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4 16대총선은 임기절반을 지난 김대중대통령에 대한 중간평가의 의미를 가졌다. 선거결과는 한나라당이 133석, 민주당이 115석을 차지해 여소야대의 정권견제심리가 이어졌다. 그외에 자유민주연합17석, 기타정당및무소속8석의 결과를 얻었다. 이선거에서는 IMF경제위기이후 사회전반구조조정분위기에 국회의원정수도 지역구227명, 비례대표(전국선거구에서명칭변경)46명등 총273명으로 감축됐다. 후보자전과기록등 정보공개와 부정선거방지를 위한 선거부정감시단제도도 도입됐다. 선거범죄에대한재정신청권, 선거비용보존제한및유예제도도 신설됐다. 선거과정에서 시민단체주도의 낙천·낙선운동이 처음 벌어졌고 선거결과에도 의미있는 영향을 미쳤다. 2004.4 총선에서 국회의석은 총299석으로 다시 늘어났으며 정당에 투표하는 비례대표제가 도입돼 1인2표제가 실시됐다. 17대총선은 <노무현대통령탄핵>정국에서 실시돼 노무현정부에 대한 재신임을 묻는 선거로 됐다. 국회에서의 대통령탄핵의결이후 전국적으로 <탄핵반대>촛불시위가 일어났으며 그런 분위기에서 열린우리당이 152석으로 과반의석을 차지했다. 한나라당121석, 새천년민주당9석이었다. 민심은, 정권이 아닌, 부당하게 대통령을 탄핵하려한 세력을 심판했다. 노무현탄핵의 선두에는 새천년민주당소속의원들이 있었지만 넓은 의미에서 그들은 <대한민국>의정역사상 국회를 장악해온 수구·보수세력일파였다. 탄핵정국에 초선의원이 전체2/3에 달하는 188명 선출됐고 당선자연령도 30~40대가 절반가까이에 이르며 국회의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이런 결과의 영향으로 총선뒤 헌법재판소는 대통령탄핵소추안을 기각했다. 1987 6월항쟁이후 10여년만에 정권교체를 이뤄냈지만 개혁정권은 그정치적지반이 매우 취약했고 대통령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에 직면했다. 이를 계기로 17대총선에서는 개혁세력에 의회권력까지 쥐어졌다. 정당투표를 하는 비례대표제가 도입돼 민주노동당도 정당투표13%를 받아 비례대표8석을 포함해 10석을 차지했다. 민주노동당은 <노동자서민의정당>이라는 슬로건으로 기존정치와는 다른 면모를 보여줬다. 민주노동당의 3당으로의 부상은 보수양당체제, <3김체제>와 영호남·충청권의 지역구도에 파열을 내는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을 열어줬다. 16년만에 여대야소정국이 부활했다고 하지만 해방이후 개혁세력이 원내1당이 된것은 최초였다. 그만큼 17대국회에 대한 기대가 컸다. 열린우리당과 개혁정권은 여대야소로 행정권력뿐아니라 의회권력까지 장악했지만 정치개혁은 이뤄내지못했다. 단적인 예가 2004말 보안법(<국가보안법>)폐지투쟁이다.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는 국회앞에서 1300여명의 대규모단식농성을 전개하며 국회를 압박했다. 열린우리당의 과반의석도 국회내의 표대결로는 보안법개정조차 어렵다는것이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해방이후 줄곧 권력을 장악해온 수구보수의 지반이 훨씬 강고했으며 개혁보수는 그걸 넘어서지못했다. 결국은 이명박에 정권을 넘겨줬고 노무현의 정치적타살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