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3 항쟁의기관차〉 해방의 봄의 첫과제, 건당

김일성주석은 <천황>의 항복선언이 있은 직후 8.20 조선인민혁명군군사정치간부회의에서 <해방된조국에서의당,국가및무력건설에대하여>라는 연설을 하고 건당·건국·건군의 과업을 제시했다. 새조국건설노선을 관철하는데서 가장 중요하고도 선차적인 과업으로 나선것은 조선혁명의 참모부며 인민대중의 핵심부대인 혁명적당을 창건하는것이었다. 김일성주석은 항일혁명투쟁기간 당창건을 위한 조직사상적기초를 확고히 마련했다. 김일성주석은 오랜 기간 항일혁명투쟁에서 단련되고 육성된 혁명가들을 핵심으로 하고 국내외여러지방에서 활동하던 혁명가들을 망라해 통일적인 당을 창건하는데 주력했다. 1945.10.5 당창건을 위한 예비회의를 성사하고 이어 1945.10.10~13 북조선공산당창립대회를 개최했다. 김일성주석은 당의 조직골간을 튼튼히 꾸리고 당을 무산계급의 토대위에 튼튼히 선 대중적당으로 만들며 유일한 지도사상에 기초한 전당의 사상의지·행동통일을 보장하고 혁명적인 당규율을 세우는것을 당의 조직노선으로 명확히 밝혔다. 또 민주주의인민공화국창건을 기본정치과업으로, 그실현을 위한 4대당면과업과 부강한 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수립을 위해 북조선을 강력한 민주기지·혁명적기지로 건설할 정치노선을 천명했다. 1945.12.17현재 당원4530명의 농민과 지식인들을 주된 구성으로 한 당대열을 개선할데 대한 결정을 채택하고 1945말·1946초 유일당원증교부사업과 당원심사사업을 전당적으로 진행하면서 1946.4.20현재 2만6000여명의 당원장성과 함께 불순분자를 제거하고 노동자·빈고농의 당원비율을 확대했다. 당의 통일단결을 강화하기 위한 투쟁을 통해 당중앙으로부터 세포에 이르기까지 민주주의중앙집권제원칙에 기초한 조직체계를 정연하게 세웠다. 근로대중의 분열을 막고 하나의 정치적역량으로 묶어세우기 위해 공산당과 신민당을 합쳐 근로인민의 대중적당으로 발전시킬것을 제기했다. 인민정권이 수립되고 민주개혁이 이뤄지는 과정에 사회계급관계의 변화도 공산당과 신민당의 합당을 요구했다. 1946.8.28~30 평양에서 북조선노동당창립대회가 진행됐다. 대회에는 공산당원27만6000여명과 신민당원9만여명을 대표해 801명의 대표와 각정당·사회단체들에서 100여명의 방청자들이 참가했다. 반면, 1946.11 박헌영이 자기파일색의 노동당을 내오려고 획책하자 <근로인민당>이 창당돼 분열되면서 남에서의 노동당창당은 근로대중의 통일적당창립으로 되지못했다. 북조선노동당창립이후 1948.1.1 당대열이 1.9배 장성했으며 노동자들과 빈농의 구성도 증가했다. 각공장·기업소·기관들과 농촌마다 당세포가 조직돼 그수는 합당당시의 1만2000여개로부터 1947말 2만8000여개로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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