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8 항쟁의기관차〉 민족의 운명이 기로에 선, 첨예한 전장의 여름 

1947 미는 <트루먼주의>를 발표하면서 냉전을 기치로 한 대소봉쇄정책을 수립하고, 세계적범위에서 사회주의변혁과 민족해방운동의 확산을 막으려했다. 1950 아시아대륙주변을 둘러싼 섬들의 방위를 일본의 미군거점과 결합시키는 <거대한초승달전략>을 담은 <애치슨선언>이 발표됐다. 미의 전쟁수행능력을 적절히 활용해 아시아에서 사회주의확산을 봉쇄하고 특정지역을 의도적으로 노출시켜 상대측이 전쟁을 감행하도록 유도한다는 내용이었다. 미가 의도적으로 노출한 지역중 한곳이 코리아였다. 당시 북은 일제해방이후 혁명적민주기지를 꾸린후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을 속도있게 추진중이었고 남은 미군정에 철저하게 예속돼있었다. 미국의 영향하에 승공통일을 주장하는 이승만정권은 1948.11 남국회에서 <미군장기주둔안>을 통과시켰으며 남군대를 10만으로 늘리고 미국무기를 수입하는등 전쟁준비를 다그쳤다. 미제와 반북호전세력들은 1949에 북침계획을 완성한다. 1949 한해만도 38선부근에서 2617회의 무장충돌사건이 일어나면서 이미 전쟁은 일어난것이나 다름없었다. 미국은 1950초 남의 이승만정권과 <미남상호방위원조협정>을 체결했다. 이승만정권은 남측전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해 긴장상태를 격화시키고 동시에 남측군대를 38선주변으로 집결시켰다. 6.17 트루먼대통령특사 덜레스는 38선일대를 시찰한후 북진작전계획을 최종 비준했고 6.19 남국회에서 <미국은공산주의를반대해싸우는남코리아에물심양면필요한원조를주기에준비돼있다>며 이승만정권의 북진전쟁을 부추겼다. 코리아전이 발발하기전 미국은 국내적으로는 군수산업침체에 따른 경제불황을 겪고있었고 국외적으로는 소련·중국등 사회주의국가들을 견제해야했다. 민족의 운명이 기로에 선, 첨예했던 전쟁은 1953년 여름에 정전협정체결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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