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70년대는 민족해방·사회주의세력에 대한 미국의 침략전쟁책동이 더욱 노골화되던 시기였다. 사회주의내에서 현대수정주의가 대두해 제국주의세력과 무원칙하게 타협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조선은 인민군대에 대한 정치사상적영도와 함께 군사작전권을 행사할수 있도록 전군을 확고히 틀어쥐는데에 힘을 기울였다. 1960.8.25 김정일국방위원장은 근위서울유경수105탱크사단현지지도로 선군혁명영도에 나섰다. 1962.12 조선노동당중앙위원회4기5차전원회의에서 <4대군사노선>(전군간부화·전군현대화·전민무장화·전국요새화)을 채택하고 경제국방병진노선을 제시했다. 김일성주석은 1966.10 조선노동당2차대표자회의 <현정세와우리당의과업>보고에서 국제정세와 세계사회주의운동에 제기되는 문제들을 토의하고 세계혁명의 기본전략은 <미제에주되는창끝을돌리는데있다>고 밝히면서 사회주의나라들의 통일과 세계사회주의운동의 단결을 위해 좌우경기회주의를 반대해 두전선에서 투쟁할것, 국제적인 반제공동행동과 반제통일전선을 이룩하는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내적으로 일심단결을 강화하기 위한 투쟁에 주되게 나섰다. 1967 유일사상체계가 지도적이념으로 채택됐고 1960년대말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세우기 위한 투쟁이 전당적으로 벌어졌다. 조선에서 일심단결은 수령·당·대중의통일체, 혁명의자주적주체, 수령의유일적영도체계를 의미한다. 1970.11.2~13 조선노동당5차대회에서 김일성주석은 조선이 <자립적인사회주의공업국가>로 전환됐음을 선포하면서 사회주의건설의 새로운 전략적노선으로 3대혁명(사상·기술·문화혁명)을 제시했다. 여기서 사상혁명을 확고히 앞세우는것은 3대혁명수행에서 조선노동당이 견지하고있는 근본원칙이다. 김일성주석은 1973.2 조선노동당중앙위원회정치위원회확대회의에서 정치실무적으로 준비된 당핵심들과 청년지식인들로 3대혁명소조를 조직해 공업과 농업부문에 파견하게 했다. 김일성주석의 구상에 따라 김정일국방위원장은 1975.11 조선노동당중앙위원회5기11차전원회의에서 3대혁명의 전략적노선에 따라 3대혁명붉은기쟁취운동을 발기했다. 이는 3대혁명수행과 대중운동을 유기적으로 결합시켰다고 평가된다. 앞서 김일성주석은 1964 농촌문제해결을 위한 원칙과 방법을 집대성한 <우리나라사회주의농촌문제에관한테제>를 통해 농촌문제해결에서 나서는 모든 이론실천적문제들에 대한 답을 밝혔다. 농촌문제의 해결은 곧 사회주의혁명이후의 새로운 단계로의 진입이다. 소유형태가 협동농장과 같은 협동소유에서 국영농장·연합기업소와 같은 전민소유로 발전한다. 1977.9 <사회주의교육에관한테제>로 사회주의제도수립후 사회주의적인간육성문제, 사회주의교육에 대한 문제를 정리했다. 사람들을 혁명화, 노동계급화, 공산주의화하는것을 사회주의교육학의 기본원리로 정식화했다. 조선은 주체적힘을 강화해나갈때 적대세력들의 반공화국압살책동을 비롯한 그어떤 외부적요인에도 무관하게 <우리식>사회주의건설을 줄기차게 전진시켜나갈수 있다고 설명하고있다. 1980.10 조선노동당6차대회에서 조선은 <온사회의주체사상화>라는 새로운 목표를 제시했다. 혁명과 건설에서 주체사상을 확고한 지도적지침으로 삼고 주체사상을 철저히 구현하여 공산주의사회를 건설한다는것을 의미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