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노에총리는 1938.11 동북아시아의 만주와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신질서>를 주장했다. 1940 일본, 만주국, 중국과 동남아시아의 일부를 아우르는 대동아를 건설하자는 <대동아공영권>으로 확대했다. 이들은 <서구제국주의지배로부터자유로워져번영과평화,자유를누릴아시아국가들의공영을찾기위해새국제질서의수립>을 주창했다. 1940.8.1 일외무대신 마스오카가 기자회견에서 공식적으로 <대동아공영권>건설이 일본<외교방침의기본>이라고 밝혔다. 일육군의 아리타장군은 미국의 <먼로주의>를 본따 일본에게 아시아지역을 미국에게 있어서 라틴아메리카와 비교해 <아시아인들의아시아>를 내세웠다. 이러한 팽창전략의 군사적목표는 호주의 고립과 인도양에서의 군사작전을 의도한것이었다. 일본은 서구제국주의에 점령당해왔던 아시아나라들의 민중들을 기만하며 자신들을 교묘하게 <해방자>로 치장했다. 일본은 첫단계로 중핵권을 형성하고 중핵권을 토대로 둘째단계의 <소공영권>을 형성해 여기에 동부시베리아와 전중국영토, 동남아시아까지 아우르는것을 계획했다. 셋째단계는 <대공영권>창설로 호주·뉴질랜드와 태평양상의 여러섬들까지 아우른다는 계획이었다. 일본은 독일과 이탈리아가 1941.12.11 미국에 선전포고한이후 12.15 독일과 <작전권역>을 동경70°선을 경계로 동반구와 서반구로 나누는 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1943.11 대동아공영권구성국가들의 수반이 참석한 대동아회의에는 일본을 비롯해 만주국·난징국민정부·버마국(미얀마)·자유인도임시정부·필리핀2공화국·태국등이 참석했다. 그외에도 일본이 점령지면적이 최대에 이르렀을때 그구성국에 몽강연합자치정부·캄보디아왕국·라오스왕국·말라야왕국등이 포함됐다. 일본은 괴뢰국들을 내세워 기만적으로 자신의 침략을 정당화했다. 버마국가주석은 <그군국주의자들은모든것을일본의입장에서만바라봤고심지어그들은그들이다루는다른이들모두가그들과똑같이해야한다고주장했다.그들에게는어떤일을할때일본식의방법밖에없었다.>고 말했다. 일본은 1910 조선을 복속시키고 1931 만주사변을 일으킨후 1932 만주국을 수립했다. 1933.3 일본관동군은 열하성을 복속하고 이어 내몽골의 차하르성을 침공했다. 1939 관동군의 의도에 따라 내몽골의 몽골연맹자치정부를 비롯한 허베이성과 산시성의 자치정부가 합쳐져 몽강연합자치정부가 조직됐다. 중화민국의 왕징웨이가 중국민당내 일본과의 평화노선을 주장하면서 결국 일본에 망명해 난징국민정부를 수립했다. 난징국민정부는 일본점령지역만을 실효적으로 지배했다. 일제는 아시아나라들을 강점하면서 <대동아신질서수립>을 내세워 침략무력을 동원해 아시아민중을 야수적으로 탄압하고 살육했다. 조선에서 840만여명의 청장년들을 강제연행해 혹사시키고 100여만명을 학살했다. 20만명의 조선여성들을 <위안부>로 끌어가 성노예생활을 강요했다. 중국에서 3500만명, 베트남에서 200여만명, 인도네시아에서 200여만명, 필리핀에서 110여만명, 말레이에서 120여만명이나 학살했다. 또 막대한 양의 전략물자와 각종자원부원을 약탈했다. 1937.7 중일전쟁이 발발하고 그해 1937.12 일본군의 난징점령과 더불어 시작된 <난징대학살>은 이듬해 2월까지 계속되면서 일본측의 자료에 따르면 약30만명이 학살됐다. 1939.4 난징에서는 1644부대가 신설돼 생체실험이 자행됐다. 1936 만주국지역의 관동군예하 비밀생물전연구개발기관으로 731부대가 설립돼 운영됐다. <대동아공영>은 아시아민중을 학살하고 착취하는 일본군국주의의 파쇼지배체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