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오농민전쟁·반일의병투쟁등 반외세무장투쟁이 실패하자 우리민중은 1919 3.1항쟁으로 일에 항거했다. 일제는 침략무력을 동원해 야수적으로 탄압했지만 우리민중의 영웅적기개를 꺾지못했다. 3.1항쟁은 제국주의침략무력에는 무장으로 맞서야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1910년대 부르주아민족주의자들은 의병투쟁을 독립군운동으로 전환했고 그들이 조직한 독립군단체들이 수십개에 달했다. 독립군단체들은 단결하지못하고 세력다툼을 벌였다. 또, 3.1항쟁을 계기로 많은 부르주아민족운동지도자들이 독립운동을 포기하고 변절했다. 이는 부르주아민족주의가 더이상 민족해방의 길을 밝혀주지못함을 반영하는것이었다. 3.1항쟁이후 노동자민중의 선진사상이 보급되고 노동자민중의 대중운동이 장성했다. 그런속에서 1925 조선공산당이 창당됐고 1927 민족주의자들과 사회주의세력을 아우르는 좌우합작독립운동단체가 조직됐다. 그러나 초기공산주의운동 또한 주도권다툼으로 사회운동의 지도력을 갖지못하는 상황이었고 결국 국제당에 의해 1928 해산조치됐다. 이런 시기 김일성주석은 조선국민회의 민족운동지도자 김형직선생의 아들로 태어나, 부친의 <지원>사상·3대각오<아사·동사·타사>·동지획득의사상·2자루권총을 유산으로, 부친의 그뜻을 이어 조국광복을 위한 투쟁에 자신의 모든것을 다할 굳은 각오를 다졌다고 한다. 김일성주석은 1930.6.30 카륜에서 동지들과 회의를 갖고 조선혁명의 주인은 조선인민이며 어디까지나 조선인민의 힘으로 우리실정에 맞게 수행해야한다고 하면서, 항일무장투쟁·반일민족해방통일전선·자주적당창건의 조선혁명3대노선을 밝힘으로써 조국광복의 방도를 제시했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후에 김일성주석의 혁명노선에 대해 혁명의 주인은 인민대중이며 인민대중속에 들어가 그들을 교양하고 조직동원해야 혁명에서 승리할수 있으며 혁명은 그누구의 승인이나 지시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의 신념에 따라 자기가 책임지고, 혁명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풀어나가야한다는것이었다고 밝혔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김일성주석이 <민족개량주의,좌우경기회주의등온갖어지러운사상들이판을치던혼란속에서…자주적발전의길을열어놓>았다고 설명했다. 김일성주석이 당시 조선인민혁명군을 조직하고 철저하게 조선민중의 힘에 의거해 조국광복위업을 이뤄내는 노선을 수립하면서 우리민족은 일제와의 투쟁에서 주도권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한편 유럽파쇼세력과 일본군국주의세력이 동맹을 맺으면서 2차세계대전의 격변기로 치달았다. 일시적으로 소독·소일불가침조약이 체결됐다가 소·미·영의 세계반파쇼전선이 형성됐다. 1900전후 우리민족은 열강들대결전의 희생양으로 됐으며 그결과 일제식민지로 전락했다. 1945 우리민족은 결국 민족해방을 맞이했으나 남측지역을 미군이 강점하며 새로운 도전을 맞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