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군사파쇼통치에 시달려온 민중은 마침내 폭발했다. 전두환군사파쇼정권의 노골적인 군사독재연장음모는 <4.13호헌조치>와 6.10노태우대통령후보선출로 만천하에 드러났다. 격분한 청년학생·각계각층민중들은 군사독재장기집권책동에 맞서며 전민중적항쟁에 떨쳐 일어났다. 항쟁은 서울·부산·대구·광주·원주·춘천·목포·마산·여수·제주등 남전역으로 확대됐고 군사파쇼정권의 야수적탄압속에서도 20일이 넘게 계속됐다. 청년학생들을 선두로 노동자·농민·지식인·종교인·재야정치인들이 나섰다. 중소기업가·상인·공무원과 심지어 전투경찰일부도 합세했다. 6.10 50여만명, 6.26 180여만명등 6.10~29 20일간 연인원300여만명의 각계층군중이 참가했다. 6월항쟁의 연장인 7.9 이한열추모투쟁까지 합하면 참가규모는 500만명이 훨씬 넘는다. 노동자·민중은 <호헌철페>·<독재타도>·<민주헌법쟁취>·<미제축출>등의 구호를 들고 집회·시위·항의농성과 시국선언·성명발표, 단식투쟁등 여러형태의 투쟁을 연일 벌였다. 참가자들은 앞을 분간할수 없는 최루탄의 공세속에서도 굴함없이 항거했다. 전두환정권은 전체경찰에 <갑호비상경계근무령>을 내리며 10여만명의 경찰과 수많은 특수부대원들을 동원해 탄압했고 35만여발의 최루탄을 발사했다. 어떤 파쇼적탄압도 민중의 항쟁의지를 꺾을수 없었다. 전두환·노태우는 이른바 <특별선언>과 <특별담화>를 연이어 발표해 <직선제개헌>을 약속하며 항복했다. 하지만 1987 대선에서 민주세력이 분열하면서 민주연립정권수립은 실패했다. 그로인해 남의 민주연립정권과 북의 사회주의정권간의 반미구국통일전선은 미완으로 남았다. 6월항쟁을 통해 단결한 민중의 투쟁은 군사파쇼정권을 무너뜨리고 승리할수 있다는것을 입증했다. 이제 남에서 자주·민주·통일운동은 되돌릴수 없는 흐름으로 됐다. 노동자·농민·청년학생등 변혁적대중조직들이 조직되고 남측지역의 민족민주전선체가 결성됐다. 또 남·북·해외의 범민족통일전선체가 창립돼 1990년대의 자주통일투쟁을 선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