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민중들의 변혁활동이 군정과 반공이데올로기로 저지당하는 사이 북에서는 사회주의혁명이야말로 인민대중을 온갖 착취와 빈궁으로부터 해방하고 나라의 전반적경제를 계획적으로 빨리 발전시켜 혁명의 정치적지반을 공고화하기 위한 가장 옳은 길이라는것이 입증되며 혁명의 계속전진에 대한 요구가 높아졌다. 이는 반민족·반혁명세력에 반대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으로 북을 조선혁명의 민주기지로 더욱 공고히 하고자 한것이었다.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은 거대한 사회적변혁이었으나 착취와 빈궁의 근원을 완전히 없애지못했다. 농촌에는 소농경리가 지배하고 부농이 남아있었으며 도시에는 수공업경리와 자본주의적경리가 아직 없어지지않고있었다. 사회주의혁명은 사람에 의한 사람의 착취와 억압을 종국적으로 없애고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완전히 실현하기 위한 인류역사상 가장 심각한 사회변혁이다. 조국통일을 위해서도 혁명을 더 전진시켜 북의 민주기지를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으로 강화해야한다는 확고한 입장이 천명되고 북은 사회주의정권수립을 다그쳤다. 북의 사회주의혁명은 북인민들의 삶을 위한것일뿐아니라 우리민족의 운명에 결정적영향을 줄수 있다는 확신으로 강력하게 추진됐다. 북에서는 1946.9.5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2차확대위원회에서 11.3 북의 모든 지역에서 도·시·군인민위원회위원선거를 일제히 실시할것을 결정하고 선거에 관한 규정을 채택한데 이어 일반·평등·직접원칙하에 비밀투표의 방식으로 첫민주선거가 진행됐고 이에 기초해 이듬해 2.17 평양에서 북조선도·시·군인민위원회대회가 소집됐다. 대회에는 도·시·군인민위원회와 민주주의적정당·사회단체들에서 선출된 대표1159명이 참가했다. 대회에서는 최고주권기관인 북조선인민회의를 창설할것을 결정하고 대회에 참가한 대표5명당 1명의 비율로 비밀투표의 방법으로 237명의 대의원을 선출했다. 2.21~22 북조선인민회의1차회의가 개최되고 김일성주석을 북조선인민위원회위원장으로 추대하고 최고집행기관인 북조선인민위원회를 조직했다. 북은 북조선인민위원회에 대해 민주선거를 통해 법적으로 공고화된 중앙정권기관이며 첫사회주의정권이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