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6자회담은 9.19공동성명의 합의로 실질적성과를 이뤄내는듯 했지만 같은 시기 미재무부가 방코델타아시아의 북자금을 동결하면서 대화가 중단되고 갈등이 고조됐다. 2007 방코델타아시아자금문제가 해결되면서 다시 대화가 추진되는듯 했지만 여전히 대화와 실질적전진은 이뤄내지못했다. 2009 북은 핵시험을 재개했다. 당시 2명의 미국인여기자가 사실상 자진불법입북해 억류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2009.6 북중앙재판소는 미국인두여기자들에게 12년노동교화형을 선고했다. 8.4 클린턴미전대통령이 이들의 석방을 위해 방북했고 두여기자와 함께 귀국했다. 10월에는 김양건조선노동당통일전선부장이 베이징을 방문한 사실이 알려졌고 같은 기간 키신저전미국무장관이 베이징을 방문한 사실로 미뤄 양자간비밀회동이 추정됐다. 2012.2 임태희전대통령실장이 베이징을 방문해 북측관리들을 접촉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2009.10 싱가포르에서 김양건비서와 비밀회동을 갖고 남북간 수뇌회담을 추진했다는 첩보가 나오기도 했다. 2009.4 북은 6자회담의 불참을 선언하고 6자회담은 실질적성과 없이 종결됐다. 2009.10 원자바오중국총리의 방북당시 김정일국방위원장과 회담하고 6자회담재개에 대해 논의했다는 주장도 나왔지만 6자회담은 완전히 중단됐다. 2009.10 원자바오총리의 방북은 6자회담의 중단에도 불구하고 북미간에 일정한 추동력(모멘텀)이 작용했던 시점이어서 중국최고지도부의 방문으로 비중있는 정보교환이 이뤄졌을것으로 추정됐다. 2009 당시는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상당기간 비공개행보와 함께 김정은후계자의 최고사령관대행활동이 추정되던 때다. 2019.1 김영철조선노동당부위원장이 백악관을 방문할 무렵 2009 구축된 북미간 채널에 대해 알려졌는데, 이때는 클린턴의 방북과 베이징에서의 모종의 북미간회동, 그사이에 있은 원자바오중국총리의 평양방문등이 있었던 기간이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2012 김일성주석탄생100돌을 경축하기 위한 활동에 매진하면서 2010.5.3~7, 8.26~30, 2011.5.20~26, 8월에는 방러후 귀국할때 중국지역을 경유하며 총4차례 연이어 방중했다. 2014.11 미국인억류자석방을 이유로 클래퍼당시미국가정보국장이 방북하면서 북해당기관과 미CIA간의 핫라인이 만들어진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