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 항쟁의기관차〉 군국주의 부활시킨 〈정당정치〉

18~19세기 일본에서도 반봉건적농민폭동이 벌어졌다. 반막부세력의 중심은 상업·수공업이 발전한 일본서남부의 다이묘 (봉건영주)들이었다. <존왕양이>로 천황을 세워 외세를 배격하고자 한 세력은 자본주의열강에 맞선 군사적대결에서의 패배로 약화됐으나, 죠슈·사쓰마벌의 반막부세력은 <천황>을 세우되 외래자본주의열강의 지원을 받아야한다는 입장을 세우고 일본을 자본주의적으로 개명해야한다는 신흥부르주아들과 결탁해 실권을 장악했다. 1868.1.3 반막부파는 <천황>의 이름으로 막부의 폐지와 <천황>정권의 수립(왕정복고)을 선포하고 1868.4 에도(도쿄)를 점령했다. 번벌세력은 봉건적질서를 이용해 위로부터의 개혁, 근대화를 추진하고 권력기반을 공고히 해 메이지과두제를 확립했다. 1874 지역재벌들과 이타가키등이 <민선의원설립건백서>를 계기로 자유주의적지주와 부르주아들이 부르주아입헌정치를 지향한 개량주의 적반정부운동인 자유민권운동이 벌어지고 각지방에 이를 지지하는 정치단체들이 조직됐다. 1881 이타가키는 미쓰이재 벌의 원조밑에 국회기성동맹을 지반으로 자유당을 창당했고 1882 오쿠마는 미쓰비시재벌의 지원밑에 입헌개진당을 창당했다. 일본정부는 이타가키와 오쿠마를 참의로 등용, 정부에 참여시키는 방법으로 타협했고 자유민권운동좌파를 탄압했다. 1885 내각제를 받아들여 초대총리로 번벌세력의 조슈벌출신 이토를 임명했다. <대동단결운동>으로 자유민권운동이 재고조되면서 1889 <대일본제국헌법>이 발포됐으며 1890 제국의회가 개설됐다. 야당의 공세로 의회가 계속 해산되는 사태에 처하자 이토는 정당결성의 필요성을 느껴 신당창당을 추진했다. 1945 2차대전패배이후 미군정에 의해 현재 <평화헌법>이라고 불리는 일본헌법이 마련됐으나 <천황은일본국의상징,일본국민통합의상징>이라고 명시해 군국주의의 정치적기초인 <천황제>는 남겨뒀다. 사회당이 집권하기도 하고 공산당이 합법화되면서 마치 새로운 세력이 부상하는듯 기만했지만 전범처리를 <금고형>수준으로 했다가 1949 <공직추방>을 해제했다. 군국주의 군·경찰기관들과 군국주의단체들도 유지됐다. <재벌해체>령등으로 독점을 해체하는듯 보였지만 그대상으로 지정된 83개중 재벌본사24개와 기타5개회사뿐이었다. 미군정하에서 일본민주화의 길은 완전히 가로막혔으며 재군국주의화는 더욱 촉진됐다. 1955 자민당(자유민주당)의 일당지배체제인 <55년체제>가 수립됐고 미쓰비시·미쓰이·스미토모·후지·상와·다이이찌6대재벌집단이 경제명맥을 장악했다. 1990년대초 부동산거품붕괴에서 보듯 일본의 경기팽창이 급속도로 이뤄지는 과정에서 정치·경제적위기가 찾아왔다. 정경유착이 대두됐고 정치개혁문제가 제기되면서 민주당이 창당되고 2003 중의원선거 2004 참의원선거 2007 참의원선거 2009 중의원선거에서 승리해 한동안 자민당과 교대로 집권했다. 2012 중의원선거에서 아베내각이 등장한 이후 민주당과 그뒤를 잇는 세력은 제1야당으로 고착됐다. 베트남전쟁의 반전여론과 세계적인 <68혁명>의 분위기를 타고 일본에서도 학생운동중심의 신좌파운동이 나타났다. 미·영의 신좌파운동이 지식인들의 개량주의적흐름을 보인 반면 공산당이 불법화된 서독과 공산당·사회당이 혁명노선을 포기한 일본은 이를 거부한 폭력투쟁노선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파쇼통치에 의해 탄압됐고 의회정치는 철저히 외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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