이시기 대베트남경제봉쇄는 현대사에서 가장 강력하고 포괄적인 제재중 하나로 평가된다. 베트남민중들은 전쟁후과와 제재·봉쇄를 <2중고통>으로 불렀다. 1994 들어 제재는 점차 완화됐다. 1994 빌클린턴대통령은 미군실종자문제에 대한 베트남의 협조를 근거로 무역금수조치전면해제를 실시했고 1995 베트남·미국간 공식외교관계가 수립됐다.
트럼프1기정부는 2020~21 베트남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고 베트남산목재등에 대해 불공정무역관행조사를 실시하며 관세부과를 위협했다. 2024~25 비시장경제지위가 유지됐다. 베트남정부는 <시장경제지위>인정을 요구해왔으나 미상무부는 2024.8 이를 최종 거부했고 2025까지 이지위가 유지되면서 베트남산수출품은 미국내 반덤핑조사시 더 높은 관세율을 적용받는 불이익을 계속 겪고있다. 뿐만아니라 미국은 <위구르강제노동방지법>등을 통해 베트남을 <강제노동국>·<인권유린국>으로 매도하고있다. 특히 베트남의 의류·태양광패널사업이 중국산원자재를 우회사용하는 통로로 지목되면서 수입보류·정밀조사가 강화되는등 경제제재가 대중국봉쇄정책의 일환으로도 감행되고있다. 트럼프정부는 다낭공항등의 고엽제정화비용지원을 일시적으로 중단하면서 전쟁유산지원금지급을 정치적으로 악용하고있다. 군사적으로 2010년대~현재 미군은 남중국해에서 <항행의자유>작전을 여러차례 벌이면서 중국과 함께 베트남의 해상활동도 감시·압박하고있다. 2016 <살상무기수출금지전면해제>전까지 베트남에 대한 첨단군사기술·무기이전을 엄격히 제한하며 베트남의 군현대화를 장기간 지연시키기도 했다.
대조선사건조작과 고립압살책동
코리아반도와 라틴아메리카의 운명이 연결돼있다는것을 보여준 단적인 사례가 1962 쿠바미사일위기(카리브해위기)와 1968 <푸에블로>호나포사건이다. 1959 쿠바혁명승리후 제국주의미국은 쿠바미사일위기를 통해 쿠바·카리브해를 소련과의 대결전, <냉전>대결장으로 전락시켰다. 김일성주석은 쿠바미사일위기를 계기로 1962.12 경제국방건설병진노선을 채택했으며 이를 위해 인민경제개발7개년계획을 3년연장했다. 1963.2 대덕산초소를 찾아 인민군대내 <일당백>구호를 제시했고 군의 간부화·현대화, 전민무장화·전국요새화를 4대군사노선방침으로 내세웠다. 코리아전이후 미국은 <한국>친미대리정권과 1954<포커스렌즈>·1961<독수리>등 합동군사연습들을 전개했고 1958.1.29 주<한>미군기지에 핵무기반입을 발표한뒤 1960년대말기준 8종의 전술핵무기약950발을 주<한>미군기지에 집중배치했다. 언제든 갈등과 전쟁이 터질수 있는 첨예한 상황에서 조선의 방침은 미래를 대비한 합리적이며 주동적인 조치였다. 쿠바미사일위기가 있고 2년뒤 1964 통킹만사건날조와 미국의 베트남전개입이 발발했고 4년뒤 푸에블로호나포사건이 터졌다. 미국은 이사건을 공해상에서 벌어진 <납치>라고 모략하며 사건조작에 나섰지만 실제로는 1968.1 미해군첩보선USS푸에블로호가 원산앞바다 조선영해를 14㎞나 침범해 정찰임무를 수행하다가 조선인민군경비함과 어뢰정에 나포된것이었다. 1968 미국은 코리아반도와 베트남에서 2개전쟁동시수행전쟁전략을 견지하고있었기에 전면전에로 번질수 있는 첨예한 정세가 조성됐다. 미군은 항공모함3척·전함25척의 초대형함대를 동해작전수역에 출동시키고 200대이상전투기·폭격기의 공습편대들을 주<한>미군·주일미군기지들에 집결시켰다. <엔터프라이즈>항모타격단은 원산항에서 불과 24㎞ 떨어진 조선영해안에 침입하면서 조선을 극도로 위협했고 미태평양지구총사령관은 <전면폭격>등 세부비상계획을 세우며 대조선전쟁을 적극 검토했다. CIA는 나포3일뒤 A12초음속정찰기를 전개해 조선의 남쪽절반을 샅샅이 정찰했는데 이는 <블랙실드>군사작전을 하기전 조선의 병력배치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존슨미정부는 미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조선공습작전을 논의했다. 미국방부문서에 따르면 미태평양지구총사령관 율리시스샤프는 세부비상계획으로 전투기·폭격기동원조선공군기지전면폭격·70kt핵폭탄투하·항구봉쇄·원산항외곽에서의무력시위등을 검토했다.
