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영은 역사적으로 아시아지역에서 일본군국주의자들과 결탁해왔다. 미국은 대서양연안국가로 시작돼 대륙서부지역으로 확장해왔으며 1848 멕시코와의 전쟁으로 캘리포니아를 차지하고 태평양과 대서양의 양대양을 낀 나라로 됐다. 미국은 1840년대부터 태평양지역을 차지할 식민주의적목표로 <태평양주의>를 제시하고 추진했다. 중국으로 진출해 아시아로 세력권범위를 확대하려했다. 미·영식민주의자들은 제정러시아의 남하를 막으려는 의도도 갖고있었다. 일본은 그첫관문이었고 하와이는 그전략적요충지였다. 1846.6 미해군제독 비들이 통상교섭을 위해 일본에 파견됐다. 그는 교섭시도도 하지못하고 돌아가야했다. 1852.1 해군제독 페리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일본에 왔다. 1854 미국의 압박에 의해 불평등조약인 미일<화친>조약을 맺으면서 일본의 개항이 시작됐다. 당시 영국과 프랑스는 튀르키예문제로 유럽과 중동에서 제정러시아와 대립하고있었다. 1858 에도막부가 미·영·프·러·네덜란드5개국과 수호통상조약으로 이른바 안세이5개국조약을 조인했다. 1898 미국은 아메리카대륙에서 스페인을 몰아내기 위해 미국·스페인전쟁을 벌였으며 전쟁에서 미국이 승리하면서 필리핀에 대한 관할권을 스페인으로부터 사들였다. 미국은 필리핀에서 지배권을 확립하기 위해 지상군을 파견하고 필리핀인60만명을 학살했다. 1905 미국은 일본과의 밀약에서 조선에 대한 일본의 지배권을, 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지배권을 상호인정했다. 영국도 제정러시아의 남하를 막기 위해 일본과 손을 잡았다. 1902.1 군사동맹인 영일동맹조약을 체결했다. 1905.8 개정, 2차영일동맹이 형성됐고 1911 이를 다시 갱신해 3차영일동맹이 형성됐다. 여기에서 일본은 중국과 조선, 영국은 중국에서의 이익을 서로 인정했으며, 한쪽이 다른 나라와 교전시 엄정중립을 지키고 한쪽이 2개국이상과 교전시 협동전투에 임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1904~05 러일전쟁에서 이조약은 일본이 국제적고립을 피하는데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05조약에서는 일본의 조선보호권을 확인하고 동맹의 적용범위를 인도까지 확인했다. 1921 워싱턴회의에서 미·영·일·프4개국사이에 조약이 성립되면서 사실상 영일동맹조약은 폐기됐으며 공식적으로는 1923.8 폐기됐다. 군벌에 기초한 봉건적인 일본지배층의 탐욕과 야망은 미·영서방열강의 영향아래 제국주의화됐다. 미·영서방열강 또한 아시아에서 일본을 이용했다. 일본이 1931 만주사변을 일으켰을때 당시 국제연맹은 이를 불인정했고 일본이 이에 반발해 국제연맹을 탈퇴했다. 그러나 서방열강의 일본에 대한 견제는 결정적인 조치로 이어지지않았다. 일본에 의해 1937 중일전쟁이 일어났다. 일제는 미·영·프의 지지를 받아 국제적고립을 피해 아시아를 차지하고 소련까지 침략하려고했다. 7.23 주일영국대사 크레이기와 일본외상 히로타사이의 도쿄회담이 이뤄졌다. 전쟁발발직후 장개석은 영국에 중재를 요청했고 이에 영국하원에서는 평화적해결을 내세워 영일교섭중단을 발표했으나 영국은 더이상의 마찰을 원하지않았다. 미국도 7.16 미국무장관명의의 <평화원칙16조>를 발표했으나 일제의 서방제국주의에 대한 공격이 가시화되기전까지 중국침략에 대해 <중립>·<불간섭>을 내세우며 전혀 비판하지않았다. 7.23도쿄회담은 유럽지역에서 독일의 체코주데테란트지역의 할양을 허용한 뮌헨협정과 같았다. 제국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이익이 침해당하지않고 또 반제국주의노선의 사회주의소련을 견제한다는 측면에서 일본과 이해관계를 같이 했다. 이런 이유로 일본은 서방열강의 동의를 받았으며 이에 편승해 아시아침략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