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4 항쟁의기관차〉 국지전을 막은 강력한 전쟁억제력

미국의 대조선적대시정책은 근본적으로 달라지지않았다. 2000년대들어 조선을 겨냥한 전쟁연습은 오히려 체계적으로 늘었다. 특히 2001 한해에만 진행된 전쟁연습횟수는 공식발표된것만 해도 이전해의 2배이상이었다. 2008 연합전시증원연습을 <키리졸브>로 명칭을 바꿔 계단식으로 확대했다. 2009 <맥스썬더>연습이 첫실시됐다. 이외에도 <독수리>·<을지프리덤가디언>·<쌍용>등 각종합동군사연습들이 대대적으로 벌어졌다. 조선을 선제공격하기 위한 전쟁각본인 <작계5027>, <참수>작전까지 들어있는 <작계5015>에 따라 전개됐다. 2002.1 미는 <핵태세검토보고서>를 발표해 조선을 최우선적인 핵선제공격대상으로 지적했고 이를 실행하기 위한 <합동핵작전교리>를 조작했다. 부시정부는 클린턴정부가 합의한 조미공동성명을 파기했다. 2001.9.11 군사자작테러를 조작해 <테러와의전쟁>을 내세우고 조선·이란·이라크를 <악의축>으로 모략하며 아프가니스탄침공·이라크전쟁을 감행했다. 2004.4 방중후 귀국하는 김정일국방위원장의 기차를 겨냥해 기차역을 통째로 날려버린 용천역폭발사건을 일으켰다. 1990년대초 미국은 동북아·중동2개전장동시승리전략을 세웠다. 소련해체시기 동시전쟁승리전략으로 제국주의패권을 과시하려했던것이다. 조선은 동북아·서아시아(중동)에서 동시에 반제반미전쟁을 벌이는 전략을 세워 준비태세를 갖췄다. 조선은 1998~2006 8년간 이란에 국방공업건설을 지원했다. 이란은 2006까지 18기의 핵미사일을 배비하는데 성공했다. 이란을 전략적거점으로 하는 서아시아의 반제반미전선이 형성됐다. 조선은 2006.7.4 회피기동으로 요격이 불가능한 <부러진미사일>을 미본토방향으로 발사하며 군사적공세를 재개했다. 종말단계에서 낙하하다가 탄두부분이 갑자기 방향을 바꿔 수직상승했다고 해서 언론이 <부러진미사일>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10.9 풍계리에서 핵시험을 진행하며 핵무기를 장착한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의 능력을 전세계에 과시했다. 부시정부는 6년에 걸쳐 펼친 고립화정책을 깨며 굴복했고, 2007 2.13합의가 발표됐다. 10.11 조선을 <테러지원국>에서 20년만에 해제했다. 이명박정부가 들어서면서 2008.7 <금강산>사건등으로 남북관계는 6.15남북공동선언발표이전으로 돌아갔다. 이명박정부의 등장과 함께 심리전의 일환인 대조선전단살포도 본격화됐다. 2008.8~2009.6 김정일국방위원장을 대신해 김정은후계자가 최고사령관대리로 대결전을 지휘했다. 2009.4.5 <광명성2호>를 실은 <은하2호>가 발사됐는데 이는 초전자기파핵탄(super-EMP)을 장착한 위성탄두(FOBS)발사로 추정됐다. 2004 러과학자들은 몇년안에 조선이 초전자기파핵탄을 개발할것으로 예상했는데 2년뒤 조선이 1차핵시험을 단행했다며 이를 단언했다. 초전자기파핵탄이면 미국48개주의 전력망을 무력화시키기에 충분하다고 알려졌다. 5.25 2차핵시험을 단행했다. 한편 11월 대청도해역에서 교전이 발생했다. 조선측은 코리아반도의 긴장격화를 노린 <한국>군부의 고의적이며 계획적인 도발행위라고 강력히 규탄했다. 2010.3 조선이 서해상에서 대조선침략연습을 벌이는 미국측의 핵잠수함을 수중미사일로 타격해 그핵잠이 피신하다가 천안함을 들이받는 사건이 벌어졌다. 2010.11 <연평도포격전>의 군사적공세가 벌어졌다. 어느쪽이든 마음만 먹으면 국지전이 일어날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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