김일성주석은 2.8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정부성명<미제침략자들이감히덤비려든다면섬멸적인타격을가할것이다!>를 통해 <미제국주의자들의<보복>에는보복으로,전면전쟁에는전면전쟁으로>를 선언하며 결사항전을 선포했다. 조선에는 소련에서 도입한 대함미사일P15<테르미트>와 2단형지대공미사일S75<드비나>등이 실전배치돼있었다. 미국은 1.30 베트남에서 구정공세로 피해가 심각했고 국제적으로도 반미여론이 높아지고있어 <2개전장동시전쟁승리>가 불가능했다. 수세에 몰린 미국은 군사대응에서 외교협상으로 방향을 틀면서 조선과 11개월간 29차례비밀협상을 진행했다. 조선은 미국의 조선영해침범인정·사과를 일관하게 요구했다. 1968.2.17 노동신문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정부에드리는미국함선푸에블로호전체선원들의공동사죄문>이 게재됐다. 27차조미회의에서는 조선측이 포로들을 석방이 아니라 추방하는식으로 쫓아내겠다고 통보하며 미국이 요구를 받지않으면 승무원들은 군사재판에 따라 총살형까지 받을수 있다고 엄중히 경고했다. 미국은 결국 <몰수된미국함선푸에블로호의이전승무원들이자기들의죄행을솔직히고백하고관용성을베풀어줄것을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정부에청원한사실을고려하여이들승무원들을관대히처분하여줄것을>간절히 요청한다는 내용의 사과문을 조선에 보내면서 푸에블로호사건을 마무리했다. 포로들은 11개월만에 조선에서 추방됐다. 미국가안보국(NSA)의 1992 비밀문서에 따르면 미국에게 있어 푸에블로호사건은 <미국역사상가장큰정보분야대실패>였다. 푸에블로호는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이 있는 평양 보통강가에 전시돼있다.
푸에블로호사건후 미국은 1968.11~1969.4 대조선공중정찰을 200여차례나 감행했다. 조선은 1969.4.15 미해군소속EC121정찰기를 격추해 미군31명을 전원몰살시키고 같은해 미헬기OH23G를 격추하며 원칙적으로 대응했다.
1990년대 들어 미제국주의는 소련이 붕괴되자 <조선붕괴>에 매달리며 대조선적대시책동을 심화했다. 조선을 상대로 <핵무기개발의혹>모략질로 핵소동을 벌였다. 조선은 외교적방법으로 해결되지않자 1993.3.8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조선인민군최고사령관명령0034호<전국,전민,전군에준전시상태를선포함에대하여>를 하달, 3.12 NPT(핵확산금지조약)탈퇴성명을 발표했다. 5월 조선핵문제해결을 위한 최선의 방도는 조미협상이라고 공언한뒤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이해 6월 역사상 처음으로 조미공동성명이 발표됐고 8월 조미기본합의문이 채택됐다. 미국은 합의문에서 2003까지200만㎾발전능력의경수로발전소건설·매해40만t중유제공·무역투자장벽완화·워싱턴연락사무소설치·미국의조선핵위협금지공식담보등을 공약했지만 1994 김일성주석이 서거하자 조선을 붕괴시키기 위한 <총포성없는전쟁>·<보이지않는전쟁>을 악랄하게 벌이면서 1998 대조선선제타격을 골자로 한 <작계5027-98>을 채택, 대조선침략전쟁연습을 광란적으로 전개하고 대조선경제제재·봉쇄를 감행하면서 대조선침략·고립압살책동에 골몰했다. 이에 조선은 고난의행군·강행군으로 맞받아가며 1998 파키스탄사막에서 수소탄·원자탄시험비공식참가, 8.31 첫인공위성<광명성1>호발사성공으로 미본토타격능력을 입증했다. 1999.10 미국은 대조선정책을 <고립압살>에서 <평화공존>으로 바꿨고 2000.10.9~12 김정일국방위원장특사 조명록국방위원회1부위원장이 군복차림으로 백악관에 입성하면서 미국의 패배를 확인시켰다.
한편 주유엔베네수엘라대표부가 발표한 <지정학적제재지도>에 따르면 2023.8기준 조선이 제국주의국가들로부터 받은 독자제재건수는 총804건으로, 세계에서 6번째로 제재를 많이 받는 국가로 분류됐다.
