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강의 대중동전초기지
이스라엘은 1917 영국외무장관 밸푸어의 유대인의 나라를 건국하기로 한 약속으로부터 이뤄졌다. 반면 당시 이집트주재영국고등판무관 맥마흔은 독일과 동맹을 맺은 오스만제국에 타격을 주기 위해 아랍인들이 오스만제국에 반대해 참전하면 아랍국가의 수립을 보장해준다는 내용의 서신을 아랍정치지도자 알리빈후세인과 주고받았다. 메카의 샤리프였던 후세인은 투르크민족의 지배하에 분열돼있는 아랍민족을 통합해 단일국가를 세우겠다는 생각을 가지고있었다. 이라크국왕 파이잘과 요르단국왕 압둘라는 그의 아들들이다. 그가 세운 헤자즈는 다른 토후국 네지드에 무력으로 통합돼 현재 사우디로 합쳐졌다. 영국은 프랑스와 함께 오스만제국의 아랍반군을 지원했지만 프랑스와 비밀협상을 벌여 양국이 아랍영토를 분할하는 사이크스·피코협정을 체결한다. 이협정의 내용은 제정러시아를 전복한 볼셰비키에 의해 폭로됐다. 영국은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정착지를 약속하면서 전쟁자금을 요청한것으로 알려졌다. 중동지역의 제국주의정책으로 아랍민족의 단일국가가 저지당하면서 사실상 이지역에 분쟁의 씨앗이 남겨지게 됐다. 거기에 열강들은 유대인국가를 심어놓는다. 1차대전직후 팔레스타인지역의 토착유대인은 약5~6만명정도였고 아랍인은 70만~80만명정도였다. 1940 팔레스타인의 유대인수는 45만명으로 늘어났다. 1930년대 독일히틀러정권의 유대인이주정책등의 영향이 있었을것으로 보인다. 아랍인들의 무장투쟁이 시작됐고 유대인들도 무장을 하기 시작했다. 영국은 유대인들을 지원했다. 1947 유엔은 팔레스타인영토를 6:4의 비율로 분할해 유대인국가와 아랍인국가를 각각 세우고 예루살렘은 어느쪽에도 완전히 편입되지않는 개방된 도시로 신탁통치를 실시하기로 결정했지만 유대인무장조직은 이미 이지역의 3/4을 장악하고있었으며 1948 이스라엘이 건국되자 87만명의 아랍인들이 자신들의 거주지에서 쫓겨났다.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승리하면서 유엔결정보다 더많은 땅을 이스라엘이 차지했다. 이와함께 이스라엘은 친서방국가로 영·미의 중동지역거점이 됐다. 이스라엘의 모사드는 중동지역첩보작전에 서방국가들과 긴밀한 협조하에 움직인다. 미군유럽사령부와 이스라엘군은 2001부터 격년으로 <주니퍼코브라>합동군사연습을 실시하고있다. 2006 이스라엘은 레바논을 공격했고 2017 미국은 이스라엘에 미군기지를 세운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