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2 항쟁의기관차〉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중국방문과 조선인민군차수의 백악관입성

중국이 중미수교를 하고 <개혁>·<개방>을 추진하며 남과도 수교를 맺게 되자 북중지도자급교류는 한동안 이뤄지지않았다. 1994 김일성주석이 서거했다. 1991 소련이 붕괴되고 북은 사실상 유명무실한 군사정전위와 중립국감독위의 해체를 원해왔다. 중립국감독위에 참여했던 체코와 폴란드가 남과 수교를 맺은것은 중립성에 위배된다고 주장하면서 체코와 폴란드의 대표단을 추방시켰다. 체코슬로바키아해체이후 체코의 관련업무가 승계되지않았고 폴란드만 형식적으로 유지되고있는 상태였다. 북은 당시 지난 유엔총회에서도 남의 유엔사는 미국에 의해 불법적으로 만들어진것으로 행정과 예산 모든 면에서 유엔과 무관하다며 미국이 주도하는 연합사령부로 유엔의 이름을 남용하고있고 유엔은 유엔사에 대한 지휘권을 갖고있지않다고 하면서 유엔사해체를 주장했다. 1996 미국은 남과의 정상회담에서 북·중과 회담을 가질것을 제안해 추진했지만 결과는 없었다. 1998.8 <금창리>논란이 일었다. 1998.8.31 북은 첫인공위성<광명성1호>를 쏘아올렸다. 1999.5 페리전국방장관이 방북해 금창리시설에 대해 사실확인을 하고 그해 가을 미국의 대북정책전환을 요구하는 <페리보고서>를 미의회에 제출했다. 2000 조명록총정치국장이 백악관을 방문하고 클린턴미대통령을 만났으며 북미양국간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클린턴의 방북까지 추진됐지만 대선에서 부시가 당선되고 정권연장이 안되면서 미대통령의 방북계획은 취소됐다. 부시정권은 북정권을 <악의축>이라며 도발했지만 실질적으로는 2003 북핵문제해결을 위해 중국을 의장국으로 하는 6자회담이 개최됐다. 김일성주석서거이후 김정일국방위원장의 해외첫방문지는 중국이었다. 2000.5 베이징에 방문해 장쩌민국가주석과 회담하고 중국정보통신산업시설등을 방문했으며 2001.1 베이징·상하이를 방문하고 장쩌민주석·주룽지총리와 회담했다. 2001.9 장쩌민주석이 11년만에 다시 방북하면서 북중관계가 회복됐다. 2004.4 김정일국방위원장은 베이징과 텐진을 방문하고 장쩌민주석과 회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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