<노빠사란>과 타도제국주의
2017.1 트럼프1기집권후 조선은 중장거리전략탄도미사일<북극성2>발사, 대출력엔진시험성공<3.18혁명>, <화성14>ICBM(대륙간탄도미사일)발사성공<7.4혁명>·<7.28기적적승리>, ICBM장착용소형수소탄시험완전성공이 단행됐다. 미국은 <작계5027>에 핵무기80개사용가능성을 포함시켰고, 트럼프는 9.19 유엔총회에서 <(조선)완전파괴>를 협박했다. 김정은국무위원장은 국무위원장성명에서 <반드시불로다스릴것>을 엄중경고했다. 11.29 ICBM<화성포15>형성공적발사<11월대사변>이 있었고, 이때 마이크폼페오가 트럼프특사자격으로 조선에 방문하면서 조미관계는 외교국면으로 전환됐다. 김정은위원장은 2018~19 싱가포르·판문점·하노이에서의 조미정상회담·만남으로 코리아반도의 평화와 조국통일을 위한 비상한 노력을 기울인 끝에 <새로운길>을 선언했다.
2021.1.5 조선노동당8차대회에서 김정은위원장은 <핵무력건설대업의완성을위한강행돌파전>을 작전했다. 2017.11.29 ICBM<화성포15>형시험발사대성공으로 핵무력완성의 역사적대업·로케트강국위업실현을 선포했다고 평가했다. 2022.2 우크라이나전으로 3차세계대전이 개시된 가운데 2022.9.8 조선최고인민회의는 핵무력정책에 관한 법령을 채택하며 전쟁억제를 기본사명으로 하지만 이에 실패하는경우 적대세력의 침략·공격을 격퇴, 전쟁의 결정적승리달성을 위한 작전적사명수행을 명시했다. 김정은위원장은 <핵무력정책을법화해놓음으로써핵보유국으로서의우리국가의지위가불가역적인것으로>된다고 밝혔다. 2022하반기 다종다양한 포·미사일발사시험이 진행됐고, 김정은위원장은 <핵에는핵으로,정면대결에는정면대결로대답할것>을 강조했다.
김정은위원장은 2023.12.26~30 당중앙위8기9차전원회의확대회의에서 남북관계에 대해 <더이상동족관계,동질관계가아닌적대적인두국가관계,전쟁중에있는두교전국관계로완전히고착>이라고 선언했고 1.15 최고인민회의14기10차회의에서 대남정책을 새롭게 법화했다며 <대한민국을완전히점령,평정,수복하고공화국영역에편입시키는문제>를 천명하며 <평정>을 선언했다.
2024.10.31 조선은 다탄두탑재<화성포19>형에 대해 <최종완결판>이라고 명명했다. 11.14~15 조선인민군4차대대장·대대정치지도원대회에선 <전쟁발발이기정사실화되고<거꿀초읽기>가시작>됐다고 밝혔다. 이시기 미제국주의의 파시스트꼭두각시 윤석열·군부호전무리들은 무인기평양공격을 비롯한 대조선국지전도발을 미친듯이 전개했으나 조선은 전쟁억제력·<전략적인내>로 파쇼무리의 음모를 분쇄했다.
재집권전부터 조선과의 관계정상화를 내비쳐온 트럼프는 10.29 아펙(APEC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정상회의에 맞춰 조미정상회담을 요구했으나 조선은 이를 묵살한뒤, 최선희외무상의 러시아·벨라루스방문을 통해 3차세계대전정세하에서의 대미·대남전략은 근본적으로 바뀌지않았다는것을 보여줬다. 김정은위원장은 <타도제국주의동맹>100돌인 2026 새해를 맞아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았다. 1.3 미국의 베네수엘라폭격·마두로부부납치가 있은 다음날인 1.4 김정은위원장은 극초음속미사일발사훈련을 참관했다.
미국내에서는 물론이고, 전세계적으로 미국의 대베네수엘라침략에 대한 규탄의 목소리와 반제국주의투쟁이 갈수록 거세지고있다. 90년전 1936 세계진보적인류는 파쇼군단이 2차세계대전의 최종리허설로 스페인을 침략한것에 맞서 <노빠사란!(No pasaràn! 통과할수없다!)>을 외쳤다. 스페인내전에서 비록 패배했지만 전쟁에 참가했던 국제여단전사들은 자국으로 돌아가 2차세계대전의 반파쇼전선승리를 이끌었다. 2차세계대전의 파쇼세력이 3차세계대전의 제국주의세력이며 그때의 스페인이 지금의 베네수엘라다. 제국주의는 베네수엘라를 절대 통과할수 없다. 100년전 <타도제국주의>기치높이 역사무대의 전면에 나선 세계피억압·피착취민중들의 항전·투쟁은 제국주의를 패퇴몰락시키고 세계자주화와 항구적평화의 새시대를 열어갈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