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 항쟁의기관차〉 군대를 혁명의 주력군으로

김정일국방위원장은 1964.6 당중앙사업을 시작했다. 1960.8.25 근위서울유경수105탱크사단현지지도로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선군혁명영도가 시작됐다고 밝히고있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1968 푸에블로호사건과 1969 EC-121사건당시 미제침략무력을 상대했다. 1974.2 정치국위원으로, 1980.10 조선노동당6차대회에서 정치국상무위원으로 됐다. 북에서는 1982.6 당중앙군사위회의에서는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영군체계가 확립됐다고 밝히고있으며 1991.12 최고사령관, 1993.4 국방위원장에 추대됐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1990년대 소련사회주의가 붕괴하는 시련기에 <평양선언>과 <사회주의는과학이다>등 북의 주체사회주의기치를 견지했다. 1993~94 북미대결전에서 북미정치협상과 남북수뇌회담까지 이끌어냈다. 그러나 김일성주석이 서거했을때 미국을 비롯해 세계의 여러나라들은 북이 곧 망할것이라고 예측했다. 소련·중국과 같은 큰 나라들도 버티지못했기때문이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1995 군대에 의거하겠다는 선군정치를 선언했다. 북에서는 김정일국방위원장이 선군정치로 나선 이유에 대해, 선군의 길이야말로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과 존엄을 믿음직하게 수호하고 담보하는 원칙적이고 정의로운 애국의 길이어서라고 소개하고있다. 조국의 자주권과 존엄을 목숨보다 더 귀중히 여겼기에 국방력이자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이고 생존권이며 운명이고 존엄이라고 보면서 국방력이 약하면 하고싶은 말도 하지못하고 남의 눈치를 보게 되며 결국 남에게 예속되는 노예의 운명을 면치못하게 된다며 <다시는우리인민이조국의자주권과존엄을빼앗긴식민지노예의운명을되풀이하지말아야한다>는것이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신조였다고 밝히고있다. 이는 1995~97 <고난의행군>을 각오한 길이었고 그때를 정점으로 보자면 그보다 어렵고 힘든 시기가 없었다는것이며 앞으로도 북이 못버틸 시기가 없다는것을 의미하는것이기도 했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2003 NPT탈퇴유보조치를 중단함으로써 사실상의 핵개발선언으로 이어졌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1990년대말 <고난의행군>·강행군을 마무리하면서 <사회주의강성대국>건설노선을 천명하고 그건설의 3대기둥이 사상·총대·과학기술이라며 1999 과학기술5개년계획을 추진했다. 또 2002 국방공업우선과 경공업·농업동시발전을 제시하고 과학기술을 기본으로 국방공업을 발전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경공업·농업의 인민경제도 발전시키자는 구상을 추진시켰다. 군대와 국방공업은 경제건설과 국가보위 양측에서 결정적역할을 하며 김정일국방위원장이 주체사회주의와 혁명의 전취물을 지켜가는데 가장 믿음직한 힘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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