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9 항쟁의기관차〉 김정은최고사령관대리의 대결전

4차반미대결전은 2008.8~2009.6 김정일국방위원장을 대신해 김정은후계자가 최고사령관대리로 진행한 대결전이었다. 김정은위원장은 실전과정을 거쳐 준비되고 검증된 후계자로 민족의 운명만이 아니라 인류의 운명이 걸린 대결전을 지휘했다. 이기간 이른바<북핵문제해결>을 목적으로 한 6자회담이 사실상 파탄나는 수순을 밟고있었다. 2008.8~10 김정일국방위원장의 활동이 공개되지않았다. 미제국주의의 서방매스미디어들은 <건강이상설>을 유포했다. 6자회담이 공회전을 거듭하는 가운데 북내부정보가 절실했던 미국은 2009.3 두여기자를 두만강 넘어 입북시켰다. 두여기자는 클린턴정부당시 부통령 고어가 운영하는 매체에 소속돼있었다. 같은 시기 북은 6자회담의 결렬을 선언하고 4.5 광명성2호를 실은 은하2호를 발사했다. 인공위성발사는 초전자기파핵탄(super-EMP)을 장착한 위성탄두(FOBS)발사로 추정됐다. 북의 강대강공세에 2009.8 미클린턴전대통령이 두여기자를 데려오겠다는 명목으로 포데스터백악관비서실장과 함께 방북하는것으로 대응했다. 방북당시 김정일국방위원장은 통역 없이 클린턴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 10월에는 베이징을 방문한 정동영일행이 우연히 공항에서 김양건비서를 만나면서 김양건비서의 방중사실이 알려졌다. 같은 시기 키신저의 베이징방문사실이 확인돼 키신저와 김양건비서가 만난것으로 추정됐다. 키신저는 2달뒤인 12.18 워싱턴포스트기고문<어떻게북코리아문제를진전시킬것인가>에서 <북의의도가무엇인가에대한더이상의사전탐사는필요하지않으며,바로6자회담이이문제를다루는데가장적절한기회를제공한다>며 <여기서는나폴레옹의격언이딱들어맞는데,그것은<빈을갖고싶으면,빈을취해라>는말이다>라고 썼다. 2008 이명박정부가 들어선 상황에서 <금강산>사건이 벌어져 금강산관광이 중단되고 남북간대화도 이뤄지지못했다. 2010 남정부의 묵인과 미반북단체들의 지원하에 <탈북자>단체들은 대북전단을 살포했다. 북은 2010.3 서해상에서 북침핵전쟁연습을 벌이는 미함대의 지휘부격인 핵잠수함을 수중미사일로 타격했다. 미핵잠이 급히 피신하다가 천안함을 들이받으면서 <천안함>사건이 일어난것으로 추정된다. 2010.11 <연평도포격전>의 군사적공세도 있었다. 이명박정부는 <천안함>사건을 북의 책임으로 조작하며 6.15·10.4선언의 남북화해협력성과를 무위로 만들었다. <조국을통일하지못하면김정일이아니다>라는 말대로 평화적방법이 안되면 비평화적방법으로 통일위업을 이룩하겠다는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의지가 강대강의 대결전에 담겨있었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런 서거로 통일위업은 김정은위원장에게 최대유훈으로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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