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3 항쟁의기관차〉 되살아난 반통일·친일·친미의 망령

2000 6.15공동선언으로 민족의 화해·단합의 분위기가 고조되고 2002 대선에서 한나라당불법대선자금전달사건이 터져 <차떼기당>이라는 조롱이 따라붙으며 수구반동세력의 입지는 나날이 축소됐다. 이런 조건에서 2004.10 <새로운보수>를 표방하며 수구세력의 재편이 논의됐다. 미<네오콘>·일<신극우>세력의 등장과 유사하다. 11.23 신지호서강대겸임교수를 중심으로 과거 운동권에서 변절한 지식인들과 극우단체들은 뉴라이트운동의 일환으로 <자유주의연대>를 출범했다. 창립선언문에서 노무현정부의 과거사청산움직임을 <자학사관>이라고 비난하며 일본내극우세력들의 역사관과 일맥상통하는 주장을 했다. 2005.11.7 김진홍목사 주도로 창립한 뉴라이트전국연합창립대회에는 당시 한나라당대표였던 박근혜와 수구진영정치인700여명이 참가해 힘을 실었다. 신자유주의경제이론을 주창하는 자유기업원·전경련·삼성경제연구소등에서 뉴라이트단체들에 재정을 후원했고 2004.11 이동관전동아일보정치부장이 <뉴라이트>용어를 사용한것을 시작으로 조선일보·동아일보가 뉴라이트홍보에 동조했다. 2006.4 이승만미화로 논란을 일으킨 서울대교수출신 안병직 주도로 뉴라이트재단이 설립됐다. <식민지근대화론>은 뉴라이트의 핵심주장이다. 기존 군사파쇼권력이 반공·권위주의·정부주도형경제성장·큰정부를 지향했다면 이들은 자유민주주의·시장주도형경제성장·작은정부를 주창하며 <북한인권개선>·<북한민주화>를 통한 흡수통일을 내세웠다. 기존 수구반동세력과의 차별성을 강조했지만 사상적뿌리와 논리에서 본질적차이가 없었다.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폄훼하고 군사정권에서 유포했던 반공·반북이데올로기를 다시 불러오는 역할을 했다. 2010 <일베>탄생후에는 온라인상 여론전·심리전이 과격하게 전개됐다. 2008 이명박파쇼정권이 출범한뒤 뉴라이트세력은 요직들을 차지했고 뿌리깊은 반공이데올로기아래 극우성향단체들의 움직임도 본격화됐다. <육군HID,해군UDU,해병대MIU,공군OSI등그간정부가실체를인정하지않은특수임무수행단체가통합된단체>인 <특수임무수행자회>등은 2008 <미국산광우병소고기수입반대>촛불집회기간 <배후세력>을 운운하고 맞불집회를 일상적으로 벌이며 충돌을 유발했고, 7.1 진보신당당사를 습격해 현판을 부수고 무릎으로 당원의 얼굴을 수차례 가격하는 백색테러를 자행했다. 2009 <국민행동본부>와 <고엽제전우회>가 노무현전대통령분향소를 급습해 천막을 파괴한뒤 영정을 탈취했고, 2011.8 한진중공업사태해결촉구단식농성장에 방문한 백기완통일문제연구소장은 극우반동들에게 구타를 당했다. 이같은 진보진영을 겨냥한 폭력난동행위들이 이명박집권내내 이어졌다. 반민중적이고 부정부패한 권력집단의 본태는 2009.1 <용산참사>와 2009.8 쌍용차농성폭력진압과 같은 국가폭력들에서도 드러난다. 한편 뉴라이트세력의 무리한 역사왜곡시도가 역풍으로 돌아왔다. 2008.7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자는 <국경일에관한법률개정안>을 발의했다가 야당의 거센 반발로 2개월만에 철회했고 <식민지근대화론>과 이승만·박정희긍정적재평가론이 담긴 <대안교과서>를 펴냈다가 <뉴라이트=친일>이라는 거센 대중적비판과 외면에 직면한다. 박근혜파쇼<정권>하에서 <역사쿠데타>를 시도하다가 뉴라이트 스스로 뉴라이트라 밝히지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가 윤석열파쇼정부에서 대거 등용되며 고개를 쳐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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