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 6월항쟁이후 직선제개헌의 새로운 헌법<6공화국헌법>이 공포돼 12대국회는 임기종료일을 1년정도 남겨둔 상태에서 1988.4 13대총선이 실시됐다. 13대대선이후 4개월만이었다. 사실상 대선의 연장전으로 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평화민주당·신민주공화당의 4당대결구도로 진행됐다. 여야나눠먹기식이라는 비난을 받아오던 중선거구제가 폐지되고 17년만에 소선거구제로 치러졌다. 선거결과 민주정의당은 전체의석의 41.8%인 125석을 차지해 1당이 됐지만 과반수의석에 미달해 <대한민국>의정사상 최초로 <여소야대>정국이 됐다. 평화민주당은 70석, 통일민주당은 59석, 신민주공화당은 35석을 차지했다. 1992.3 14대총선은 14대대선을 9개월 앞두고 실시돼 대선전초전의 성격을 띠었다. 선거전은 여당인 민자당(민주자유당)과 1야당인 민주당 그리고 정주영의 통일국민당의 3자대결구도였다. 1990.1 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의 3당합당에 대한 정당성여부가 논란이 됐다. 선거결과 민자당은 전체의석의 49.8%인 149석으로 1당이 됐고, 민주당은 97석을, 통일국민당은 31석을 차지했다. <3당야합>은 민주화운동을 한 김영삼이 대권야욕에 군사쿠데타세력과 결탁한 결과였다. 그렇게 해서 군사정권의 집권여당이 과반에 가까운 의석을 차지했다. 1987 6월항쟁의 성과를 딛고 1990.11 창당한 민중정당인 민중당은 총선에서 3%미만인 1.5%득표로 정당등록이 취소됐다. 1996.5 15대총선은 1992대선직후 정계은퇴선언을 했던 김대중이 정계복귀를 선언하고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해 본격적으로 정치활동에 나서 향후 대권의 향방을 가늠하는 선거였다. 선거전은 민자당에서 당명을 바꾼 신한국당과 새정치국민회의, 통합민주당, 자유민주연합등이 지역에 따라 2·3자대결구도를 보였다. 선거에서 신한국당은 세대교체와 정국안정을 위해 여당이 과반수의석을 확보해야한다며 <안정론>을 내세웠다. 새정치국민회의는 여당의 독선을 막기 위해 개헌저지선인 1/3의석을 확보해야한다며 <견제론>으로 맞섰다. 신한국당은 34.5%의 득표율로 전체의석의 46.5%인 139석을 차지하며 1당이 됐지만 원내과반수의석확보에는 실패했다. 새정치국민회의79석, 자유민주연합50석, 통합민주당15석등이었다. 1987 6월항쟁이후 쿠데타세력이 과반의석을 차지하지못하는 <여소야대>구도도 큰 변화였지만 쿠데타정권의 후예정당은 1당을 놓치지않았다. 6월항쟁이후 16년간 이같은 구도를 유지했다. 민주화이후 정권견제심리에 집권여당이 과반의석까지는 얻지못했지만 실질적으로 정권을 견제할수 있는 강력한 야당도 없었다. 해방이후 한번도 집권하지못한 개혁세력은 김대중의 정권교체이후로도 1당을 하지못하다가 노무현대통령탄핵정국에서야 세대교체와 함께 과반의석을 차지하며 처음으로 1당을 하게 됐다. 1987 6월항쟁민주화이후 17년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