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남코리아를 강점한후 코리아전체를 지배하려고 했다. 미군정자문기구 <남조선민주의원>과 입법기구 <남조선과도입법의원>을 내오고, 이<입법의원>을 통해 1947.6 <보통선거법>을 통과시키며 분단을 고착화하는 단독선거준비를 다그쳤다. 미국은 1947.5 소미공동위원회회의를 고의적으로 파탄시키고 <유엔임시코리아위원단>감시밑에 남단독선거를 강행했다. 정세는 통일적인 자주독립국가건설을 위한 모든 애국역량의 단합을 절박하게 요구했다. 1947.10.3 북민전(북조선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중앙위의장단회의에서는 남북애국역량의 단합된 힘으로 미제의 민족분열책동을 분쇄하고 통일정부를 수립하자고 호소하며 김구·김규식을 비롯한 남측의 정당·사회단체지도자들에게 남북연석회의를 제안했다. 1948.4.19~23 평양모란봉극장에서 남북56개정당·사회단체대표695명이 참가한 가운데 역사적인 남북연석회의가 열렸다. 회의에서는 남<단선단정>반대·통일정부수립의 결의를 담은 <조선정치정세에대한결정서>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또 소미양국에 외국군대철거를 촉구하며 남단독선거반대투쟁전국위원회를 조직하고 구국투쟁을 호소하는 격문을 발표했다. 4월연석회의는 남북대표들이 조국통일문제를 토의한 역사적인 첫대민족회의였다. 비록 사상·이념·신앙의 차이가 있더라도 민족공동위업투쟁에서 누구나 단결할수 있으며 온민족의 대단결로 거족적인 구국투쟁을 벌인다면 조국통일위업을 성취할수 있다는것을 내외에 과시했다. 4.30 남북정당·사회단체지도자협의회회의에서는 외국군대철거와 통일정부수립을 위한 당면문제들을 밝힌 <남북정당·사회단체공동성명서>를 발표해 남북연석회의의 성과를 더욱 공고히 했다. 이어 5.2 쑥섬협의회(연석회의지도부들간협의회)에서는 남북총선거실시와 통일정부수립등의 결의를 모았다. 미제국주의는 거수기 유엔을 앞세워 식민지대리정권수립을 획책했으나 우리민족은 민족단합의 힘으로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할수 있다는것을 증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