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이면 서슬 퍼런 군사통치때다. 파시즘이 다른 게 아니다. 대부분의 변혁운동가들이 비합으로 활동했다. 어느날 누군가의 자취방에 은밀히 모였다. 절반은 노동자, 절반은 인텔리였다. 인텔리출신 운동가들이 어렵게 조직한 선진적인 노동자들과 함께 영화를 봤다. <조선의별>시리즈였다. 당시 들었던 노동자들의 진솔한 소감을 지금까지 잊은적이 없다. 2부 카륜회의장면에 <혁명가>와 함께 붉은노을아래 힘차게 달리는 기관차가 나온다.
비디오는 조직원중의 한명이 안기부직원인 친척을 통해 구해온것이다. 안기부직원은 보고 우리조직원은 못본다면 전형적인 <내로남불>이 아닌가. 당시는 광주학 살의 살인마정권이 하지말라고 하면 무조건 그반대로 생각하고 행동할때다. 역시 이미 소설로 역사서로 내용을 아는 사람보다 처음 접하는 사람의 충격이 컸다. 그때는 북과 관련돼서 정말 반대로만 알고있었다. 남사회의 모순을 체감하고 동지를 누구보다 신뢰하는 노동자들은 단박에 옳고그름을 갈라봤다.
어느덧 30년이 지났다. 이제는 숨죽이며 봤던 영화들을 인터넷으로 언제든 편하게 볼수 있다. 신비주의와 환상이 사라졌다. 북에도 사람이 살고있고 당연히 사람은 사람이다. 결국 과학만 남았다. 북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과 그사실을 반영한 이론은 남았다. 과학적신념을 가진 사람들은 흔들리지않고 정진했다. 물은 골따라 흐른다. 시내는 강을 이뤄 바다로 나아간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란 이렇다. 사상이란 생각이고 이를 표현하는것은 가장 기본적인 인권이 아닌가. 사회가 성숙해지면서 이제는 보안법이란 낡디낡은 파쇼악법이 설자리를 잃었다. 현정권이 공약대로 보안법의 찬양고무죄를 폐지한다고 한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허용됐는지는 북자료를 마음대로 볼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자유가 있다면 <조선의별>은 공중파를 타거나 극장에서 상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