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애국열사 박창균선생11주기·이희영선생9주기추모모임 진행

6월13일 박창균·이희영선생추모모임이 서울에서 진행됐다.

먼저 민중의례가 진행됐다. 참석자들은 자주통일과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다 산화한 열사들을 기리며 묵념한 뒤 <임을위한행진곡>을 제창했다.

다음으로 민중민주당(민중당)에서 박창균선생, 이희영선생의 약력을 소개했다. 

추모발언은 노수희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남측본부부의장, 권오창우리사회연구소이사장, 이정태민족자주통일중앙회의(민자통)사무국장, 조영건6.15남측위원회학술본부고문이 진행했다. 

노수희부의장은 <이희영선생은 생전에 <운동은 그냥 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박창균선생은 어느날 쓰러졌는데 <나 안죽어, 나 끝장보고 갈거야>라고 눈을 가늘게 뜨고 웃던 모습이 생각난다.>고 회고하며 <우리는 지금도 부족하다. 이런 생각을 한다. 남탓하는 운동을 해오지 않았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사진에서 선생들의 먼곳을 응시하는 모습이 조선의 통일, 자주적 국가를 바라보는 모습이 아닐까 감히 생각해본다. 엄혹한 정세속에서 올바르지 못한 모습을 반성하며 용기를 갖고 정신을 따라 투쟁하겠다.>고 결의했다. 

권오창이사장은 <1970년대부터 박창균선생과 함께했다. 박창균선생은 운동하는 과정에서 이희영선생과 함께하게 됐다. 이희영선생과 결혼하면서부터 박창균선생은 도약을 맞이했다. 이희영선생은 박창균선생 못지 않게 투사로서 열심히 투쟁했고, 뿐만아니라 어려운 과정을 모두 도맡아 뒷바라지 했다.>고 전했다. 

계속해서 <이 가족이야말로 오늘 우리사회에서 가장 모범이 되는 가정이라고 자부한다>며 <현실이 어떤가. 잠이 안올 지경이다. 대통령이라고 뽑아놨더니 미국놈들한테는 머슴꾼노릇, 우리민중에게는 깡패노릇한다. 하루라도 그냥 둘수 없다. 우리는 이 자리에서 박창균선생과 이희영선생의 모범을 따라 온민족이 함께 하루속히 윤석열을 끌어내리고 통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정태사무국장은 <민자통은 결성된 후 박정희쿠데타로 강제해산당하고 지하활동을 하다가 1988년 재결성됐다. 범민련 결성에서 박창균선생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이희영선생은 박창균선생이 돌아가시고 찾아와서 <남편의 족적을 밟고 싶다>는 말을 했다>고 회고했다.

계속해서 <민중민주당이 선배동지들의 뜻을 계승해 조국통일을 이루겠다고 하는 것을 보고 뿌듯해하시지 않을까 싶다>며 <<우리식대로 살아나가자>, <대를 이어 싸워나가자>라는 뜻깊은 말이 떠오른다. 선배동지들의 뜻을 이어 기어이 미군을 몰아내고 자주통일을 이룩하자>고 말했다. 

조영건고문은 <투쟁노선이 중요하다. 선생은 자주통일운동을 현장에서 민중과 더불어 투쟁했다. 정확한 노선의 선구자였다.>라며 <자주통일운동을 현장에서 하는 곳이 현재 민중민주당밖에 없다. 현장에서 만난을 무릅쓰고 박창균선생님의 투쟁정신을 이어서 투쟁하는 곳이다. 모든 진보진영이 다 고맙게 생각하고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해 격려를 보낸다.>고 전했다.  

민중민주당서울시당위원장은 결의발언에서 <남코리아를 비롯한 전세계가 격변의 시기를 겪고 있으며 코리아반도는 이제 언제 전쟁이 터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정세가 격화되고 있다>며 <대격변의 시기에 박창균, 이희영 두분이 생으로 입증해온 애국애족정신은 후대들에게 더욱 뜻깊게 다가온다>고 밝혔다. 

이어 <박창균대표가 고령에도 범민련통일선봉대총대장을 맡아 분투했고 암투병중에도 코리아연대 <방북조문허용>투쟁을 벌이셨던 모습이 떠오른다>, <이희영선생이 생의 마지막시기까지 자주통일과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에 복무하며 박근혜악폐권력에 맞서던 모습을 기억한다>며 <현시기야말로 반제반파쇼투쟁의 기치를 높이들고 싸울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민족자주와 민중민주의 한길에 생을 고스란히 바쳐온 두분의 불굴의 투쟁정신은 이러한 우리민족의 역사속에 살아숨쉬며 후대들에게 실천적 모범으로 계승돼야 한다>며 <오늘날 박창균·이희영선생정신의 구현은 반제자주미군철거투쟁, 친미호전친일매국윤석열파쇼정권타도투쟁>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전체참석자들은 박창균선생과 이희영선생의 투쟁정신을 따라 반미반윤석열투쟁을 더욱 가열차게 벌일 것을 결의하며 자리를 마무리했다. 

아래는 박창균선생, 이희영선생의 약력이다.

박창균선생 약력
1925 함경북도 무산 출생
1951 한국신학대학(한신대) 졸업
1951 한국기독교장로회 목사 고시 합격
1952 한국기독교장로회 목사 장립
1960~1970 한국기독교장로회 서울 아현동 행화정교회 시무
1965 한국신학대학 총동창회 회장 역임
1970년대초 통일사회당 입당
1972 세계사회당지도자 동경대회 한국대표로 참석
1974 민주회복국민회의 결성
1989 민족자주평화통일중앙회의(민자통) 공동의장 역임
1989 국가보안법(민자통 조직사건)으로 3년 징역, 3년 집행유예 선고
1990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 결성 구성원으로 참여
1995 국가보안법(범민련 남측본부 사건)으로 3년 징역, 3년 집행유예 선고
1998 범민련 남측본부 부의장, 감사 역임
1999 범민족통일대축전 통일선봉대 총대장 역임
1999 국가보안법(범민련 남측본부 사건)으로 3년 징역, 3년 집행유예 선고
2003 우리민족련방제통일추진회의(련방통추)결성 주도 및 상임고문 역임
2007~2010 민주노동당 노년위원회 위원장 역임
2010~2012 범민련 남측본부 고문, 범민련 결성 20돌 기념사업회 국민위원회 고문, 련방통추 고문, 한국진보연대 고문 역임
2011~2012 자주통일과민주주의를위한코리아연대(코리아연대) 상임대표 역임
2012. 3. 12 영면

이희영선생 약력
1947년 8월14일서울서대문구홍제동출생
1954년 서울 안산국민(초등)학교 입학
1960년 서울 동명중학교 입학
1963년 서울 서울여고 입학
1966년 한양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입학
1970년대 故박창균목사와 함께 통일사회당 활동
1980년대 故박창균목사와 함께 민주화운동에 참여
1986년 故박창균목사와 혼인
1990년대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를 중심으로 통일운동에 참여
2008년 4월 민주노동당 연천군준비위원회 가입 활동
2011년 12월 통합진보당 연천군준비위원회 가입 활동
2012년 3월 민가협양심수후원회 가입 활동
2012년 4월 민족자주평화통일중앙회의 가입 활동
2012년 7월 6.15산악회 가입 활동
2013년 4월 21세기경기여성회 대표 역임
2013년 5월 코리아경기연대 대표 역임
2013년 5월 자주통일과민주주의를위한코리아연대(코리아연대) 공동대표 역임
2013년 10월 사월혁명회 가입 활동
2014년 6월17일 영면(향년 67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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