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패망후 중국동북지방의 정세는 매우 첨예했다. 미제는 중국의 일제패잔병들을 무장해제시킨다는 명목으로 중국의 중요도시들과 항구들, 그밖의 전략적거점들에 미군을 배치했다. 미국은 장개석에게 군사적원조를 제공하고 중국을 장악하려했다. 장개석은 강점지역을 넘겨받아 중국인구70%를 포괄하는 주민지역을 차지하고 점령지역을 동북지역까지 넓히려했다. 1945.9.15 김일성사령관은 강건·박락권·최광을 비롯한 조선인민혁명군군사정치간부들을 중국동북지방에 파견했다. 김일성사령관은 그들에게 동북지방에서무장대오의조직, 민주주의적정권의수립, 공산당지방조직들과대중단체들의조직, 통일전선결성사업을 적극 도와주며 특히 조중인민의 단결을 강화할것을 강조했다. 이들의 적극적인 활동으로 연변·목단강지구에 조선인부대를 비롯한 무장대오가 조직됐다. 또 연길·왕청·용정·화룡등지에 지방당조직들이 나왔고 그에 기초해 강건을 서기로 하는 연변당위원회가 조직됐다. 인민정권인 정무위원회들이 세워지고 각이한 명칭의 대중단체들이 나왔으며 통일전선조직인 연변민주대동맹이 결성됐다. 1945.11 김일성사령관은 중국측의 요청에 따라 중국 단둥에 나가 동북민주연군지휘성원들과 담화하고 적극적인 대책을 세워줬다. 1946.3 소련군으로부터 장춘을 넘겨받은 장개석이 심양-장춘간철도를 따라 동북지역을 차지할 계획으로 사평계선을 공격, 동북민주연군 중국인부대들이 포위를 당하며 위기에 처하게 됐다. 이러한때 3.28 김일성사령관이 함북 온성군 남양에 나가 동북민주연군 부총사령원겸 길료군구사령원 주보중을 만나 포위된 부대들을 구출하기 위한 전략전술적문제들을 논의하고 장춘전투(1차)를 벌려 포위된 중국인부대들의 퇴로를 열어주는 작전적방침을 제시했다. 이전투과정에 박락권연대장이 희생됐다. 이해봄 김일성사령관은 모택동주석의 특사를 만나 중국관내에 있던 부대들이 조선을 거쳐 동북으로 진출할수 있도록 했으며 조선측은 중국공산당의 요청에 따라 10만여정의 무기와 화약, 탄약, 군복, 의약품을 비롯한 군수물자들을 보냈다. 항일무장투쟁에서 단련된 지휘관들과 전사들을 핵심으로 포병연대와 공병부대가 조직돼 파견됐다. 조선인부대는 동북민주연군의 주력으로서 장개석국민당과 희생적으로 싸웠다. 동북해방에서 결정적전환을 가져온 장춘·길림·사평·금주·심양전투에서 돌격대로, 동북지역해방이후에도 중국인민해방군과 함께 장강도하작전, 장사·충징·하이난도전투등 중국전대륙을 해방하는 전투들에 참가해 임무를 수행했다. 조선인부대들은 1950.4 귀국후 조선인민군7사, 4사18연대등으로 개편됐다. 중국혁명전쟁에 참전했던 조선인부대 지휘관들과 대원들은 조선으로 돌아와 미제의 무력침공을 반대하는 전쟁에 참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