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6 항쟁의기관차〉 〈D-13〉 정의의 무기

1962.10 미정찰기U-2가 쿠바내에 미사일기지가 건설되고있는것을 발견한다. 케네디미대통령을 비롯한 주변세력은 외교적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하지만 군부세력은 즉시 침공해야한다고 맞선다. 군부는 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의 명령없이 미사일·핵실험을 감행하는 한편, 권한을 악용해 해상에서 방어준비태세(데프콘)를 격상시키며 위기감을 고조시킨다. 그러던중 소련 흐루쇼프주석이 백악관에 비밀문서를 보낸다. 쿠바침공을 하지않겠다고 확약하고 미국이 터키미사일기지를 철거한다면 쿠바미사일기지를 철거하겠다고 한다. 미국은 소련측에 비밀리에 터키미사일기지철거를 약속하고 전쟁위기는 해소된다.

쿠바미사일위기를 제대로 요해하려면 미국에 의해 설치된 터키미사일기지에 우선 주목해야한다. 터키에 배치됐던 주피터미사일은 준중거리탄도미사일로 사정거리는 2500km였다. 모스크바에서 2080km거리에 위치한 터키공군기지에 배치된 주피터미사일은 정확히 소련의 지도부를 겨냥하고있었다. 한편 미국은 1961 피그스만침공을 감행했고 이에 실패하자 몽구스작전을 수립해 카스트로쿠바국가평의회의장암살시도, 쿠바공중폭격, 항구·석유저장시설파괴, 사탕수수밭방화, 마타암브레구리광산공격등의 침략행위를 서슴지않았다. 쿠바에 미사일이 배치돼야했던 이유에는 쿠바의 방위와 안전이 있었다.

당시 핵전쟁을 막은 근본힘에 쿠바의 자위력이 있다. 흐루쇼프의 개량적인 평화공존전략과 달리 쿠바는 미국침략에 대항해 소련에 방어를 위한 무기제공을 요구했고 1962.9 소련·쿠바무기원조협정이 체결됐다. 쿠바는 소련의 일류신 장거리폭격기등을 제공받고 SS미사일기지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쿠바민중이 카스트로의 <전민중이무장해침략자를격퇴하자>는 호소에 부응한 결과 군인은 27만명으로 증가 했다. 손쉽게 쿠바를 장악할것이라는 미국의 착각은 실제 쿠바·미국전쟁이 발발할 경우 미군측전사자가 2만5000명이 넘을것이라는 전망에 의해 깨졌다. 쿠바침략을 단념하는데 명분이 필요했던 미국은 때마침 전달받은 소련의 메시지를 이용해 쿠바에서 손을 떼며 승리자의 가면을 썼다.

케네디의 외교노선과 군부호전광의 침략노선은 첨예하게 대립했고 케네디의 승리로 일단락됐다. 그러나 1년후 케네디는 암살당했고 군부호전광은 베트남을 침략했다. 케네디암살의 이유는 쿠바전·베트남전거부, 금·은복본위제부활에 있으며 그배후에는 군부호전광과 이들을 포함한 딥스테이트·<그림자정부>가 있다. 쿠바미사일위기는 전쟁없이 넘어갔지만 그후에도 거듭된 미국의 침략전쟁은 미제침략세력이 존재하는한 침략전쟁은 계속된다는것을 보여준다. 제국주의가 존재하고 군부호전광이 있는한 이에 맞서는 반제자주의 무기, 평화수호의 방패는 필요하다. 부정의의 전쟁에 맞서는 정의의 무기, 오늘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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