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 항쟁의기관차〉 노동계급혁명적당의 첫집권

러시아에서 농민봉기가 거세지자 1861 알렉산드르2세가 농노제를 폐지했다. 농노제의 폐지로 공업분야에서 자본주의가 급성장했다.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인 대도시들도 급속히 발전하고 돈바스탄전과 바쿠석유지구와 같은 새로운 공업지구가 등장했으며 자본가들과 노동자들이 사회의 기본계급을 구성했다. 러시아는 유럽의 다른 나라들에 비해 뒤늦게 자본주의산업화가 진행됐다. 농촌공동체를 통해 사회주의로 이행한다고 생각하며 농민혁명을 주장하는 나로드니키(Наро дник)조직 <토지와자유>가 등장했다. 나중에 <흑토재분배>와 <인민의의지>로 분열됐다. <인민의의지>는 짜르전제와의 정치투쟁을 주장했으나 대중투쟁이 아닌 암살의 방법을 사용했다. 소수파인 <흑토재분배>의 지도자 플레하노프는 망명해 맑스주의를 받아들였다. 레닌은 1895 노동계급해방투쟁동맹을 결성하고 활동중에 체포돼 유배됐다. 1898 벨라루스 민스크에서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이 창당됐다. 이창당에서는 레닌의 투쟁동맹이 역할을 했다. 레닌은 유배지에서 <러시아사회민주주의자의과제>라는 팜플렛을 작성해 당강령의 토대를 만들었다. 레닌은 석방된뒤 서유럽으로 망명하고 기관지<이스크라>를 창간했다. 레닌은 <무엇을할것인가>(1902)에서 <혁명적이론이없이는혁명적운동도있을수없다.선진적이론에의해지도되는당만이전위투사의역할을수행할수있다.>라고 밝히고 혁명적맑스주의당의 새로운 형태에 관한 이론적 기초를 완성했다. 1903 2차당대회에서 레닌의 지도아래 맑스주의적강령이 채택됐다. 레닌은 당을 하나의 목적으로 단결해 투쟁을 지도하는 조직으로 혁명적집단주의에 의거해 당성을 유지하고 민주주의중앙집중제의 원리에 의해 운영돼야한다고 주장한 반면 마르토프는 혁명세력의 느슨한 연대와 그에 기반한 노동운동지원을 목적으로 개인자유의사에 의한 활동방식을 주장했다. 레닌은 멘셰비키와 당원자격에 관한 논쟁을 통해 전위정당과 대중정당에 관한 노선논쟁에서 혁명적당은 전위정당으로 돼야한다는것을 밝혔다. 2차대회에서 레닌의 강령과 규약이 채택됐다. 1905 봉기가 확산되자 짜르는 타협안으로 제국의회를 설치하고 선거를 허용했다. 레닌은 의회보이콧전술을 반대하고 비합법적활동을 병행하면서도 의회내 볼셰비키와 소비에트를 활용해 의회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멘셰비키는 농민의 혁명성을 인정하지않았지만 레닌은 사회주의혁명에서 소농·영세농과 동맹할수 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혁명과정에 노동자·빈농· 병사평의회(소비에트)를 실시하고 중농과 동맹하는 전술을 적용했다. 1차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레닌은 제국주의전쟁을 반대하고 노동계급의 해방과 사회주의혁명을 위한 활동에 전념해야한다고 하면서 <빵·토지·평화를!>이라는 구호를 제출하고 혁명을 조직했다. 1917 <2월혁명>으로 짜르전제가 무너지고 사회혁명당 케렌스키의 임시정부가 구성됐다. 민중들은 소비에트를 결성해 2중권력기를 형성한다. 레닌은 <모든권력을소비에트로!>라는 구호를 들고 <10월혁명>을 조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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