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공화정은 자유로운 선거로 최고주권기관을 선출할 권리를 통해 1930년대 나치정권을 수립하는데로 귀결됐다. 반면 1931 총선에서 공화파가 크게 승리하면서 알폰소13세가 망명하고 공화국을 수립한 스페인은 1933 연립정부를 구성했던 사회당원들이 쫓겨나고 국회가 해산되는 한편 에스파냐자치우익연합이 결성되고 10월에는 파쇼정당인 팔랑헤에스 파뇰라가 등장하면서 11월총선에서 우익파쇼세력이 두각을 나타내자 스페인공산당은 사회당에 반파쇼인민전선을 제의, 사회당·좌익공화당·공화동맹·근로자총동맹및기타정치그룹이 연합해 인민전선을 형성했다. 인민전선의 강령에는 정치범석방·정치적견해차이로추방된사람전원복권·세금과소작료인하·농민에대한국가방조등 기층민중의 이익을 옹호하는 내용들이 포함됐다. 총선에서 인민전선이 승리하면서 파쇼세력의 집권을 저지했다. 공산당은 정부에 들어가지않았지만 16명의 의원을 배출하며 처음으로 의회에 진출했고 합법화를 이뤄냈다. 스페인은 짜르러시아처럼 농민에 대한 봉건적수탈에 의거해 자본주의를 발전시켜왔던만큼 토지개혁이 중요했다. 인민전선정부는 지주·교회·수도원으로부터 400만ha이상의 토지를 몰수해 농민에게 무상으로 분배하고 농민들의 빚도 전액탕감했다. 또 파쇼반란자들을 지지한 공장기업체들을 국유화해 국가산업의 30%이상이 국가에 집중됐다. 임금인상·주44시간노동·노동보호·사회보장등이 법으로 제정됐고 새로운 군대가 조직됐으며 여성들에 대한 평등권이 실시되고 소수민족의 민족적자유가 보장됐다. 이에 반발한 프랑코군부세력이 스페인남부지방을 점령하면서 내전이 발발했다. 독일·이탈리아파쇼세력이 반란군을 지원했고 미국·영국·프랑스제국주의세력은 <중립>·<불간섭>을 내세워 스페인공화국측에 무기수출을 금지하고 반대로 3국을 통해 프랑코반란군에 물자를 공급했다. 세계진보세력은 파시즘을 반대하는 스페인공화국의 투쟁을 지지해 1937말 54개국의 3만5000명의 지원병이 스페인내전에 참전, 7개의 국제여단을 조직해 함께 싸웠다. 1938 공화국정부는 <불간섭위원회>에 환상을 가지고 파쇼국가들의 철군을 기대하며 <지원병소환안>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독일·이탈리아는 오히려 무력을 증강했다. 미국·영국·프랑스는 스페인공화국과 외교관계를 끊고 프랑코정부를 승인·지원했다. 이런 상황속에 1939.3 공화국정부측에 내부반란이 일어나면서 결국 프랑코측에 항복하게 됐다. 스페인전쟁은 비록 실패했지만 혁명역사와 파시즘에 맞선 국제주의 운동역사에 귀중한 경험으로 남아있다. 1975 프랑코사후 스페인국(Estado Español)은 스페인왕국(Reino de España) 으로 왕정이 복고돼 상·하양원의 입헌군주제를 수립해 현재에 이르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