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을 위한, 톰에 의한 영화다. 톰은 이영화를 자기필모그래피의 절정에 놓으려고 작정을 한듯하다. 영화로서 보기드문 최고흥행과 연속제작을 기록하고있기도 하지만 매영화에 모든것을 걸어서다. 톰은 정말 영화제작에 자기생명을 건다. 톰이 말그대로 <불가능한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아슬아슬하게 나오는 장면은 모두 스턴트맨 없이 직접, 심지어 와이어도 없이 벌이는 목숨 건 활극이다. 그렇게 해서 영화는 관객을 몰입시키는 활력을 얻는다. 당연히 이는 근력과 재능으로 가능한일이 아니다. 특유의 인생관과 영화관, 그리고 도전정신이 있어야한다.
시리즈2부터 이런 경향이 강해지는데, 영화자체의 수준으로 보면 시리즈1이 제일 낫지않나싶다. 역시 영화의 기본은 문학이고 문학의 기본은 이야기다. 소련이 무너진이후 외부의 적이 아니라 내부의 적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의 흐름이 됐다. 현대제국주의시대의 부르주아예술사조인 포스트모더니즘의 후기에 해당하는 작품들이 띠는 하나의 경향, 이른바 <정체성>의 문제다. 조금 다른 차원이지만 <본아이덴티티>도 본질상 같다. 역시 첩보물의 긴장감이 잘 그려지면 연속으로 제작돼도 인기가 좋다. 첩보물은 이념이 달라도 다들 좋아한다.
프라하의 카를교를 여러번 가봤는데 그때마다 이영화를 떠올린다. 왜 안그렇겠는가. 영화가 가지는 힘중의 하나다. <새벽의7인>에서 전사들이 목숨을 잃는 성키릴과메토디우스교회도 마찬가지다. 그러다보니 KGB박물관도 종종 들른다. 우연찮게 미대사관 바로 옆에 있다. <디아메리칸즈>에서 FBI방첩대장의 여비서가 KGB요원에게 포섭돼 활약하다가 노출돼 피신하는 경로도 워싱턴-하바나-프라하-모스크바다. 프라하는 베를린과 함께 냉전시기 스파이들의 대표적인 활무대중 하나다. 왜 하필 카를교인가의 답이 여기에 있다. 제국주의세력은 냉전에서 이겼다고 착각한다. 그래서 제국주의세력은 <신냉전>에도 자신이 있어 보인다.
과연 그럴까. 세상은 돌고돌아 또다시 세계대전을 눈앞에 두고있다. 1·2차세계대전은 모두 제국주의세력에게 심대한 타격을 안겼다. 전쟁으로 수많은 군인들과 민중들이 목숨을 잃으면서 깨달은 정의의 진리가 인류역사의 새로운 비약을 추동했다. 승리의 비결은 복잡하지않다. 정치사상적우월성과 혁명역량의 준비, 그리고 비범한 작전이다. 도덕에서의 우위가 첩보전에의 우위다. 영국캠브리지대출신 MI6대소련방첩팀장 킴필비가 왜 목숨을 걸었겠는가. 킴필비를 롤모델로 삼은 미국FBI특수요원 로버트핸슨의 삶도 다르지않다. 역사는 민중의 자주성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승리의 정방향으로 나아간다. 3차세계대전, <신냉전>의 결과가 입증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